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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매튜 룬, <픽사 스토리텔링>

by Jaime Chung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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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매튜 룬, <픽사 스토리텔링>

 

 

책의 띠지에도 적혀 있듯이, 픽사에서 20년간 스토리 제작에 관여한 '스토리 전문가'가 스토리텔링의 법칙을 알려 준다.

그 법칙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나는 이 스토리텔링의 법칙이 구체적으로 어떤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출판사가 제공한 요약 자료로 대체하겠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이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스토리의 힘과 '진정성'에 대해 강한 믿음이 있다고 느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의사항이 있다. 앞부분에서 언급한 스토리텔링의 기본 법칙들을 아무리 잘 지켜도 스토리에 진심이 없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의 힘은 발휘되지 않는다.

냉정히 말하자면, 스토리텔러의 진심이 담기지 않은 스토리는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준다. 진심 없는 스토리를 들은 사람은 감동보다는 구매를 유도하는 이야기에 속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속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진정한 감정에 다가가는 스토리와 경험을 들려주어야 한다.

'진정성'이나 '진심'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이 또 있을까? 이거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소리다.

누군가는, 예컨대 한 기업의 CEO는 정말 진심을 다해 자신이 세운 기업이 어떻게 고객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인지에 대해 연설을 할 수는 있지만, 그걸 정말로 '아, 저 사람은 고객을 돕기 위해 이 기업을 세웠구나' 하고 좋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물론 꼭 그것이 사회나 공익에 반대되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보통 사람들은 기업가의 연설을 듣고 감동받지 않는다.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으면 뀌었지.

내가 너무 꼬였나?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나?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진심', '진정성' 같은 것은 언제나 전해진다고 믿는 쪽이 더더욱 순진한 거 아닌가.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에 짝사랑 같은 게 왜 있겠나.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를 좋아한다면, 나는 그 사람 마음을 무조건 받아 줘야 하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그 마음에 감동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나? 내가 이미 임자, 그러니까 애인이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되는 건가? 

 

너무 딴지를 거는 것 같지만, 세상엔 '진정성', '진심' 같은 순진한 말로는 안 풀리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당신 잘못은 아니지만,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떠한 일련의 일들로 인해 안 풀리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저자를 비롯한 픽사의 스토리 제작자들이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 2004)>을 만드는 데 진심과 최선을 다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영화를 좋아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몇 가지만 꼽아 보자면, 첫째, 나는 (아버지인) 미스터 인크레더블(Mr. Incredible)과 부인 '엘라스티걸(Elastigirl)' 등의 캐릭터 디자인에 스며든 성별 고정관념이 마음에 안 들었으며, 엄마-아빠-딸 하나-아들 하나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완벽한' 가족 형태도 지루하고 고루하다고 느낀 데다가, 무엇보다 '잭잭(Jack-Jack)'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작명 센스를 참을 수가 없었다!

영화의 줄거리에도 딱히 매력이나 재미를 못 느꼈고, 'PC함'을 위해 끼워넣은 듯한 흑인 친구 캐릭터 프로존(Frozone)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많지만, 결론은 하나다. 나는 이 영화가 별로였다. 제작자들이 얼마나 '진심'을 담아 넣었는지는 무관하게.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게 그들 잘못이라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좋다고, 재밌다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느꼈다는데, 뭐. 나는 별로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진심'이나 '진정성'처럼 추상적이며, 모든 것을 원하며 또 동시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말은 없다.

당신이 어떤 이야기에 얼마나 진심을 쏟아부었든, 그게 꼭 통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당신의 진심과 무관한 다른 일들(소위 '어른들의 사정')이 끼어들 여지가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심을 담아 잘 만든 영화라 해도, 반드시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어떤 이들은 그 영화에 참여한 감독, 작가, 배우 등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개인적인 이유든, 도덕 또는 윤리적인 이유든), 그 영화를 배급하는 기업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으며, 어떤 이들은 그 영화 자체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정작 그 영화를 보러 갈 수단이 없을 수도 있다. 이유는 끝도 없이 많다.

진심처럼 허약한 말이 어디 있나.

 

이렇게 길게 글을 썼지만, 솔직히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는 저자가 참 신기하고 부럽다. 하긴, 그런 믿음이 있어야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겠지.

어떤 작가가 자신은 글을 쓸 때 '유리 병 속에 메시지를 담아 바다에 던지는' 기분이라고, 이게 과연 무사히 물살을 이겨내고 누군가에게 닿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는데, 사실 나도 그런 기분이다.

어쩌면 저자도 그런 막연한 두려움, 걱정이 있기에 오히려 진심이니 진정성 등을 내세워서 자신을 안심시켜 보려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면 너무 냉소적인 생각일까?

어쨌거나 그런 믿음을 가진 이를 보는 게 참 신선하고 좋았다. 나도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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