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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미켈라 무르지아,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

by Jaime Chung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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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미켈라 무르지아,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

 

 

때로 '위 아 더 월드'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성차별적인 발언에 대한 이 책이 이탈리아인 저자에 의해, 이탈리아 상황에 맞게 쓰였으나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도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상에 참 왜 이런 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인가, 약간 한탄의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은 맞는 말 대잔치이다. 읽으면서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예컨대 이런 것들.

물론 현실에 안주하는 방법도 있다. 웃으면서 고분고분 "네."라고 말하는 착한 여자아이는 가부장제에서 항상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이다. "이건 별로예요."라고 말해 명예로운 자리를 포기한다면 고난의 길로 들어서는데, 과거에 누군가는 여성들을 위해 감내해 온 부분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는 주체적으로 이혼을 결정하고 엄마가 될지 판사가 될지 선택하며, 우리를 강간한 남성과 억지로 결혼할 필요도 없고 다양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는 남성들을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들도 가부장제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며 두려운 대상만을 존중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수천 명의 여성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족이 모두 멸시당하는 모욕도 마다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존경과 평화로운 삶을 포기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목숨까지 내걸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에 감사해야 하며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권리를 지켜내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 가부장제는 우리 여성들을 하녀로 부리고 싶었을 테지만 하녀가 승리를 거머쥐고 말았다. 가부장제가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유일한 권력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닌 부여받는 것이다.

여성이 됐든 장애인이 됐든, 어떤 것을 주장하고 싶은 소수자들에게 "좋게좋게, 남들에게 피해 가지 않게 표현하면 되잖아." 같은 말을 하며 얌전하게, 자신들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도록, 그래서 자신들이 무시할 수 있도록 그런 주장을 오직 소극적으로만 펼치기를 바라는 이들이 정말 최악이다. 좋게좋게 말하면 들어주지 않을 거면서!

시위를 하든 파업을 하든 뭔가 강력한 방법으로 항의를 해야지 안 그러면 무시할 거면서 '왜 같은 말도 좋게 못 하냐' 같은 헛소리를 하는 작자들은 애초에 그냥 말을 들어줄 마음이 없는 거다.

그러니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만이 정말 방법이다.

 

아래의 문단도 비슷한 맥락이다.

권력이 누군가에게서 빼앗아 오는 것이라면, 권력을 잡기로 결심하는 것은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 남성 지배의 논리에 편입된 여성은 자신에게 적용되는 군사 용어를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을 포식자로 동화시키거나 전설적이고 무시무시한 여성 인물을 연상시키는 여군, 여장군, 철의 여인, 암사자, 무녀, 여장부, 복수의 여신 같은 명칭을 좋아한다. 누군가 당신을 이렇게 부른다면 웃을 일이 아니다. 이건 칭찬이 아니라 두려운 대상만을 존중하는 시스템에서, 실제로 성공하려면 스스로가 두려운 존재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니 말이다.

 

며칠 전에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다음 문단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특히 더 공감이 갔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은 관심, 인정, 미디어 의 조명을 받으려면 남성보다 두 배는 뛰어나야 한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 권위 있는 여성이라 인정받는 유명한 노인 여성 3인이 있다. 바로 저명한 과학자 마르게티라  하와 리타 레비몬탈치니,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릴리아나 세그레다. 굉장히 유명하지만 소수에 불과한 이 여성들은 진저 로저스의 저주를 몸소 입증했다. 로저스는 프레드 아스테어가 하는 건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 단, 뒤에서 힐을 신고서 말이다. 대중 앞에 설 권리를 얻기 위해 남성은 최소한의 능력만 있어도 되지만, 여성은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래 문단을 읽고서는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 것 같았다. 성모 마리아가 과묵의 대명사로 인식됐다고!

그래서 여자들에게 그렇게 닥치라고 하는 건가 보다. 여자들이 자기들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할까 봐 ㅎㅅㅎ 

침묵은 미덕이다.  하지만 여성의 침묵만 미덕이 된다. 아무도 남성에게는 속으로 생각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속마음을 드러내라고 부추긴다. 그래서인지 남성들은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말을 내뱉는 것을 당연시한다. 반면에 여성에게는 성모 마리아처럼 무언의 사고 과정을 거치도록 강요한다. 전통주의적 성서 해석을 보면, 베들레햄 구유에서 골고다에 이르기까지 평생 딱 한 순간 입을 열고 줄곧 침묵을 지켰다는 이유로 성모 마리아가 과묵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하나만 더. 여성을 반드시 모성, 또는 아이, 가족 등과 연관 짓는 것 좀 이제는 안 했으면.

모든 여성이 아이를 원하거나 갖는 것도 아니고, 여성은 단순히 자궁 이상의 가치가 있는데 뭐만 있으면 기를 쓰고 가족이나 모성과 연관 지으려 하는 거 이젠 식상하지 않아?

어릴 적 천 리라짜리 지폐 앞면에 마리아 몬테소리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알레산드로 볼타의 초상이 새겨진 지폐 뒷면에는 코모의 볼타 박물관이, 미켈란젤로의 초상이 새겨진 십만 리라짜리 지폐 뒷면에는 그의 정물화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몬테소리의 얼굴이 있는 지폐 뒷면에는 한 아이가 등장한다. 가부장제 체제가 여성의 미덕으로 유일하게 인정한 유아 교육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이제는 리라 지폐가 발행되지 않지만 여성을 모성의 피조물로 보는 대중적 인식은 여전히 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코로나 타액 검사법, 4명의 엄마 연구원이 개발."

2020년 11월 어린이를 대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부를 검사하는 진단 검사법이 간소화되었다는 소식이 이탈리아 언론의 주요 기사 제목을 장식했다. 혁명적인 발명은 아니지만 매우 유용한 검사법이었다. 언론사들은 개발자인 4명의 여성이 '엄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이들은 엄마이기 전에 훌륭한 연구원이었다. 정확한 칭호는 과학자이지만 박사라고 했어 별문제 없었다.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그들의 의학적 전문성 대신에 모성의 역할이 부각된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과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엄마가 이 일을 해낸 것처럼 보도했다. 남성 연구팀장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가 부모인지 아닌지 상관하지 않았다. 이들이 엄마라는 사실을 부각시킨 내막은, 남성 과학자의 원동력은 과학이고 여성 과학자의 원동력은 모성 본능이라고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업체, 병원, 대학의 연구소에서는 날마다 수백 명의 연구원이 자녀 세대에 도움이 될 만한 과학적 발견을 이루기 위해 애쓴다. 자식이 없는 연구원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은 남성은 이성적 존재이고 여성은 관계적 존재라는 최악의 성차별적 편견과 상춘한다. 남성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일하지만, 여성은 오직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성에게 원동력이 되는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녀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성차별적인, 또는 여성 혐오적인 헛소리를 하는 이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라며 한마디 쏘아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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