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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서박하, <소비단식 일기>

by Jaime Chung 202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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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서박하, <소비단식 일기>

 

요즘 하루에 돈을 1원도 쓰지 않는 ‘무지출 데이 챌린지’가 유행한다고 들었다. 높은 물가나 변동 없는 월급 등 현재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어마어마한 카드 빚을 빨리 갚기 위해 아무것도 사지 않는 ‘소비단식’을 시작한다. 브런치북 9회 대상 수상작이라는데 아마 실천하기 힘든 것을 꾸준히 하면서 그 과정을 솔직히 공개했기에 그 점을 높이 산 것이 아닐까 싶다. 독자들도 소비단식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공감했을 거고.

저자는 소비단식을 위해 네 가지 기본 원칙을 정했다.

1년간 아무것도 사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정말 아무것도 사지 않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하나. 나 자신만을 위한 소비는 하지 않는다

남편과 딸까지 소비단식에 강제로 참여시킬 수는 없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산다. 나만을 위한 것은 사지 않는다. 다만 예전처럼 정신줄 놓고 막무가내로 사지 않고, 정말 필요한지 최소 한 번은 더 고민해보고 구매한다.

둘. 생필품은 산다

단, 정말 다 쓰고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딱 하나만 산다. 예를 들어 내가 쓰던 선크림이 떨어졌다면 남편 것이나 다른 남아 있는 것을 사용한다. 그렇게 다 쓰고 집 안에 선크림이 하나도 없다면 산다. (지금은 화장용, 운동용, 마트용 등 선크림이 여러 개다.)

셋. 누군가를 만날 때는 쓴다

친구를 만나서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는 당연히 쓴다. 내가 소비단식을 한다고 친구가 돈을 쓰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음식,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자. 선물이나 부조금 등에도 당연히 아끼지 않는다.

넷.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세운 원칙에 어긋난 소비를 했다면 반성하고 곧바로 다시 소비단식에 돌입한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일단 기본 원칙을 이렇게 정하고 소비단식을 시작했다. 소비사회를 거스르는 한 마리 연어가 되어 좋은 결실을 맺겠다고 다짐하며.

서박하, <소비단식 일기>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원칙이다. 아무렴, 시대가 어느 때인데, 게다가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일 텐데 <만 원의 행복>에서처럼 애교나 장기자랑을 보여 주며 할인 또는 맛보기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소비단식은 나에게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기간이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나쁜 소비습관을 버리는 시간이기도 했다.”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소비를 줄이려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자신’ 대신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해도 이 말은 들어맞는다).

저자는 소비단식을 시작한 지 7일 만에 처음으로 ‘무지출 데이’에 성공한다. 박사 학위를 딴 사람에게도 이건 어렵다! (여담이지만, 저자는 책 중반에 “서울에서의 나는 늘 부족한 인간이었다. 학위도 보잘것없고 1년간 놀고 있는 모습도 한심하다고 느꼈다.”라고 썼는데,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보잘것없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책 읽다가 놀랐다.) 물론 그 이후로 실패도 하고 다시 빚이 느는 일도 있었지만 (이래서 주식/코인이 위험합니다, 여러분!) 결국 빚을 모두 갚는 데 성공한다. 해피 엔딩!

이 책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소비를 줄이려는 개인적 노력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사회적 또는 문화적 요인에 대해 저자가 공부한 점을 독자와 나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이런 부분이다.

얼마 전부터 우연히 비누 하나로만 씻기 시작했다.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서 시도해본 것인데, 의외로 충분했다. 그러자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정말 꼭 필요해서 산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비누 하나만 사용하기로 했을 뿐인데, 덕분에 샴푸, 린스, 컨디셔너, 헤어팩, 폼클렌징, 스크럽, 바디클렌저, 풋클렌저 등이 모두 쓸모없어졌다. 나는 언제부터 누구의 영향을 받아, 어떤 방법으로 인해 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일까? 과연 지금껏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온전한 ‘내 생각’이었을까? 이렇게 보니 주변의 모든 물건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

사실 이러한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이미 많다. ‘반소비주의anti-consumerism’, 소비사회의 흐름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자 운동이다. 반소비주의는 물건·물질을 계속해서 사고 소비하는 ‘소비주의consumerism’에 반대하며, 광고가 소비주의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

우리 주변의 광고들은 인간의 행복과 상품을 강하게 연결한다. 이 제품을 쓰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약속한다.‘더 많이 소유하면 더 행복할 거야’가 핵심이다. 어떤 광고는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에 ‘○○아파트에 산다’고, 혹은 ‘○○자동차를 보여줬다’고 답하라 말한다. 삶의 질을 무엇을 소유하느냐, 어디에 사느냐로 평가하는 이 시대의 가치관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다행인 점은 이러한 광고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비사회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썩 자연스럽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나의 존재 가치를 물건이나 소유가 아닌 나 자신만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까? 그런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익명성이 너무도 강한 세상인지라 타인을 만나면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나조차도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 아이에게 말을 걸면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경계를 푸느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보이는 것, 소유한 것, 내가 사는 곳은 하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이 흐름은 정말 올바른 것일까? 당장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즉 소비단식으로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또한 저자는 본인이 소비를 줄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을 여러 가지 알려 주는데, 꽤 효과적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지고 있는 옷을 이용해 최대한 겹치지 않게 입을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짜낸 방법이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선 인터넷에서 내가 가진 옷 혹은 그와 비슷한 옷 사진을 구하거나 직접 찍었다. 그런 뒤 파워포인트로 사진을 불러와 이리저리 조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리고 저렇게 붙여가며 일곱 개에서 여덟 개 정도의 착장을 만들었다.

(…)

착장을 만들며 깨달은 것이 있다. 옷을 사지 않으려면 옷이 많아야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있어야 했다. 오히려 가진 옷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게 필요한 옷이 보이고 관리가 된다.

옷장을 확인해보니 청바지 열두 벌 중 늘 입는 건 두 벌뿐이었다. 고민하다 일단 잘 안 입는 청바지 두 벌을 정리했다. 최근에는 블라우스를 잘 안 입는데, 일곱 벌이 있었다. 그중 몇 벌을 덜어냈다. 2년간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치마들도 모두 정리해서 재활용 통에 넣었다.

옷장을 비우니 머릿속도 조금 개운해진 것 같았다.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일단 잘 접어 가방에 넣어두었다. 올겨울까지도 안 꺼내 입으면 모두 정리할 예정이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선택을 어렵게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 청바지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환경적인 대가가 뒤따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정리한다. 소비단식을 마칠 때까지 옷은 되도록 사지 않기, 그리고 필요하지 않은 옷은 나누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서박하, <소비단식 일기>

떠올려보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쇼핑을 한 이유는 작더라도 즉각적인 성취가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작은 성취를 대신할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글쓰기다. 내가 쓴 이야기가 바로 눈에 보이니 성취감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소비단식 기간에는 어떤 식으로든 꼭 글을 쓰길 추천하고 싶다.

두 번째로 찾은 건 걷기였다. 아이를 돌보다가 혹은 일을 하다가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쇼핑앱에 들어가거나 특가판매 코너를 기웃거렸다. 아이를 위해 장난감이라도 하나 사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나가서 걸었다. 잠시 바깥공기를 쐬고 근처 하천을 걸으면 쌓인 스트레스가 꽤 날아갔다. 조금이나마 운동을 했다는 작은 성취도 함께 따라왔다. 하루에 만 보를 다 채우면 그 자체가 기쁨이었다.

세 번째는 책 읽기다. 책상에 읽을 책을 늘 한 권씩 두었다. 전엔 일을 하다 막히면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 포털 사이트나 쇼핑앱을 뒤적거렸는데, 그 대신 곁에 둔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기로 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읽고는 싶은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안 읽은 책을 주로 택했다. 집에 이미 책이 많기에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일이 막힐 때마다 읽다 보니 평소에 잘 안 읽히던 책도 의외로 눈에 잘 들어왔다. 이렇게 다 읽은 책은 한쪽에 따로 쌓아두었는데, 그 책들이 쌓여가는 걸 보는 기쁨도 쏠쏠했다.

이 외에도 요리하기, 서랍장 정리, 화장실 5분 청소 등 바로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리스트로 적어두었다. 그런 뒤 내가 뭔가를 사려고 앱을 열 때마다 리스트에 있는 일을 하나씩 시도했다.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열 번에 여덟 번 정도는 소비를 멈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이룬 성취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 이룬 것을 혼자 조용히 기뻐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 혹은 친구들에게, 여의치 않으면 SNS에라도 인증하는 것이 좋다. 나는 주로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오, 잘했네”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족해졌다.

서박하, <소비단식 일기>

소비단식을 한 뒤로는 너무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글을 썼다. 코트를 사고 싶으면 그림까지 곁들여서 묘사하며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고는 코트를 가지고 싶은 이유를 최대한 자세히 파고들며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왜 지금 내게 이 코트가 필요한가? 왜 나는 이 목걸이가 가지고 싶을까? 왜 지금 꼭 이 떡을 사야 하는가?’

그렇게 파고들다 보면 많은 경우 ‘꼭 필요해서’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번 주에 부자 친구를 만나니 있어 보이고 싶다거나, 나이를 먹으면 고급 목걸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블로그 글을 봤다거나, 유행하는 떡을 사서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고 싶다거나 하는 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나의 현재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소비 욕구가 사라졌다. (물론 그 욕구가 변치 않고 남아 통장 잔고가 줄어들 때도 있었다.)

서박하, <소비단식 일기>

 

이 책을 벗 삼아 소비단식 또는 무지출 데이를 시도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빚을 갚기 위해 했다지만 빚이 없는 사람들은 저금 또는 단﹒장기적 목표를 위해 하면 될 듯.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자기 통제력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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