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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Lost King(더 로스트 킹)>(2022)

by Jaime Chung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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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Lost King(더 로스트 킹)>(2022)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

 

필리파 랭리(샐리 호킨스 분)는 어느 날 <리처드 3세> 공연을 보러 갔다가 그날부터 리처드 3세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는 동네에서 열리는 ‘리처드 3세 연구회(Ricardian Society)’에도 참여하며 리처드 3세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다. 너무 열중한 탓일까, 어느 순간부터 필리파는 리처드 3세의 환영을 보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Philomena(필로미나의 기적)>(2013)를 만든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고 각본가 제프 포프와 배우 스티브 쿠건(이 영화에서 필리파의 전남편 존 역도 맡았다)이 실화의 주인공 필리파와 같이 작업해 각본을 썼다. 필리파 본인에게 사실 관계에 관해 정보를 많이 얻었기 때문에 실제 사건에 아주 충실하다고 한다(필리파가 리처드 3세의 환영을 보는 것만 제외하고. 그건 영화적 각색이다). 참고로, <Richard III: The King in the Car Park>(2013)라는 TV용 다큐 영화가 필리파 랭리와 리처드 3세의 시신 발굴 이야기를 다룬 다큐이다(아마존 프라임에서 시청 가능하다).

“리처드 3세가 누구지?” 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리처드 3세는 현재 영국이라 불리는 곳에서 1483년부터 1485년까지 재위했던, 잉글랜드의 ‘요크(York)’ 가문 최후의 왕이다. 그가 죽고 난 후 헨리 7세가 집권하고 ‘튜더(Tudor)’ 왕조가 시작된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게임을 플레이해 보신 분이라면 ‘승마(Horseback Riding)’ 기술이 연구 완료되었을 때 나오는 알림창에 쓰인 인용구 “A Horse! A Horse! My kingdom for a horse!(내 왕국을 줄 테니 제발 내게 말 한 필을 다오!)”를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이게 바로 셰익스피어가 쓴 <리처드 3세>에 나오는 리처드 3세의 대사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리처드 3세는 ‘너무 추해서 지나가는 개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흉한 곱추에다가 악당으로 묘사되었는데, (필리파 덕분에) 발견된 유해를 분석한 결과, 실제로 리처드 3세는 곱추는 아니었고 옷을 입으면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의 척추 측만증이 있었다고 한다. 리처드 3세가 왕좌에 오르기 위해 두 조카(당시 왕자들)를 살해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튜더 왕조 설립 후 떠돌기 시작한 소문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진실은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 없다.

이 영화는 ‘아마추어’ 또는 ‘덕후’들에 대한 찬사라 할 수 있다. 필리파는 리처드 3세에 ‘꽂힌’ 이후 무려 7년 반이나 리처드 3세가 묻힌 곳을 연구하고(그 와중에 리처드 3세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만나 조언을 얻는다), 그곳이 현재 레스터(Leicester) 시의 사회 복지부 건물에 딸린 주차장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이곳을 파내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댈 수 있도록 레스터 시와 레스터 대학 관련자들 앞에서 기금을 요청하는 발표를 하는 등 열심히 뛰어다닌다. 마침내 필요한 비용을 모아 본격적으로 주차장을 발굴하기 시작하고, 필리파가 ‘여기다!’ 싶었던 곳에서 진짜로 리처드 3세의 뼈를 찾아낸다. 500년간 아무도 찾지 못했던 리처드 3세의 유해가 발견된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리파는 리처드 3세나 역사를 전공한 이도 아니었고, 그냥 아마추어로서 리처드 3세에 관한 불꽃같은 열정을 가지고 행동했을 뿐인데. 덕후의 승리라고나 할까.

영화에서는 레스터 대학 관련자들이 약삭빠르게 필리파의 공을 가로채려고 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영화가 개봉되었을 시기에 레스터 대학은 영화에서 필리파의 역할을 실제 이상으로 크게 그려냈다며 이는 정확하지 않은 묘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필리파 이전에 이미 그 주차장에 리처드 3세의 유해가 묻혔을 것이라고 추측한 학자들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레스터 대학은 필리파를 존중해서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필리파 이전에 다른 학자들이 그곳 주차장에 리처드 3세의 유해가 있을 거라고 추측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추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기금을 따내서 발굴 작업이 시작할 수 있게 만든 건 필리파였다. 아는 것하고 그 아는 걸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둘이 같은 일이라면 세상에 실패하는 다이어트, 틀린 문제, 망하는 사업이 어디 있겠나). 레스터 대학교는 ‘우리도 거기에 리처드 3세의 유해가 있다는 거 알았거든?’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걸 알았다면 왜 필리파보다 일찍 발굴 작업에 나서지 않았는가? 내게는 배때기가 부른 학자들의 비겁한 변명처럼 들린다. 아마추어라고 무시하고 싶고 비웃고 싶고 공을 가로채고 싶데 그럴 만한 건덕지가 없으니 ‘우리도 사실 알고 있었거든?’ 이 ㅈㄹ을 하는 거지. 알면 행동하시라고요~ (대충 고경표 짤)

샐리 호킨스는 <Happy-Go-Lucky(해피 고 럭키)>(2008)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내가 사랑한 배우고, 이 영화에서도 그녀의 연기는 역시 좋다. 스티브 쿠건이 연기한 필리파의 남편도 밉지 않고, 오히려 필리파의 든든한 조력자라는 점이 무척 훈훈하다. 큰 역경은 없어도 잔잔하게 감동적인, 실화 기반의 영화를 찾는다면 이 영화에게 한번 기회를 줘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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