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Eyes of Tammy Faye(타미 페이의 눈)>(2022)
감독: 마이클 쇼월터(Michael Show alter)
<타미 페이의 눈>은 타미 페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의 삶을 조명한 전기(傳記) 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서 타미 페이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해서 타미 페이에 대해 좀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타미 페이는 1970-1980년대에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이라 불리는 신학을 강론한 짐 베이커(Jim Bakker)의 아내로서 ‘텔레비전 전도사(televangelist)’의 선구자에 속한다. 그녀는 1961년 짐 베이커와 결혼해 미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설교했다. 그들은 타미 페이가 조작하는 머펫(muppet)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교했고, 몇 년 후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이 운영하는 ‘크리스천 방송 네트워크’에서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을 하게 되었다. 1974년에 이 부부는 ‘PTL(Praise the Lord, ‘주를 찬양하라’라는 뜻)’ 네트워크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번영 복음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 번영 복음이라는 것은, 신은 자신의 자녀인 인간들이 가난하게 살기를 원치 않으시며, 물질적인 부는 신의 축복이고, 따라서 신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풍요로워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부는 부끄러워하거나 경멸할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신에게 사랑받는다는 증거라는, 상당히 미국적인 이 사고방식은 이 자체로 보면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앙인이든 아니든 가난한 상태가 인간의 정신이나 행복, 안녕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오히려 그것을 파괴한다면 모를까.
문제는 짐 베이커가 이 ‘물질적 축복’에 푹 빠져서 거의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시켰고, 그 와중에 (후에 미국 법정에서 밝혀졌듯) 우편 사기와 텔레뱅킹을 이용한 금융 사기를 벌였다는 것이다(그들의 ‘사업’은 당신도 신께 물질적으로 축복받는 이가 되려면 우리에게 기부하라는 식이었다). 그는 ‘헤리티지 USA’라는 기독교 테마의 놀이 공원을 건설했는데, 테마 파크와 수상 공원, 쇼핑 몰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선, 기독교인을을 위한 종합 놀이 시설이었다. 이곳은 건설된 해에 미국 전역에서 세 번째로 많은 방문자가 찾은 놀이 공원으로 기록되었지만 이후 PTL 네트워크에 섹스 스캔들과 사기 혐의가 피어오르자 (당연히) 쫄딱 망했다. 섹스 스캔들로 말할 것 같으면, 1987년 제시카 한(Jessica Hahn)이라는 여성이 짐 베이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짐 베이커는 그녀에게 입막음용 돈을 주었다. 그리고 1989년 짐 베이커는 24건의 우편 사기, 텔레뱅킹 금융 사기, 그리고 또 사기를 저지를 음모 혐의로 45년 형을 받았다.
그 일들이 일어날 동안 타미 페이는 짐 베이커와 같이 PTL 네트워크에서 노래하고 설교했으며, 기독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자신만의 쇼도 있었다. 좀 더 사적으로는, 정황상 게리 팩스턴(Gary Paxton)이라는 컨트리 가수와 썸씽도 있었던 것 같다. 짐에게 이 관계가 들켜 끝장나고 난 후에는 신경 안정제를 과다 복용해 위험한 수준까지 갔다. 다행히 제때 알아차리고 끊긴 했지만.
짐 베이커가 교도소로 간 후에 타미 페이는 그와 이혼하고 ‘헤리티지 USA’를 설계한 로 메스너(Roe Messner)와 결혼했다. 그녀는 자신이 부른 노래 말고도 특유의 메이크업으로 이미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어서, 짐 베이커와의 이혼 후에도 대중 매체에 자주 출연했다(영화는 이 부분을 다소 축소해 묘사한 듯). 그녀의 메이크업은 과한 느낌이 강했는데, 마스카라를 여러 번 덧대어 바른 것 같은 굵은 속눈썹이 포인트였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에도 타미 페이(제시카 차스테인 분)에게 메이크업을 좀 다르게 해 볼 수 있게 지워 달라는 인터뷰어의 요청에 타미 페이가 내 눈썹과 아이라인, 그리고 입술 라인은 모두 반영구 시술된 것이라 지울 수 없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이 속눈썹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진짜로 타미 페이가 인기 있고 아직도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히 메이크업이나 기구한 삶, 여러 번의 결혼 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바로 그녀가 당시 보기 드물게 아주 포용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985년(레이건 대통령 시절이자 PTL이 아직 잘 나가던 시기), 그녀는 스티브 피터스(Steve Pieters)라는 게이 목사와 인터뷰를 한다(영화는 이 인터뷰를 재연했다). 그는 자신이 AIDS 보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이 시기에 그런 행동은 지지와 위로보다는 욕과 비난을 더 많이 불러왔다. 레이건 시대는 트럼프 시대 이전 시기 중 제일 ‘마초’스럽고 여성이나 동성애자를 많이 차별하던 시대였다. 그 당시 자신이 게이이고 AIDS 환자라고 말하는 건 거의 사회적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타미 페이는 그를 인터뷰하는 내내 그에게 친절하고 다정했으며, 그를 지지한다고 밝혔고, 심지어 인터뷰 후에는 ‘게이이든 아니든 그들은 우리의 아들이고 딸입니다’라며 동성애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폈다. 영화에서는 짐 베이커와 (그가 잘 보이려 애쓰던) 또 다른 ‘텔레비전 전도사’ 제리 폴웰(Jerry Falwell)이 이 말을 듣고 당황하며 제리 폴웰은 아예 인터뷰를 지켜보던 무대 뒤에서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나온다. 속좁은 사람들이야 어쨌든, 타미 페이는 진심으로 모든 이들이 신의 자녀들이며 신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또한 1996년에는 게이임을 공공연하게 밝힌 배우 짐 J. 불록(Jim J. Bullock)과 낮시간 토크쇼(<The Jim J. and Tammy Faye Show>)도 같이 진행했다. 짐 불록은 그녀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she was all about acceptance)”라고 말했다. 이러니 루폴(<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를 진행하는 그 루폴 맞다)을 비롯한 게이들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타미 페이를 사랑스럽고 다정한 사람, 기독교인의 좋은 예로 기억한다. 루폴의 토크쇼에 출연한 영상이나 타미 페이에 관한 짧은 전기 다큐 영상(아래)들을 보시라. 영상 아래에는 그녀를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코멘트들이 많다.
내가 그 당시를 살지는 않아서 타미 페이를 직접 TV에서 보거나 실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가 보기엔 참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른 때도 아니고 레이건 시대에 AIDS 환자/동성애자를 이렇게 사랑으로 포용하다니, 최소한 자기 남편이나 제리 폴웰 목사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고 본다(영화에도 타미 페이가 제리 폴웰과의 식사 자리에서 게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눈치 보지 않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그들의 표정이란!).
제리 폴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연기 얘기를 조금 하겠다.이 영화에서 제리 폴웰 역을 맡은 빈센트 도노프리오의 연기는 기가 막히다. 제리 폴웰이 환생한 줄. 짐 베이커 역의 앤드류 가필드와 타미 페이 역의 제시카 차스테인 둘 다 연기가 무척 좋은데 내가 보기에 앤드류 가필드는 짐 베이커의 인생 후반 연기를 하기엔 너무 젊은 얼굴이라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반면에 제시카 차스테인은 타미 페이를 연기하기 위해 메이크업뿐 아니라 목과 입술 등에 보형물을 사용했고, 그래서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든 얼굴도 꽤 자연스러워 보인다. 연기도 좋은데 분장까지 잘해서 완전히 타미 페이가 되는 데 최선을 다했으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당연한 이야기다. 여담이지만, 제시카 차스테인이 타미 페이를 연구하려고 이런저런 영상이나 사진 등을 많이 봤으나, 많은 이들이 패러디하는 것처럼 실제로 마스카라가 다 녹아서 (아래 SNL 영상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당연하다. 타미 페이는 워터프루프 마스카라만 썼으니까. 패러디하는 쪽에서 오버한 거다.
‘게이들의 아이콘’ 타미 페이뿐 아니라 실제 인간으로서의 타미 페이를 알고 싶다면, 기구하고 쇼핑을 좋아했을지언정 (이건 타미 페이의 딸도 인정했다) 마음만큼은 따뜻하고 사랑이 넘쳤던 타미 페이를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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