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Good Luck to You, Leo Grande(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2022)
⚠️ 아래의 영화 후기는 <Good Luck to You, Leo Grande(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202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소피 하이드(Sophie Hyde)
이 영화를 플레이하기 전, 그리고 후기를 쓰기 전에 나는 고민했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에 관해 나는 뭐라고 생각해야 하나? 나는 이에 관련한 입장이 있긴 한가? 내가 잘못되거나 부족한 생각을 나눴다가 욕을 들어먹으면 어쩌지? 정말 걱정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는 ‘성 노동자(sex worker)’, 그것도 남자 성 노동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큰 전제는 간단하다. 60대의 여성(남편은 2년 전에 사망했고 현재 성인 자녀 둘을 뒀다), 그것도 종교 교육을 가르치던 교사 출신 60대 여성 ‘낸시(엠마 톰슨 분)’가 ‘성의 즐거움’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20대의 젊고 매력적인 남성 ‘에스코트’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믹 분)를 고용한다. 연극으로 만들어도 꽤 좋은 것 같은 이 영화는,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도 (오프닝 장면에서 리오가 ‘출근’ 준비를 하는 카페를 제외하면) 낸시와 리오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호텔 방과 영화 후반에 낸시와 리오가 다시 만나는 호텔의 커피숍, 두 군데가 전부다. 엑스트라를 제외하고 주요 등장인물은 낸시와 리오, 그리고 낸시가 한때 가르쳤던 학생인 베키(이사벨라 래플랜드 분), 이렇게 셋뿐이다. 주연인 낸시와 리오가 대화와 케미로 극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엠마 톰슨은 믿고 보는 배우이니 물론 실망스럽지 않았지만, 리오 역의 다릴 맥코믹의 연기도 꽤 좋았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한 생각은 (엠마 톰슨 연기가 쩐다는 것 외에) ‘성별을 반전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되는구나’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성 노동자가 등장하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그 대단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1976)에는 무려 열두 살짜리 창부가 나오니, 말 다 했지. 그리고 남성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했나. 불우한 가정에서 학대를 받으며 커서 어쩌고 하는 뒷이야기라도 주어질 정도면 감지덕지다. 보통 창부들은 그냥 남성 관객들의 눈요깃감일 뿐이고, 그런 관음적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것 이외에 스크린 타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는다. 찌질하다 못해 힘 없고 권력 없는 창부들만 골라 죽이는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같은 자의 피해자로 그려지는 게 대부분 아닌가.
하지만 리오 그랜드는 다르다. 남성 성 노동자는 일단 그 존재 자체가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드물뿐 아니라 하는 역할도 다르다. 리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말할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 자신이 하는 일에 관한 철학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못생기거나 매력이 없는 여자를 고객으로 만나게 되면 어떻게 ‘그 일’을 하느냐는 낸시의 질문에 모든 여자들은 다 매력적인 구석이 하나쯤 있다고 대답하며 낸시의 어깨선과 가슴을 ‘매력 포인트’로 지적하는 리오. 그는 다정한 말투와 배려심을 갖췄고, 여성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는 듯 보인다.
물론 이건 그가 남성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성들은 남성에게 기쁨을 주는 데서 보람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남성 고객들에게 성적 기쁨을 주며 자기도 직업에 만족감을 느끼는 창부 캐릭터는 본 적도 없고, 상상하기도 어렵다. ‘마음씨는 착한(또는 다른 덕목을 가진)’ 창부 캐릭터는 남성 작가에 의해 하도 흔하게 그려져서 이를 가리키는 이름도 있을 정도다. ‘선한 마음의 매춘부(hooker with a heart of gold)’ (위키페디아 페이지 보기). 하지만 남성 에스코트 또는 성 노동자는 흔히 볼 수도 없는 데다가, 등장한다 해도 그들의 목적 또는 직업적 자부심은 여성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데 있는 것 같다. 리오가 첫 만남에서 불안해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계속해서 마음을 바꾸는 낸시를 다정한 말로 긴장을 풀고 웃게 만들듯이. 아무래도 ‘남성’이 (이성애자) 여성에게 돈을 받으면서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기에, 어떤 리뷰는 이 영화가 ‘성 노동을 미화한다(glorifies sex work)’(출처)라고도 썼다.
그런데, 내 생각은 이렇다. 왜 남성 성 노동자가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만 리얼리즘이나 정확한 묘사를 찾는 거지? 지금까지 여성 성 노동자가 등장한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은데, 거기에 대고는 이렇게까지 열렬하게 반응하지 않았잖아요. 페미니즘에서도 창부/성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시각이 나뉜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중 어떤 쪽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를 논하는데 굳이 그 얘기는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 여성의 성매매/성 노동(어떤 편도 들고 싶지 않아 두 용어 모두 사용하겠다)을 들먹이는 건 물타기처럼 보인다. 그냥 남성이 여성의 기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게 아니꼬운 거 아닌가? <블루 발렌타인(Blue Valentine)>(2010)이 논란이 되었던 이유처럼(이 영화엔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하는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위해 구강 성교를 해 주는 장면이 나온다). 언제부터 자기네들이 현실적인 묘사를 따졌다고. 창부들의 삶이나 이야기를 제멋대로 상상해서 저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ㅎㅎㅎ 우스운 일이다.
아, 이 영화가 이렇게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IMDB 기준)일 수 있는 이유 하나 더. 위에서 한 말이긴 하지만 남녀 성별이 반전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에 낸시는 두 번째 만남에서 리오라는 이름이 본명이 아니라는 것과 그의 본명이 무엇인지 알아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도 부드러워졌겠다, 리오가 계속 낸시에게 (고객으로서) 배려해 주고 다정한 태도를 보여 주니까 이 상대와 돈으로 맺은 관계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밖에서도 개인적으로 따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리오는 정색하며 화를 내고 낸시는 미안하다 사과하지만 결국 그는 짐을 챙겨 떠나고, 마지막으로 그의 서비스를 예약한 낸시와 만난다. 낸시는 리오가 얼마나 불쾌해하며 떠났는지 알기 때문에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낸시를 만나러 나온다. 성별이 반전되어 고객이 남성이고 성 노동자가 여성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전개이고 위험한 전개이다. 남녀 사이에 근력 차이가 있기에 다소 위험한 상황(예컨대 낸시가 그랬던 것처럼 성 노동자와 사적으로 만나기를 제안하는 상황)이 있어도 남성은 신체적으로 제압이 가능하다. 남성 성 노동자 측에서 다소 귀찮거나 화가 나는 일이 일어날지언정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데까지 갈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성 노동자가 여자라면? 고객이 ‘너의 본명을 안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장르는 스릴러나 호러로 변할 것이다. 다행히 낸시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어서 자신의 행동에 사과하고, 이에 대해 보상하듯 리오에게 자신의 본명과 정체를 밝히며, 호텔 커피숍 직원 베키에게 리오를 추천하기까지 한다. 이때 베키의 표정이 일품이다 ㅋㅋㅋ
어쨌든, 낸시는 결국 리오와 화해하고, 마지막으로 그와 시간을 보내다가 그가 잠시 섹스 토이를 가지러 갔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절정에 달한다. 영화 마지막 5분에 낸시가 전라 상태로 거울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결국 낸시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이다. 영화 포스터에 “성에 대해 긍정적이고 분명히 섹시한(Sex-positive and Positively Sexy)”라는 로그라인이 쓰여 있는데 딱 그 표현이 이 영화를 적절하게 설명했다. 성별을 반전해 상대적으로 맘 편하게 볼 수 있는 섹스 코미디, 또는 두 주인공이 연기력만으로 극을 계속 이끌어 나가는 영화를 원한다면 이걸 추천한다. 엠마 톰슨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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