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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도우리,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by Jaime Chung 2023.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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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도우리,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한 명으로서 우리 사회가 가진 ‘중독 문화’를 분석했다. 분석의 대상이 된 우리 사회의 단면은 총 9가지, 즉 갓생, 배민맛, 방 꾸미기, 랜선 사수, 중고 거래, 안읽씹, 사주 풀이, 데이트앱, 그리고 ‘좋아요’이다. 요즘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라면 무엇인지 다 익숙할 키워드들이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을 통해 깨달은 것도 분명 있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저자가 각 주제와 관련된 서적과 논문까지 참고하여 풍부한 통찰을 제공하기에 이 책은 무척 흥미롭고 감탄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갓생’이 추앙받는 요즘 문화를 다룬 1장 ‘갓생-어른 되기 어려워진 시대에 어른 되는 법’을 보자.

갓생(god+生)은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며 타의 모범이 되는 성실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로, 이미 이름부터 형용모순이다. 절대자인 신에게는 ‘살아감’이라는 개념이 해당되지 않으니까. 이건 ‘짱-킹-갓’으로 이어져오는 한국 밈(meme) 문화의 계보, 부풀려져온 과장법일 뿐이긴 하다. 그런데 ‘짱, 킹’에서 ‘갓’으로 넘어갈 때 특이점이 왔다. 짱, 킹은 속세의 차원이었는데 갓에서 갑자기 홀리해졌다. 인간 세상에서의 최고를 넘어 절대 진리라는 가치를 내세운다. 그런데 웃긴 게, 갓생은 아침에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명상하고, 물 한 잔 마시고, 그날 등록한 운동을 빠지지 않고, 스킨케어 루틴을 하는 등 소소한 일련의 일상 실천이다. 갓생의 일부인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도 그렇다. 고작 아침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났다고 기적이 일어난다고?

(…)

갓생이 더 골 때리는 건 ‘인간들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거다. 갓생은 대부분 생산성 앱 혹은 인스타그램에 인증 샷을 올리거나 트위터에서 ‘#갓생프로젝트’, ‘#오늘부터갓생1일’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글을 올리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날 할 일을 팔로워들과 공유하고 서로 응원을 남길 수 있는 앱 ‘투두메이트(todo mate)’, 공부시간을 기록해주는 플랫폼 ‘열품타(열정 품은 타이머)’,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공유하거나 다른 사람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는 유튜브 스트리밍 콘텐츠 ‘스터디윗미(study with me)’, 기상 시간이나 스크린 타임 등 목표를 정해두고 달성률에 따라 보증금을 돌려받는 앱 ‘챌린저스’ 등 갓생을 전시하는 공간은 여럿이다. 이런 생산성 앱을 우리 몸에 상처 자국을 남기지 않는 ‘디지털 채찍’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날카로운 풍자의 달인인 독일 작가 볼프강 M. 슈미트의 말이다. 슈미트는 생산성 앱이 엄격한 자기 감시와 자기 징벌 전략으로 “다만 (게으름이라는) 악에서 구할 뿐”이라고 말한다.

입장이 어떻든 간에 기준은 비용, 외모, 타인의 시선이라는 속세의 그것이라는 점에서 갓생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삶이다. 하지만 갓생의 반대는 현생(현실 인생)이 아닌 혐생(혐오스러운 인생)인 걸 고려해보면 갓생이라는 표현은 그럴듯하다. 평이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한, 희귀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

이 부분들을 읽고 나니 ‘그러게, 왜 갓생이라고 하는 걸까?’ 하며 의아한 마음이 되었다. 저자 말대로 이게 과장법이라는 걸 알지만, 신이 정말로 이렇게 살 거라고 생각하나? 신은 6~7시 사이에 일어나거나, 매일 운동을 하거나, 일과 사이에 생기는 토막 시간을 알차게 쓰거나 (예컨대 출퇴근 또는 등하교 시간에 영어 단어 외우기나 동영상 강의 보기) 하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위엄이나 신성에 조그마한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신이 왜 생산성이나 유용함, 효율성 따위에 집착하겠는가? 정말 우스운 작명법이다. 인간은, 아니 최소한 한국인은 그렇게 살아야만 신에 견줄 수 있다는 듯이. 아마 타인의 인정, ‘와, 정말 대단하다’라는 감탄과 인정을 받아야만 그 ‘갓생’이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혼자의 힘으로는 ‘갓생’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신은 그들을 믿고 경배하는 인간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오해 마시라.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알라든, 제우스든 정말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들은 인간이 자신을 경배하든 아니든 코딱지만큼도 상관없이 여전히 전지전능하실 거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 한국인이 상상하는 신이란, 특히 ‘갓생’ 같은 단어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상상하는 신이란, 남의 감탄과 인정, 경배를 받아야 마음 흡족해하고 그렇지 않으면 신적인 힘을 잃어 결국 사라지고 마는 존재인 듯하다.

 

‘오늘의 집’이라는 플랫폼과 이케아 위주로 인테리어에 중독된 문화를 살펴보는 꼭지도 무척 신선하고 흥미로웠는데(’누구나 예쁜 집에 살 수 있다’라는 말은 민주주의적으로 들리지만, 저자 말대로 인테리어는 디자인이 아닌 정치적﹒경제적 문제다) , 내가 제일 놀라며 공감한 부분은 랜선 사수에 관한 꼭지였다.

우리가 프로티언 어쩌구라는 그럴듯해 보이는 명찰을 단 메타몽2 취급을 받게 된 건(심지어 이젠 그렇게 분신술을 부려야 하는 모습이 N개로 늘어났다), 전통적으로 평균적인 노동자를 키워내던 대표적인 두 기관인 공교육과 대학 교육이 점점 무능해지고 있는 공기 때문이다. 대학교는 이미 스펙을 쌓는 취업 전문 기관을 자처한 지 오래지만, 취직 뒤에도 사내 스터디에서 계속 공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노동자의 현재 업무 스킬과 일터에서 요구하는 역량 사이의 간극을 뜻하는 ‘스킬 갭(skill gap)’은 시대의 문제가 됐다. 이 간극을 채우기 위해 ‘랜선 사수’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 ‘마이크로 크리덴셜(micro-credential)(실무 역량 인증 교육과정)’ 같은 에듀테크(edutech) 시장의 일부일 뿐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지만, 업무를 위해 사람들은 학생 시절 방과 후 시간보다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돈을 쏟고 있다. 대학교 학자금과 달리, 이 ‘학자금’에는 대출을 지원하거나 수강료가 반값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없지만 공부하는 직장인을 뜻하는 ‘샐러던트(saladent)’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면 말 다 했다. 그런데도 경영자들은 사내에서 직접 배우지 않게 하려 안달이다. 이는 글로벌 기업 아마존의 성공 요소로 꼽히는 ‘싱글 스레드 리더십(single-threaded leadership)’에서도 잘 드러난다. 싱글 스레드 리더십이란 말은 또 뭔가 하니, 한 사람에게 여러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지 않고 단 하나의 업무 목표에만 집중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이런 식의 책임과 업무에는 사수나 부사수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정말 기가 막힌 통찰이다. 나는 안 그래도 요즘 왜 일 잘하는 법, 소위 ‘일머리’를 내 돈 주고 ‘퍼블리’ 같은 플랫폼에서 배우나 했는데 (집에 와서까지 일 생각을 하고 싶은가요!?) 그건 내가 아주 뒤처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은 사수에게 배워야 하는 게 맞는데 기업들이 인재를 발굴해서 양육하는 데 돈과 시간을 들이는 데 인색해져 버렸으니 그런 건 기대하기 어렵게 된 거다. 그러니 노동자 본인이 (그것도 화이트 칼라 노동자만 해당) 퍼블리니 인프런이니 하는 플랫폼을 이용해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이건 정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약간의 오탈자와 조사를 빠뜨린 듯한 문장에 살짝 당황했지만, 뒤로 갈수록 그런 편집 실수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내용이 너무 좋아서 내용에 집중하게 되니 그런 게 있더라도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말하자면 달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손가락에 눈이 갈 리가? 도우리라는 작가를 눈여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또한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다른 텍스트들도 무척 설득력이 있고 흥미로워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앞으로 읽고 싶은 책들이 한 무더기 생길 수도 있다. 현대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비평서들을 찾아 읽고 싶을 때 참고해도 좋겠다. 대학생, 특히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는 고학년이라면 충분히 이 책에서 비평하는 모든 것들을 다 공감할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사회학 일반을 다루거나 사회학 비평과 관련된 책을 찾는데 어렵지 않고 일단 내가 실생활에서 공감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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