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나누기] 호주에서 영화를 보려면 인내심을 길러야 하는 이유

[아는 것 나누기] 호주에서 영화를 보려면 인내심을 길러야 하는 이유

 

이번 달 초, 2023년 4월에 본 영화 통계 글에서 내가 4월에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호주는 영화 신작 공개가 느리다’라는 점을 들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적어도 이것만큼은 엄연한 사실이다. 호주에서 체류하는 외국인들과 호주인들 모두 이에 동의하리라고 본다.

가장 최근의 예시를 들자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すずめの戸締とじまり(스즈메의 문단속)>(2022)은 일본에서는 2022년 11월 11일에 개봉했고 한국에서는 2023년 3월 8일에 개봉했다. 호주에서는? 2023년 4월 13일이었다. 4월 말에 한국에서 500만 관객을 돌파할 거라는 예측이 돌았지만 (기사), 나는 이미 ‘어차피 이만큼 늦은 거,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에 들어와서 집에서 편히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하는 심정으로 포기하고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또 다른 예는 <Renfield(렌필드)>(2023)이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니콜라스 홀트가 주연한 이 코미디 영화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재미있겠다 생각해서 보러 가고 싶었는데, 한참 잊고 있다가 호주 내 개봉일을 검색해 보니 5월 25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4월 19일에 개봉했다는데! 왜 나는 한 달이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영화라는 게, 전자 기기와 비슷하게 ‘남들보다 먼저 본다(사용한다)’라는 데 의미가 있기에 나는 이렇게 호주 내에 신작 개봉이 늦춰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검색해 봤다(아래에 나오는 내용은 대부분 여기를 참고했다). 도대체 왜 호주는 해외 영화를 제때제때 들여오지 않는가? 제때 들여오면 사람들도 많이 보러 갈 거고, 그러면 해적질로 입는 피해도 그만큼 줄어들 텐데 말이다(참고로 호주는 네 명 중 한 명이 온라인에서 불법 다운로드를 한다고 한다. 자랑할 만한 사실은 아니지만. 출처는 무려 호주의 공영 방송국 SBS).

 

이미지 출처: Unsplash

 

첫 번째 이유는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어린 층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방학일 때 더 성적이 잘 나올 것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은 학교 방학 기간에 맞춰서 들여온다. 일례로, <The Lego Movie(레고 무비)>(2014)는 미국 현지에서는 2014년 2월 7일, 한국에서는 2014년 2월 6일에 개봉했다. 반면에 호주에서는 방학 기간을 기다리다 보니 2014년 4월 3일이 되어서나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들여온 배급사 빌리지 로드쇼(Village Roadshow)는 이 결정 때문에 해적질로 큰 피해를 봤다며, ‘앞으로는 우리 영화를 미국의 상영 시간과 날짜 이내에 맞추기로 정책을 바꿨다’ 해 놓고 <The Lego Batman Movie(레고 배트맨 무비)>(2017)는 또 2017년 3월 30일에 개봉했다. 반성이 없구만? ☹️

호주 내 개봉이 늦춰지는 두 번째 이유는 프로모션 때문이다. 영화 프로모션을 위해 호주를 방문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 시기를 맞추기 위해 호주 내 개봉이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래도 유명한 배우가 직접 프로모션을 온다면 영화를 알리는 데와 수익을 내는 데도 도움이 되다 보니까 이건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호주인들은 ‘우리 박스 오피스는 전 세계 다른 나라에 비교하면 눈곱만 한데 저 멀리서 여기까지 프레스 투어를 온다고? 음, 영화가 구려서 어떻게든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군' 생각하는 것 같다. 웃프다... 호주인들도 굳이 유명 배우 프로모션을 한 달 이상 기다려서 보느니 그냥 그런 거 없어도 빨리 영화관에서 보기를 선호하지 않을까.

세 번째 이유는 영화 관련 축제 상영을 노리기 때문이다. 호주에도 시드니 영화제(Sydney Film Festival)나 멜버른 국제 영화제(Melbourne International Film Festival)처럼 잘 알려진 영화제가 있다. 이 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된다면 많은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 호주에서 해당 영화를 선보일 시기를 영화제까지 미루는 것이다. 참고로, 호주에서는 35세에서 49세의 여성이 영화표 구입에 있어서 큰손이라는 통계가 있다(출처). 나도 호주에서 <The Seagull(갈매기)>(2018)를 극장에 가서 본 적이 있는데, 상영관에 들어가니 뻥 안 치고 내 시야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여성이었다. 그것도 이미 은퇴하셔서 삶을 편하게 즐기고 계실 할머니들 나잇대의 여성들. 이분들이 없으면 호주 영화계가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만든 광경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이유는 시상식 시즌이다. 시상식 시즌은 대충 한 해의 11월부터 시작해 그다음 해 2월쯤 오스카가 발표되며 끝이 난다.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명한 영화 시상식 후보로 올랐다고 하면 당연히 엄청난 홍보가 된다. 호주에서는 각 영화 시상식 시즌에 맞춰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도록 개봉을 늦추기도 한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즈에서 한 영화에 관해 쓴 호평을 인용하며 이 영화가 인기를 끌지 어떨지 하는 확신 없이 개봉하느니, 그다음 해에 오스카 같은 영화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후에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게 훨씬 더 영화 홍보도 쉽다. 그래서 <The Shape of Water>(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도 미국에서는 2017년 12월 1일에 개봉했지만 호주에서는 그다음 해인 2018년 1월에서야 개봉했다.

이러니 호주에서 신작 영화를 보려면 강제로 인내심이 길러지는 것이다.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던데 나는 이렇게 기다리다간 그냥 그 영화는 까먹고 아예 안 보러 가게 될 것 같다. 진짜 기다리다 지친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호주 내 영화 팬들끼리 비행기를 전세 내서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영화만 보고 돌아오는 투어를 기획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호주에서 체류할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꾹 참아야 볼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