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나누기] 지혜로운 공주가 왕자를 구한 이야기(Feat. 사비트리와 사티아반)
왕자가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는 지겹다. 왜 공주가 왕자를 구하면 안 되지? 그런 물음에 답하듯, 힌두교 신화에는 빛나는 지혜로 자신의 남편을 죽음으로부터 구한 사비트리(Savitri)라는 공주의 이야기가 있다.
사비트리는 원래 태양의 여신인데, 마드라 왕국(Madra Kingdom)에서 태어난 한 공주의 이름이기도 한다. 자식이 없던 마드라 왕국의 왕 아쉬바파티(Ashvapati)는 18년이나 속죄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봉헌을 올렸다. 이에 기뻐한 여신 사비트리는 축복을 내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쉬바파티는 왕조를 이을 수 있도록 많은 아들을 주십사 기원했으나 여신은 왕이 딸을 얻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왕의 첫 번째 왕비인 말라바의 공주는 회임을 했고 정말로 딸을 낳았다. 아쉬바파티는 여신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딸의 이름을 사비트리라고 지었다.
이 공주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관대하며 지혜로운 여성으로 자랐다. 많은 남성들이 청혼했으나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자신의 남편감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황금 마차를 타고 은둔처와 숲속을 방문했다. 그러다가 한 숲에서 그녀는 사티아반(Satyavan)이라는 청년을 만났다. 그는 잘생겼을 뿐 아니라 똑똑하고, 정의롭고, 관대했다. 그녀는 그에게 끌렸으나, 그는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다. 사티아반은 그녀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야기인즉슨, 사티아반은 원래 샬바 왕국(Shalva Kingdom)의 듀마트세나(Dymatsena)라는 눈먼 왕에게서 난 왕자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인 듀마트세나 왕은 쿠데타에 의해 내쳐졌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숲에서 살게 되었다. 사티아반은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숲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비트리는 가족을 지키려는 사티아반의 모습에 감동받았고, 자신과 동등한 파트너를 만났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데리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갔다.
사비트리가 다시 찾은 마드라 왕국에는 아버지 곁에 나라다(Narada)라고 하는 현자이자 신들의 메신저가 있었다. 사비트리의 아버지인 왕은 자신의 딸이 마음에 드는 훌륭한 젊은이를 찾아낸 것에 기뻐했고 둘의 결혼을 축복해 주려고 했으나, 나라다는 불길한 예언을 했다. 사티아반의 수명이 일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비트리는 충격을 받았으나 자신의 진실한 하나뿐인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를 지켜내리라 다짐했다. 이에 감동받은 나라다는 그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이려면 기도를 열심히 하고, 단식을 하며, 특별한 약초를 쓰라고 조언해 주었다.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후 사비트리와 사티아반은 숲속의 아담한 집으로 들어가 살았다. 일국의 귀한 공주님이 사랑을 위해 편하고 호화로운 삶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둘은 현자가 가르쳐 준 방법을 따르며 살았으나, 정말로 그 말을 처음 들은 지 일 년째 되는 날 사티아반이 나무 장작을 패다가 쓰러져 숨을 거둔다. 햇볕이 쨍쨍 뜨거운 날이었다. 사비트리는 울다가 저 멀리서 죽음의 신 야마라지(Yamraj; 또는 야마(Yama)라고도 함)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이 거대한 신이 사티아반의 영혼을 거두는 것을 바라보았고, 신이 저승을 향해 길을 떠나자 곧 따라갔다. 뜨거운 열기에 목이 마르고 발바닥이 데여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자신을 따라오는 사비트리를 보고 약간 짜증이 난 야마라지는 그녀에게 자신을 따라오기를 멈추는 것을 조건으로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 대신, 사티아반을 살려 달라는 부탁은 듣지 않겠다고 확실히 해 두었다. 사비트리는 야마라지에게 자신의 시아버지, 그러니까 사티아반의 아버지가 시력을 되찾으시길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 소원은 즉시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비트리는 야마라지를 따라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계속 따라오는 사비트리 때문에 짜증이 난 야마라지는 두 번째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제안한다(’이젠 제발 좀 가라…’). 사비트리는 사티아반과 시아버지의 왕국이 재건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것 역시 즉시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비트리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저승까지 죽음의 신을 따라갔다. 그는 그만큼 죽은 자에게 헌신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정말 마지막으로 세 번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사비트리는 많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사티아반이 죽었고, 사비트리가 다른 이와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이 지혜로운 대답에서 빠져나갈 구석을 찾지 못한 야마라지는 결국 사티아반을 되살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혜로운 사비트리는 자신의 남편을 죽음에서 되살리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어떤 판본에서는 사비트리가 세 번씩이나 야마라지를 귀찮게 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한 번에 “시아버지가 사티아반의 아이들이 황금 왕좌에서 장난치는 모습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해서 시아버지의 시력 회복 + 사티아반의 회생 + 왕국의 재건이라는 세 가지 소원을 모두 이루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버전은 아시아인답게 효율성이 뛰어나고 사비트리가 좀 더 꼼수에 능한 느낌이라 좋아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판본은 사비트리의 용기와 헌신, 불굴의 의지가 잘 드러나서 그것도 좋지만.
이 이야기는 위키페디아에도 있고, TED-Ed 영상도 있다(위 동영상). 사비트리와 사티아반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좀 더 다양한 판본도 찾아서 읽어 볼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라. 오늘의 옛날 이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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