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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 나누기

[아는 것 나누기] 영어로 ‘병지 머리’는 뭐라고 할까? + 호주의 ‘병지 머리’ 문화 💇‍♂️

by Jaime Chung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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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 나누기] 영어로 ‘병지 머리’는 뭐라고 할까? + 호주의 ‘병지 머리’ 문화 💇‍♂️

 

나는 ‘병지 머리’가 싫다. 병지 머리를 한 남자들을 참 많이 봤는데, 그 머리가 어울린다 싶은 사람은 못 봤다. 물론 아이돌처럼 얼굴이 뛰어나게 잘생긴 이들이 병지 머리를 한 것도 봤지만, 그건 그냥 ‘얼굴이 잘생겨서 저걸 뚫고도 미모가 빛이 나네’ 하는 거지, ‘병지 머리 너무 잘 어울려!’ 같은 생각은 결코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솔직히 잘생겼으면 병지 머리가 아니라 다른 예쁜 머리를 했을 때 더 잘생겼을 거다. 그러니 아이돌 팬들도 자기 아이돌이 병지 머리를 했다고 하면 싫어하지 😩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나처럼 ‘병지 머리 진짜 싫다… 😡’ 하는 마음을 글로벌하게 영어로도 표현하고 싶으실 수도 있으니까, 병지 머리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부터 알려드리겠다. ‘mullet’이라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앞은 짧고 옆과 뒤는 긴 남자 헤어스타일’이라고 나오는데, 이게 딱 병지 머리를 말하는 거니까 ‘mullet’이라고 하면 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병지 머리를 해도 잘생긴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호주에서 온 이 친구처럼(혹시 모르실 분들을 위해 이름을 알려 드리자면 ’스트레이 키즈’의 필릭스이다). 놀랍게도 호주는 병지 머리가 하나의 문화다. 호주의 공영 방송국 SBS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호주 남자들은 병지 머리를 해 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2020년 이후부터 그 인기가 더 높아졌다. 나도 개인적으로 코비드-19 이후로 병지 머리를 호주에서 더 많이 보게 된 것 같다고 느꼈는데 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

 

왼쪽이 셰인 원

 

여튼, 호주에서 병지 머리가 특히 더 인기인 이유는 스포츠 스타들 때문이다. 라이언 파펜후이젠(Ryan Papenhuyzen)이나 조시 파팔리(Josh Papali’i)같은 호주 럭비 리그 선수들이나 베일리 스미스(Baily Smith)나 잭 싱클레어(Jack Sinclair) 같은 풋볼 선수들까지 이 머리를 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로한 브라우닝(Rohan Browning)의 별명은 무려 ‘나는 멀릿(The Flying Mullet)’이었다. 호주의 골프 챔피언인 캐머런 스미스(Cameron Smith)는 미국 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병지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병지 머리를 선보였지만, 아무래도 이 모든 병지 머리 인기의 근원은 호주의 전설적인 크리켓 선수 셰인 원(Shane Warne)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엄청난 실력으로 크나큰 인기를 누린 스포츠 스타였고, 그래서 이 (망할) 머리 스타일이 더 널리 퍼진 것도 있다.

 

사진 출처: 뉴요커

 

호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유명한 호주 록 밴드 ‘AC/DC’ 멤버들도 병지 머리를 했다.

 

2020년에는 ‘블랙 독 인스티튜드(Blag Dog Institude)’라는 비영리 단체가 ‘정신 건강을 위한 멀릿(Mullets for Mental Health)’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호주에서 18-24세 청년들의 제1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고 하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나는 정신 건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점을 말하지 않고도 보여 주기 위해 병지 머리를 하자는 게 큰 요지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기사는 벤 애봇(Ben Abbott)이라는 남성의 사연을 실었다. 사연인즉, 애봇 씨는 자신도 2018년도에 정신 건강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이에 관한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이 캠페인에 참여했다고 한다. 아들에게는 어울릴지언정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 머리 스타일을 하는 게 좋은 대화 주제가 된다고.

 

음, 참 좋은 명분이지만 그래도 병지 머리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호주는 다른 나라보다 병지 머리에 관한 자부심도 크다. 호주인들은 자신을 ‘larrikin’, 그러니까 ‘불량배, 무뢰한’ 뭐 그런 걸로 여기는데 (그러니까 호주인들이 무법자였던 네드 켈리(Ned Kelly)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 아니겠는가) 원래는 1800년대 호주의 노동 계급 청년 깡패(gang)들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이들은 패션을 일종의 반항의 수단으로 생각했고, 기존 기득권층과 다른 옷, 다른 머리 스타일을 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그들이 했던 머리가 바로 이 병지 머리다(참고로 이 머리는 어디 미용실에서 한 게 아니라 직접 자른 거라고 한다). 그래서 호주는 병지 머리를 문화의 일부로 여기고 그렇게들 많이 하는 것이다. 심지어 2018년에는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 주에 있는 작은 탄광촌 쿠리 쿠리(Kurri Kurri)에서는 ‘병지 머리 축제(mullet festival)’까지 열렸다고 한다(기사). 놀랍게도 ‘성인’ 부와 ‘주니어’ 부가 나누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와.. 그렇군요…

 

사정이 이러하니 ‘병지 머리’는 호주 문화와 동의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이만큼 병지 머리에 관한 자부심이 큰 호주에서 병지 머리의 인기가 식을 것 같지 않으니 병지 머리를 안 보고 싶으면 차라리 내가 호주를 떠나는 게 빠를 듯하다. 그냥 눈 딱 감고 못 본 척하고 사는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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