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나누기] 직장인이 늦게 자는 이유 - 내게 잠보다 여가를 달라!
아래 짤들은 인터넷에서 보신 적 있을 것이다. 대략 ‘직장인들이 평일에 늦게 자는 이유.jpg’ 같은 제목을 달고 올라오는 이런 글들은 하루 종일 직장에 매여 있다가 퇴근 후 조금이나마 자신의 삶을 살아 보려고 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놀랍게도, 아니 전혀 놀랍지 않게도, ‘하루간 부족했던 여유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잠을 줄이는’ 것은 한국 직장인들만의 현상이 아니다. 영어에도 이를 가리키는 표현이 있다. ‘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이라고 한다. ‘revenge’는 복수라는 의미인데 여기에서는 그간 하지 못했던 것을 몰아서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다들 아시듯이 코비드-19 때문에 하늘길이 막혔다가 다시 제한이 풀린 이후 그동안 못 갔던 해외 여행을 만회하려는 여행자들의 심리로 다시 여행산업이 살아나기 시작했는데, 이런 현상을 묘사할 때도 ‘revenge’(보복적)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bedtime procrastination’은 말 그대로 자러 가는 시간을 미루는 것이다. ‘수면 재단(Sleep Foundation)’이란 이름의 웹사이트는 이를 이렇게 정의했다.
“보복적 취침 시간 연기”는 자유 시간이 부족한 일상의 스케쥴로 인해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수면을 희생하려는 결정을 가리킵니다.
BBC도 중국의 ‘996 근무제(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 6일을 근무하는 것) ’에 지친 직장인들이 수면 시간 대신 차라리 여가 시간을 우선시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쓴 적 있다. 중국인들은 이를 ‘보복성오야(報復性熬夜)’라고 한단다. BBC 기사에 따르면 이는 다프네 K. 리(Daphne K. Lee)라는 저널리스트가 2020년 6월에 한 트위터 포스트에서 사용한 표현인데, 그는 이 현상을 “낮 시간의 삶에 별로 통제력이 없는 사람들이 늦은 저녁 시간에 일종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일찍 자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위에서 언급한 웹사이트는 취침 시간 연기의 예방법으로 ‘일정한 수면-기상 시간을 유지하라’, ‘늦은 오후나 저녁 시간대 알코올이나 카페인 섭취를 피하라’, ‘수면 시간 최소한 30분 전에는 휴대전화와 태블릿을 비롯해 전자 기기의 사용을 멈추어라’, ‘수면을 준비하는 안정된 루틴을 개발하라’ 등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내가 보기엔 다 핵심을 벗어난 것뿐이지만. 많은 직장인들의 경우 보복적 취침 시간 연기는 하루 종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잠을 줄여서라도 그걸 하고 싶다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그러니 차라리 일과 중에 틈틈이 자신이 좋아하는 걸 5분, 10분씩이라도 하려고 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예컨대 독서가 취미라면 출퇴근 시간에 전자책으로라도 책을 조금이라도 읽는다든지, 게임이 하고 싶으면 점심시간에 잠깐 20분, 30분이라도 짬을 내서 모바일 게임이라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리고 진짜 중요한 일, 해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에 들이는 시간을 점검해 보고 그런 것들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여서 여가 시간을 조금 늘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 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고치려면 기업이 사람들을 갈아넣는 문화부터 싹 바꿔야 할 것이다. ‘주 69시간 근무제’라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은 하지도 말고. 사람은 로봇이 아니다. 일할 땐 일해도 쉴 때는 쉬어줘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게 계속 살아갈 수 있다.
나도 하루 종일 일만 하다 집에 오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하고 현타가 온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조금이나마 책을 읽고, 점심시간이나 일과 중에 틈이 난다면 블로그에 쓸 거리를 조금이라도 구상하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건 바쁜 하루더라도 내가 나를 조금이나마 즐겁고 편하게 해 주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 그래야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낼 테니 말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본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노력해 보자. 우리는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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