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나누기] ‘심프(simp)’- 남자가 여자에게 조금만 친절해도 조롱거리야?
최근 새로운 표현을 알게 됐다. ‘심프(simp)’. 심슨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검색해 봤더니, 정말이지 세상이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검색 결과가 나왔다.
일단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다. ‘심프(simp)’는 ‘심플턴(simpleton; ‘얼간이, 숙맥’이라는 뜻)’의 줄임말이다. 위키페디아는 이 단어를 이렇게 정의했다. ‘심프는 애정이나 성적인 관계를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 대체로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과도한 동정심과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묘사하는 인터넷 슬랭 용어이다.’
이 말은 대체로 상대 여자가 자기랑 같이 자 줄 가능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에게 과도한 관심을 쏟고 뭐라도 다 해 주려고 하는 남자를 비웃을 때 쓰인다. 과하게 상대 여자에게 동정심이나 부드러운 면모를 보인다는 점이 비웃음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호구라는 뉘앙스라고 할까. ‘으이구 멍청이! 간이고 쓸개고 다 내 주다가 (상대가) 너 빤쓰까지 벗겨 가겠다!’ 하고 말하고 싶을 때, 정말 그런 상황에서만 쓴다면 별로 문제가 없을 거 같은 단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문제는 이 단어를 많은 이들이,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당연히 서로에게 베풀어야 하는 기본적인 호의나 친절에도 쓴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보자. ‘#SimpNation’이라는 해시태그를 유행시킨 한 틱톡 사용자의 틱톡은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상대 여자의 SNS 포스트에 ‘🤤’라는 이모지를 댓글로 달았고, 그 댓글에 여자가 ‘고마워 하하(thnx lol)’ 하는 별거 없는 대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남자는 그 사실이 기뻐서 싱긋 웃고, 다음 장면에 ‘Welcome to SimpNation’이라는 자막이 뜬다.
상대 여자는 아마도 틱톡 사용자와 썸이 있는 상대거나 최소한 그가 관심이 있는 상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원래 누군가를 좋아하면 별거 아닌 거에도 행복하고 기쁘고 그러지 않나. 근데 그걸 ‘simp’라고 부르면서 자조적으로 비웃는 거다.
‘simp’의 다른 예는 이렇다. 당신이 남자인데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면 당신은 ‘simp’다.
- 당신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최애 영화를 기억한다.
-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옷을 쫙 빼입는다.
- 여자에게 온 문자에 “너무 빨리” 답장한다.
- 비가 올 때 상대 여자가 비에 안 맞게 해 주려고 당신의 재킷을 걸쳐 준다.
-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하나하나 답장을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조금만 잘하거나, 조금만 친절하거나 다정하게 대해도, 아니면 최소한 잘 보이려고 애쓰기만 해도 이렇게 ‘simp’라는 조롱을 당하니, 유독한 남성성의 끝판왕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상대 여자에게 딱히 사적인 감정, 이성적 호감이 없어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좀 잘 대해 줄 수도 있는 건데 그걸 가지고도 즉 남자답지 못하고 물러터진 녀석이라고 비난해 대니,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남녀가 서로를 존중하며 양성 평등을 이룰 수 있을까. 여성을 친절하게 대하는 게 그렇게 자존심 상하고 멋이 안 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남성이야말로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 이제는 이런 말을 쓰지 말자.
위에서 내가 이야기한 이 단어의 여성 혐오적이고 유독한 남성성과 관련한 의미에 관해 더 읽어 보고 싶다면 아래 기사들도 참고하시라.
https://www.menshealth.com/sex-women/a31994140/what-is-simping/
https://www.nytimes.com/2020/07/07/style/simp-history-slang.html
https://edition.cnn.com/2021/02/19/health/what-is-simp-teen-slang-wellness/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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