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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쌍딸, <우리 인생 정상 영업합니다>

by Jaime Chung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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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쌍딸, <우리 인생 정상 영업합니다>

 

이 책의 제목만 들어도 생각나는 짤이 있으실 것이다. 바로 이거.

 

 

이 웃기고 슬픈 에세이의 저자는 야구 팬으로서, 살다 보면 끝내기 실책 같은 상황이 온다는 것, 그리고 그럴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그 순간을 견디고 계속 플레이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이해에 기반한 저자의 유머러스한 공감은 아주 개운하고 유쾌하다. (내가 마셔 본 적은 없지만) 야구장에서 야구 게임을 직관하며 치킨과 곁들여 마시는 맥주 같은 느낌이랄까? 웃길 때는 확실히 웃긴데 또 진지할 때는 무척 진지하기도 하다. 이분은 원래 트위터를 하시고 또 포스타입에서 야구 관련 이야기를 연재하시던 분인데, 그게 유명해져서 첫 번째 책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를 냈다고 한다. 이번 <우리 인생 정상 영업합니다>는 두 번째 . 순전히 글솜씨로만 인기를 얻어 출판 제의까지 얻었으니 얼마나 글을 재미있게 잘 쓰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글을 써서 돈을 벌려면 이 정도는 써야 하는구나, 하고 나도 감탄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감탄한 부분이자 제일 위로를 받았던 문단을 몇 군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껏 살면서 내 인생은 걸릴 것 없이 풀리는 것 같았다.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나를 너무 사랑해 주는 엄마를 만났고, 의리와 재미까지 겸비한 친구들을 만났다. 가장 원하던 대학에 붙었고, 가장 원하던 직장에 입사해서 연봉도 빠르게 올랐다. 한 번도 인생의 슬럼프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올 줄도 몰랐다. 그런데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똑같이 굴러가는 삶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입에 밀어 넣는 밥에서 아무 맛이 나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누워 있다 똑같은 내일을 보내는 상상을 하다 잠들 때.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 내가 고장이 났다고 생각했다. 별문제 없이 하루를 웃으면서 끝낼 때는 몰랐던 삶이었다. 하루에 한 번도 웃음을 지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내가 2군에 내려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좀 절망적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난 항상 1군에서의 삶을 누린 셈이었다. 처음으로 떨어진 2군 필드에서 그냥 멍하게 서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야구에서 2군이 왜 필요할까? 그냥 잘하는 놈들만 뽑아다가 1군 경기만 하면 안 되나? 예, 안 됩니다. 2군이 없으면 1군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군은 일종의 육성 센터, A/S 센터의 역할을 한다. 1군 무대에 오를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키워내고, 경기력이 떨어진 선수들이 경기력을 찾는 무대이다. 여기서는 반드시 이길 필요도 없다. 물론 이기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전의 자신보다 성장하는 자신을 만나는 과정에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어떻게 매일매일을 이기고 사나. 어떻게 매일매일을 훌륭하게 사나. 살다 보면 어딘가 고장이 나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다시 살면 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서,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그냥 살면 된다.

좀 뻔뻔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한테 제일 관대하다. 나도 실수를 한다. 꽤 많이 했을걸.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어서 마음 써봤자 해결되는 게 없다는 아주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딱히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일부러 한 거 아니고, 남 괴롭힌 거 아니면 됐지 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어차피 그딴 짓을 저질러놓은 나와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쭉, 눈 감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내가 나를 싫어하면 진짜 답이 없다. 나랑 좀 친하게 지내야 살 만해진다. 과거의 나도 나고, 실수한 나도 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내 추한 모습까지 사랑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 부분들만 쏙 뽑아내고 싶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것들을 하나둘 뽑아내다 보면 이것도 별로고, 저것도 별로인 것처럼 느껴져서 다 빼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끝내 와르르 무너진다. 사람이란 게 절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들로만 쌓아 올려진 존재가 아니다. 괜찮은 것들과 별로인 것들이 다 차곡차곡 쌓여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바보 같고, 덜떨어지고,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까지 인정해야만 완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다.

박승규가 실책을 했던 날, 인터뷰에서 김상수가 말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한다고. 그래, 사람인데 어떻게 실수를 안 하냐고. 그 실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더 잘할 거라고 믿으면서 어깨 펴면 된다. 설사 내일의 내가 잘은 못하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더 나아질 거라고 믿는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큰 실수를 저질렀어도, 그게 심지어 끝내기 폭투일지라도. 그걸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오늘의 경기는 졌어도 내일의 경기는 모르는 법이다. 오늘 하루는 엉망진창이었어도, 내일은 모르는 법이다. 다 무너진 것 같아도, 어떻게 저떻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샷다 올리고 우리 인생 정상 영업합시다.

 

아무래도 저자가 야구 팬이다 보니 글에 야구 관련 비유가 종종 등장하는데, 솔직히 야구에 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만큼 야구를 잘 몰라도 상관없다. 끝내기 실책이나 폭투가 뭔지 몰라도 그냥 우리 편에게 불리한 것이려니 하고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의 상식만 있으면 된다(어차피 꼭지 끝에 폭투, 포일, 보크 같은 야구 용어는 간략한 설명이 따라붙는다). 그래도 저자가 에세이에서 말하고자 하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하등 지장이 없다. 반드시 야구가 아니더라도 욕하면서도 스포츠를 계속 보는 분이나 삶이 팍팍해서 힘드니 위로가 필요하다 하는 직장인들에게 추천한다. 저자 말대로, 살다 보면 2군도 가고 그러는 거지, 뭐 어쩌겠어요. 그래도 꾸준히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그런 거지. 그러니 저자 말마따나 샷다 올리고 우리 인생 정상 영업합시다! 우리 존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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