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송희 외 5인, <덕질이 나를 날아오르게 해>

by Jaime Chung 2023. 6. 12.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김송희 외 5인, <덕질이 나를 날아오르게 해>

 

 

비엘(BL), 술, 검색, 베이킹, 두부, 그리고 영업(진짜 ‘판매’의 의미뿐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들에게도 권하는 의미까지 포함), 이렇게 다소 색다른 여섯 분야의 ‘덕후’들이 자신들을 ‘날아오르게’ 하는 ‘덕질’에 관해 이야기하는 짧은 에세이들 모음집. 리디 셀렉트에서만 볼 수 있는 ‘어스라이크(Us Like)’ 시리즈의 한 편이다.

여섯 덕후들이 가진 취미는 나와 접점이 거의 없는데, 나는 비엘은 관심이 없으며 술은 입에도 안 대는 데다가, 두부는 콩으로 만든 거라 호르몬 교란이 의심되어 먹지 않으고, 영업은 누가 시켜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하나, 검색 정도는 나도 하는 거지만 덕질하는 수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이 에세이들을 ‘이런 것도 덕질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감탄하며 읽었다.

 

여섯 작가들이 다 한 입담 하기 때문에 딱히 저자들의 취미를 공유하지 않아도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이런 부분.

덕질은 내 삶의 활력소인가? 아마도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들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내 경우에는 활력소라는 단어가 적절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때론 덕질이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인지, 망치러 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 비엘을 보느라 가산을 탕진하고, 드라마 씨디를 너무 많이 사서 더 쟁여둘 곳도 없다. 일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덕질하면서 풀고, 덕질하느라 쓴 카드값을 갚느라 허리가 휘게 일을 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리디에 그동안 갖다 바친 돈을 생각하면, 이 글을 써서 리디에게 소정의 원고료를 받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키운 내 새끼에게 입금을 받다니, 얼마나 뿌듯한지 살아 있길 잘했다 잘했어! 적당히를 모르는 나는 비엘을 좋아하게 된 이후 다른 모든 콘텐츠 소비가 시시해져 버렸다. 드라마, 영화, 만화 등등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살아왔건만 솔직히 최근 몇 년 동안은 그 모든 게 시시해졌고 이성애 로맨스가 등장하면 가슴이 싸하게 식었다. 아니, 성별이 다른 사람끼리 사랑을 할 수 있어? (당연하다.) 헤테로 로맨스에는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런 무모한 사랑이 어디서 비롯되었나 했더니, 한번 좋아하면 끝장을 보는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취미는 독서, 책 표지를 남한테 못 보여줄 뿐_김승희’

 

리디를 비롯해 밀리의 서재나 크레마 등 전자책 구독 플랫폼이나 서점 등에서 이 책 저 책 들춰 보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래의 인용문에 공감하실 수 있을 듯(아래 인용문에서 묘사하는 행위를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리디는 포털 사이트 검색에 지친 내가 도망친 별장이었다. 그곳은 책이라는 한정된 아이템만 있는 비교적 안정된 곳이었다. 무한 검색에 진저리가 나던 나에게 전자책 앱은 구획이 정돈된 꽃밭과 같았다.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문래동 구석의 시 쓰기 소모임을 발견한 것 같은 구체적인 느낌이었다. 리디셀렉트는 더욱 좋았다. 매달 요금을 내면 내 서재에 다 쌓아놓을 수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미션이 생겼다. 내 서재에 넣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제목의 끌림, 작가 이름이 주는 매력, 목차, 출판사 서평, 후기 등을 총체적으로 살피며 내 서재에 넣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은 권당 30초 정도 소요된다. 읽는 건지 마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속독을 할 수 있기에 가능하다. 분명 그 순간에는 알았지만 돌아서면 기억이 나지 않는 류의 속독이다. 이것 또한 무작위 무차별 빠른 검색을 발견하면서 생긴 기술이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넣기 위한 검색이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최신 업데이트, 별점 베스트, 친절하게 뽑아준 셀렉트 도서들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여 카테고리별로 차근차근 뒤져가며 한번 쭉 훑어보고 나면 그럴듯한 내 서재가 만들어진다. 다행인 점은 정기적으로 새로운 책들이 유입되어 작업에 끝이 없으면서도 한번 싹 훑었으니 대단히 해야 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보너스로 내 서재에 기한 지난 책을 삭제하는 잡초 뽑기 미션도 있다.

그러나 다람쥐 볼에 차곡차곡 쑤셔 넣듯 흐뭇한 날들에도 한계가 온다. 저장된 책이 3페이지를 넘어서는 순간 읽어야 할 광대한 양에 숨이 막히며 갑자기 내 서재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혹시 몰라서’는 검색왕이 가져야 할 중요 자질 중의 하나이므로 탈퇴는 하지 않는다. 일단 놔두고 새 창고로 향한다. 경쟁 사이트라는 또 다른 우주가 핸드폰 배경화면에 새로 놓인다. - ‘나는 검색왕이다_이주영’

 

전반적으로 이 에세이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남들은 무얼 덕질하나,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는 걸 둘러보고 싶을 때 읽으면 딱 좋다. 이 책만을 위해 리디셀렉트를 구독할 가치가 있겠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어차피 한 권만 읽어도 본전은 뽑는 거니까 시도해도 잃을 것은 없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