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살다 보면 세상엔 참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 수필의 저자와 그 가족이 바로 그러하다. 저자인 임혜지 씨는 십 대 후반 독일에 유학을 가서 거기에서 현재의 남편을 만나 가족을 꾸렸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 부부가 워낙에 별나고 독특한 사람들이라 자녀들도 한 개성 한다. 이 수필을 읽다 보면, 역시 문화가 다르니까 개성이 다른 것도 완전히 다른 레벨이구나 싶다. 기반이 되는 문화가 다르니까 당연하겠지만.
어쨌거나 이 색다른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참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개성이라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들이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인 것은 인정해도, 엄청 부럽다거나 굉장하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내게는 이들의 삶의 방식이 너무 과하고, 극단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예컨대, 저자인 임혜지 씨는 ‘자유’가, 남편 되시는 분은 ‘환경보호’가 제일 큰 화두라고 한다. 자유와 좋아하는 일을 지키기 위해 일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입이 적은 데다가 또 환경 보호에 앞장서므로 절약이 습관화됐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다리미나 건조기 등은 일체 사용하지 않고, 아침으로 크루아상 한 쪽을 반씩 나눠 먹을 정도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그 대가로 우리 부부는 학력에 비해서 적은 보수와 실력에 비해서 낮은 사회적 위상을 떳떳하게 감수한다. 또한 무섭게 절약한다. 아직도 크루아상 하나를 온전히 먹는 법 없이 꼭 둘이서 나눠 먹고 물 한 방울, 토마토 한 알도 헛되게 쓰지 않는다. 세 정거장 전철 탈 일이 있으면 한 정거장은 걸어가 단거리 요금을 낸다. 내 옷장에는 20년 넘은 옷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처녀 시절 몸매를 유지하는 이유에는 옷을 새로 사지 않으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 기본 생활비가 우리도 모르는 새 야금야금 올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에도 습관이 들었다. 다달이 기본적으로 드는 생활비가 높으면 높을수록 사람은 생존이 부담스럽고, 선택의 자유가 줄어들고, 물질의 고마움을 모를 것이라 믿고 있다. 그 덕에 항상 돈이 남는다. 돈 쓸 일이 생기면 편안하게 쓸 여유가 있어서 오히려 남보다 부자라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돈 대신 시간을 선택하는 인생을 살기로 한 우리 부부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고 꼭 필요한 일만 하는 데 불편함을 못 느낄뿐더러 부끄러움도 없다. 케이크 한 조각도 꼭 둘이서 나눠 먹고, 웬만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이발비를 아끼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의 머리는 내가 집에서 직접 깎아준다. 또 환경보호를 위해 자가용을 굴리지 않고, 제철 야채와 과일을 사 먹고, 철저하게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생활 습관은 돈을 절약하는 데 한몫한다. 최저 생활비를 유지하는 이런 습관 덕에 수입이 암만 적어도 돈이 남으니까 돈으로부터 자유롭다.
독특한 제목인 ‘고등어를 금하노라’도 환경 보호에 진심인 이 부부가 나눈 대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딸기가 제철이 아닌 4월에 딸기를 샀다고 ‘먼 곳에서 재배하고 운송해 온 부도덕한 과일을 싱싱함과 싼값에 홀려 덥썩 산 죄’ 판정을 받은 저자에게 남편은 (바다에 면한 지방이 적은) 독일에서 고등어나 참치까지 먹는 것은 변태적인 일이니 먹지 말자고 제안한다. 한국 출신이라 고등어를 고향 음식이라 생각하는 저자는 잠시 저항하지만 ‘같은 사람에게 나라에 따라 각기 다른 값을 매겨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의 세상’에 분노하기에 곧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집 식탁에서는 고등어가 금지된 것이다. 비슷한 성격의 일화를 하나 더 들자면 이렇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에 저항하여 싸우다가 투옥도 여러 번 당하던 시절, 남아공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남아공에서 수출하는 농작물을 국제적으로 보이코트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저자의 한 친구가 장을 보러 가서 원산지 표시가 없는 과일을 보고 상인에게 “이거 남아공산인가요?” 하고 물었단다. 그걸 보고 저자도 웬만해서는 꼭 농산물이 남아공산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사는 버릇이 들었다고. 게다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 겨울에도 집에 난방을 하지 않고 두터운 옷을 껴입거나, 물주머니에 덥힌 물을 넣어 안고 잔다고 한다. 가끔 전기요를 켜는데 1시간 정도만 켜 놨다가 잠들기 전에 끈다고 하니, 정말 지독한 절약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일단 자신의 신념을 위해 크다면 크다고도 할 수 있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는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절약하며, 신념을 지키며 살기 어렵겠다’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도 요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차라리 적은 연봉을 받았으면 받았지, ‘워라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절약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니까. 애초에 한국과 독일의문화가 다른 것은 물론이요, 물가가 다르고 겨울철 평균 기온도 다르니 이 책을 읽었다고 그들처럼 최대한으로 절약하며 살기도 어려운 게 당연하다. 한국인들은 ‘무지출 챌린지’를 했으면 했지, 겨울에 그렇게 극단적으로 난방비를 절약하다 보면 골병 들어서 못 살아요… 애초에 기후가 다른걸…
책의 마지막 장(章)에는 독일 역사, 특히 나치와 관련한 역사와 그로 인한 문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독일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배울 게 많아서 좋을 것이다) 또 신기하게도 마지막 두 꼭지에는 저자 부부의 성(性) 생활 이야기가 잠시 나와서 충격적이다. 아니, 솔직한 건 좋은데 그렇게까지 솔직한 건 누구를 위함입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정말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생각이 옳다고 믿고 살아간다. 그 생각이 실제로 많은 이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각자 세상을 보는 눈이 다 다르니 무엇 하나가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나야 사무실에서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을 욕하지만 그 사람은 또 나를 욕하겠지.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는 제쳐 두고 일상적인 문제에서 절대적인 선, 정의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그런 회의를 하던 차에 읽어서 그런지 저자의 삶의 방식에 감탄할지언정 그것만이 100% 바람직한 길,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모범이 되어 주는 길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한국 사회 기준으로 볼 때 색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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