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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레슬리 컨,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by Jaime Chung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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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레슬리 컨,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올해 초, 새해를 맞이해서 내가 평소에 잘 접하지 않거나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어 보고자 조성익 건축가의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을 읽고 후기를 쓴 적이 있다. 저자가 셰어하우스를 설계하고 후배 디자이너로 하여금 그 집에서 직접 살아보게 하며 불편한 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을 짚은, 교양 인문학 수준의 책이었는데 그걸 읽으면서 이런 궁금증이 일었다. ‘여성을 위한, 또는 여성이 만든 건축물은 어떻게 다를까?’ 그래서 관련 서적을 찾아 읽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이 책을 발견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그리고 표지에 ‘처음 만나는 페미니스트 지리학’이라는 부제가 쓰여 있다. 아니, 이렇게 흥미로운 걸 어떻게 읽지 않을 수가 있어요! 읽고 나니 역시 내가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에서 접한 내용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은 여러 명이 사는 셰어하우스 한 채를 두고 그 안에서 어떻게 주거자들을 배려하면서 편하게 사는지를 궁리한다면,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는 그 제목에서부터 드러내듯이 한 도시 전체가 고려의 대상이다.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과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 후기에도 썼듯이, ‘대체적으로 건축물을 설계할 때 거주자로 설정되는 남성을 대상으로 할 때와, 여자들을 위해 건축을 할 때는 무엇이 다른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점을 정말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았던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에서 느꼈던 갈증을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에서 드디어 풀 수가 있었다.

 

여성은 언제나 남성에 비하면 2등 시민, 또는 ‘타자’로 여겨졌다. 집을 짓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무얼 하든 주체는 대체적으로 ‘남성’으로 상정되고 여성은 기껏해야 남성이 행하는 행위의 대상이나 부차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행정권이 있는 자들은 도시를 설계할 때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들어가며’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여성의 순수성 및 청결에 관한, 빅토리아 시대의 다소 과장된 공포가 어느 정도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자들의 도시 경험은 여전히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상징적 장벽에 가로막힌다. 그 장벽은 성별에 따라 —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기준에서 — 편향된 방식으로 여자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남자들은 이런 장벽을 만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장벽들을 보지 못한다. 그 말은, 대부분 남자로 이루어진 도시의 주요 결정권자들이 경제 정책에서부터 주택 설계에까지, 학교 부지 선정에서부터 버스 좌석에까지, 치안 활동에서 눈 치우기에까지 이르는 모든 것에 대한 결정을, 그 결정이 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관심은커녕 지식조차 없는 상태에서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는 남성의 경험을 <표준>으로 삼음으로써, 여자들이 도시에서 어떤 장애물을 만나고 어떤 일상 경험을 하는지를 거의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남성의 전통적인 성 역할을 뒷받침하고 돕게끔 설계되어 왔다. 이것이 내가 말한 <남자들의 도시>의 의미다.

 

여성들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겠지만, 도시는 여성들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예시로 종종 드는데, 그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공감할,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예시가 바로 유모차이다. 도시에는 유모차를 몰고 다닐 만한 곳, 또는 길이 많지 않다. 애초에 도시가 설계될 때 이들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모차를 타고 지하철이나 전차,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타기란 불가능하고 (대중교통 서비스가 그들에게 이용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이를 가진 부부에게 자가용은 필수품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한국에서 애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그나마 백화점이 유모차를 끌고 갈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 기저귀를 갈 만한 깨끗한 공간도 있고, 유모차를 끌고 움직일 때 다른 사람들도 여전히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통로 또는 공간이 있으니까. 애 엄마들이 갈 만한 곳을 만들어 놓지 않고서, 애 엄마들이 겨우 갈 만한 곳인 백화점에 왜 그렇게 자주 가냐고, 다들 시간이 넘치고 호강하나 보다고 생각하는 건 얼마나 우스운가.

내가 궁금해하던 질문, 즉 ‘여성이 건물 또는 도시를 설계하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 속 이 인용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엄마가 된 지 얼마 안 된 건축가 크리스틴 머리(Christine Murray)는 이렇게 묻는다. <엄마들이 설계했다면 도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 개조되면서 엘리베이터가 없어졌음을 알고 울음을 터뜨렸을 때를 떠올리며 대중교통 문제를 중점적으로 거론한다. 그리고 버스에 휠체어가 탈 자리가 없는 것을 탄식하면서 아이 엄마를 위한 시설의 부재가 노인 및 장애인 문제와도 일맥상통함을 지적한다. 대중교통의 모든 면은 내가 설계자들이 상상한 이상적인 사용자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계단, 회전문, 회전식 개표구, 유모차 놓을 자리의 부재, 고장 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무례한 발언, 노려보는 시선. 이 모든 것이 도시가 부모 자식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나 또한 내가 이 장벽들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아이 부모보다 더 배려받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노인의 불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깨닫자 불현듯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설계자들은 우리가 직장, 공공장소, 공공 서비스에의 접근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을 거라고 가정한 듯하다. 우리가 속한 가정 또는 기관에나 머무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도시 내에서 여성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는 이유도 도시의 설계와 관계되어 있음을 밝히는데 이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저자는 책 초반에 ‘페미니스트 지리학’이라는 용어를 소개하는데 저자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리학이란 지도를 색칠하거나 대륙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지리학은 인공 및 자연 환경이 인간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다루는 학문이다. 이것을 페미니즘에 대입하면 성차별주의가 지표()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2등 시민이라는 여성의 지위는 <별개 영역(separate spheres)>이라는 은유적 개념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지리적 배제를 통해서도 강요된다. 남성의 권력과 특권은 여성의 이동과 출입을 제한함으로써 유지된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제인 다크(Jane Darke)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정착지에는 그곳을 세운 사회의 사회관계가 새겨져 있다. (……) ⟪우리의 도시는 돌, 벽돌, 유리, 콘크리트로 쓴 가부장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집을 짓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그 행위의 주체를 단순히 남성, 그것도 중산층, 비장애인 남성으로만 설정하는 것은 그 좁은 범위에 속하지 않는 모든 다른 이들에게 폭력이다. 그것이 여성, 아이, 노인, 장애인 등 소수자들과 약자를 고려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행해지지 않는다면 더더욱. 이 책은 페미니스트 지리학이라는 페미니즘의 또 색다른 분야를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돌로 쓴 가부장제’를 살펴보고 지리학자들이나 건축업자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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