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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경일, 김태훈, 이윤형, <이그노벨상 읽어 드립니다>

by Jaime Chung 2023.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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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경일, 김태훈, 이윤형, <이그노벨상 읽어 드립니다>

 

 

이그노벨상은 과학계에서 괴짜스러운 연구에 주는 상이다.

마크 에이브러햄스의 《이그노벨상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이 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바보 같거나 시사하는 바가 많은 무언가를 해낸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 이러한 업적들 중에는 소름 끼치게 바보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바보스러울 만큼 훌륭하고 심지어 중요한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책은 이그노벨상을 받은 흥미로운 연구를 살펴보는,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유튜브 콘텐츠 <이그노벨상 읽어드립니다>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취향에 따라 동영상을 선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텍스트가 더 편해서 그냥 책을 읽었다. 292쪽만 읽으면 되는데 84분씩이나 볼 필요가 뭐가 있담?

 

진행자들/저자들이 소개하는, 이그노벨상을 받은 흥미로운 연구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욕을 하면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

욕을 비롯해, 비도덕적이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게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2010년 이그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 논문은, 우리가 욕을 하는 이유가 고통을 줄여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논문 제목은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욕(Swearing as a response to pain)’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갑자기 아픔을 느끼거나 깜짝 놀라면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나 험한 말이 나옵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욕을 하는 이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연구는 욕을 하는 타이밍에 어떤 기재가 숨어 있을까, 과연 무엇 때문에 욕을 하게 될까, 욕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여러 가지 궁금증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를테면 욕의 ‘쓸모’에 주목한 것이죠.

실험자들로 하여금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손을 넣게 하고 한 그룹은 욕을 할 수 있게 허용해 주고 다른 한 그룹은 욕을 못하게 막았다. 그랬더니 욕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더 오래 견뎠고, 고통을 표현할 때도 덜 힘들어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욕을 할수록 더 잘 참고 고통도 덜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런 효과가 여성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다는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 약을 잘 써야 잘 듣듯이 욕도 필요한 상황에서 해야 적절한 효과를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욕의 기능적인 측면을 잘 포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욕이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온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연구는 욕이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고 본 것이죠. “이렇게 고통스러울 때는 차라리 욕이라도 해. 그럼 훨씬 나아진다니까!”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은 그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아니 이래서야… 🤬 입에 욕을 달고 살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럼 어떡해요!

두 번째,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의 저주 인형을 만들어 찌르면 스트레스를 풀고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이번에는 2018년에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연구를 소개하겠습니다. 논문 제목은 ‘잘못을 바로잡기: 괴롭히는 상사의 인형에게 보복하면 정의를 회복할 수 있다(Righting a wrong: Retaliation on a voodoo doll symbolizing an abusive supervisor restores justice)’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상사가 있다면, 그를 닮은 저주인형에 대신 보복함으로써 스트레스도 풀고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목만 봐도 정말 독특한 주제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주인형이라고 하면, 사극이나 영화에서 본 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지푸라기나 헝겊을 이용해 사람 모양으로 만든 인형들이 대표적이죠. 저주를 내리고 싶은 사람을 인형으로 만들어서 핀이나 뾰족한 것으로 찌르면, 그 사람이 실제로 고통을 느끼거나 그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깁니다. 이 연구에서는 저주인형에 상사의 이름을 써놓고, 생각날 때마다 마구마구 찔러주면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는 아주 기상천외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실험은 저주인형을 사용하여 ‘복수’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연구는 195명의 참가자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집단은 상사에게 모욕을 당했거나 수치심을 느꼈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주인형을 핀으로 찌르게 했습니다. 두 번째 집단은 비슷한 상상을 하되 저주인형뿐 아니라 모멸감을 해소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집단은 비교를 위한 통제집단이었습니다.
그다음 실제로 업무 효율이 얼마나 증가하는지 혹은 업무에 몰입도가 얼마나 높아지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모욕을 당한 경험을 떠올리고 저주인형을 통해 복수를 한 첫 번째 집단이, 통제집단과 유사한 수준으로 업무 효율이 높게 나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유입니다. 즉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을, 저주인형을 핀으로 찌르는 행동을 통해 극복한 것이죠.

 

이건 개인적으로 실용성 만점짜리 연구라고 평하고 싶다.

세 번째, 비싼 약이 싼 약보다 더 효과가 좋다고 우리가 믿기에 실제로 비싼 약이 더 큰 효과를 낸다. 한마디로, 플라세보 효과도 우리가 믿을 때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는 것.

논문의 제목은 ‘위약과 치료 효과의 상업적 특징(Commercial features of placebo and therapeutic efficacy)’입니다. 비싼 가짜 약이 싼 가짜 약보다 효과가 높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실험 방법은 간단합니다. 82명의 자발적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모두에게 가짜 진통제를 처방합니다. 이때 한 집단에겐 이 약이 개당 2.5달러짜리라고 얘기하고, 다른 집단에겐 개당 10센트짜리라고 말해줍니다. 여기서 핵심은 둘 다 가짜 약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참가자들에게 약을 나눠주기 전후로 전기 충격을 가하고 각각 어느 정도로 고통을 느끼는지 측정합니다. 약을 먹기 전과 후의 고통의 정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죠. 사람들이 약을 먹은 뒤에는 ‘맞아, 내가 진통제를 먹었지’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싼 약이든 싼 약이든 둘 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다만 비싼 약의 경우는 85%가 ‘약을 먹기 전보다 고통이 덜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싼 약을 먹은 사람들은 61%가 진통 효과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즉 차이는 있지만, 두 경우 모두 효과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이렇게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하는 책이라 소소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꼭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고, 자기가 관심 있는 부분만 읽어도 되니까 부담도 없다. 책 읽는 게 귀찮다면 영상으로 봐도 무관할 듯싶다. 개인적으로는 길거나 어려운, 또는 묵직한 주제의 책을 끝내고 났을 때 ‘입가심용’으로 이런 책을 한 권씩 독서 목록에 끼워 넣는데, 그런 용도로 아주 무난했다. 이런 비슷한 류의 책을 찾는다면 나이토 요시히토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심리실험 - 욕망과 경제편>도 한번 살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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