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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금정연,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by Jaime Chung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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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금정연,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원래 이 책의 가제는 ‘미래 사어 사전’이었다. 이 책을 설명하자면, ‘존버’, ‘금수저, 흙수저’, ‘플렉스’ 등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이제는 엄연한 한국어 어휘에 추가된 단어들을 톺아보며 그에 관한 저자의 감상과 나름대로의 통찰을 담은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홧김비용(시발비용)’이나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처럼 비교적 최근에 생긴 말부터 ‘비혼’이나 ‘밈’처럼 꽤 예전부터 존재한 말도 고루고루 살펴본다.

 

이미 우리 실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말들의 의미를 정말 몰라서 이 책을 들춰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글쎄, 재미있으니까. 저자의 통찰이 설득력 있으니까. 저자는 겸손하고 약간 자기 비하적인 유머를 이용해 독자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예컨대, ‘가성비와 가심비’ 꼭지에서 저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저소음 적축 키보드와 XDA PBT 키캡과 키보드 파우치 등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며 ‘금융 치료’를 해야 했다. 그 비용만으로도 이 글을 쓰고 받을 원고료를 이미 훌쩍 넘겼다. 가성비의 반대말을 의인화한다면 바로 내가 될 것이다.

‘국룰’ 꼭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신조어를 다루는 이 책의 기획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1. 세상에 신조어가 너무 많다.
  2. 내가 아는 신조어가 너무 적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신조어가 만들어지기 가장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 하나의 단어가 새롭게 생겨나고 널리 전파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까지의 시간과 단계가 지금처럼 빠르고 간소했던 적도 없다. 물론 인터넷 덕분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요즘 발 없는 말은 지구를 돈다.

‘스불재’는 또 어떤가.

어느새 마흔한 살이 된 나는 내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불재’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스불재’라는 단어를 다루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듯이 느껴질 지경이다. (중략)

프리랜서 원고 노동자가 야구팬보다 불리한 점은 크게 세 가지다.

  1. 보기만 해도 되는 야구팬과 달리 내가 직접 해야 한다.
  2. 승리의 기쁨을 느낄 기회가 적다, 아니 거의 없다.
  3.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탓하고 욕할 대상이 없다. 원고 주제가 너무 까다롭다고? 그건 내 탓이다. 갑자기 원고 청탁이 몰리는 바람에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그것도 내 탓이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시간도 적절히 분배했지만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가정사, 질병, 천재지변 등등)이 생겨서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고? 그것 또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이렇게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저자의 유머를 완성하는 건 개인적으로 ‘…’(말줄임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말줄임표를 꽤 자주 쓰는데, 신기하게 그게 또 어울리는, 나름대로 저자 고유의 문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인싸와 아싸’ 꼭지를 보시라.

‘가장 많이 만나는 다섯 사람이 당신 인생을 결정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생각했다. 다섯 명이나 만난다고? 아무리 손가락을 꼽아 봐도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곤 아내와 아기, 그리고 일주일에 나흘씩 아기를 돌봐 주는 장모님밖에 없는데…. 한술 더 떠서 “주변에 친구 65명 미만이면 인간 아니라 ‘침팬지’”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5명도 많은데 65명이라니! 아아, 나는 이제 인간도 아니고 침팬지가 되어 버렸구나, 라고 탄식하며 비통한 마음으로 내용을 읽었다. 선정적인 제목과 달리, 종마다 두뇌 크기에 따라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크기가 다르다는 과학적인 내용이었다. 인간은 최대 150명이고 침팬지는 65.2마리, 오랑우탄은 50.7마리, 고릴라는 33.6마리, 긴팔원숭이는 14.8마리라는 식으로. 따라서 나는 침팬지가 아니다. 긴팔원숭이다. 심지어 팔이 길지도 않은….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유머를 살짝 밀치고 보면 거기엔 통찰이 있다. 저자는 ‘존버’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쓰이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존버를 풀어 쓰면 ‘참고 버티면 좋은 날 온다, 포기하지 마라,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정도가 될 것이다. 특별한 말은 아니다.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나 속담도 많다. 당장 생각나는 말만 해도 고진감래(苦盡甘來),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등등…. 이쯤에서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하나, 같은 뜻을 가진 다른 말도 많은데 왜 하필 존버인가? 둘, 참고 견디자는 뜻을 가진 단어가 왜 하필 지금 유행하는가?
첫 번째 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새롭기 때문이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나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등에서 풍기는 월요일 아침의 교장 선생님 훈시 같은 냄새가 존버에는 없다. 입에 잘 붙고 꼰대 느낌은 덜 묻고, 장난스러운 동시에 자극적이고. 러시아형식주의식으로 말하면 이게 바로 ‘낯설게하기’라고 할 만하다. 언어를 특수하게 조합해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습관적으로 쓰는 일상언어에 낯설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 같은 음식이라도 담는 그릇이 달라지면 맛도 조금쯤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다음은 ‘뉴트로’에서 얻은 통찰이다.

그렇다면 내 생각에 레트로와 뉴트로의 차이는 하나다. 바로 규모다. 과거에는 복고적인 감성이 패션이면 패션, 음악이면 음악, 영화면 영화 각각의 분야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시차를 두고 유행했다면, 지금은 대중문화를 포함해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 전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과거에도 흘러간 시대에 집착하는 움직임은 있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을 숭배한 르네상스나 중세를 들먹인 고딕 리바이벌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가까운 과거에 이토록 집착한 사회는 인류사에 없었다.”  이유가 뭘까? 레이놀즈는 말한다. “가까운 과거에 이토록 집착한 사회가 없었던 것처럼, 가까운 과거를 이토록 쉽고 풍성하게 접할 수 있는 사회도 전에는 없었다.”  한마디로, 모든 게 유튜브(로 대표되는 인터넷) 때문이다. 바로 그곳이 우리가 파먹는 과거가 한가득 쌓여 있는 곳간이다.

 

개인적으로는 ‘많관부’라는 줄임말을 싫어하는데(’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말조차 줄이다니,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말에 대해 이렇게 썼다.

오늘 다룰 또 하나의 줄임말인 ‘많관부’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낸 단어다. 줄이지 않은 온전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엔 이상할 게 없다. 오래전부터 가수·배우·작가·감독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작품을 홍보하려고 나온 자리에서 으레 하던 말이다. 먹고살려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직업을 갖지 않은 사람은 살면서 그 말을 쓸 일이 딱히 없다.
특정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주로 쓰던 말이 점점 더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리며 축약된 배경에는,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주목(관심) 경제 사회’가 있다. 아니, 어쩌면 관심 자체가 새로운 화폐나 다름없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이야기도 이제 옛말이다. 많은 사람이 100개의 선플보다는 1만 개의 악플을 원하고, 심지어 ‘어그로 끌기’도 서슴지 않는다. 마치 깨끗한 돈과 더러운 돈이 따로 있지 않다는 듯이. 가짜뉴스와 ‘낚시’도 주목 경쟁의 어두운 단면이다. 일단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이 책을 소소하게 재미있게 읽었고, 심지어 이 책은 얇아서(종이책 기준 208쪽) 시간도 별로 안 걸렸다. 그렇기에 이 책이 꽤 만족스러웠는데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저자가 인용한 로베르토 볼라뇨의 말처럼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제발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어쩌다 긍정적인 평을 보면 잠깐 기분이 좋아진다. 나쁜 평을 보면 칠레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를 생각한다. 언젠가 볼라뇨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나를 나쁘게 말한 것을 읽을 때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바닥을 질질 기어다니고 온몸을 긁어대며 글쓰기를 영원히 그만둔다. 입맛도 잃고 담배도 덜 피우고 스포츠에 사로잡힌다. 나는 우리집에서 3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바닷가 절벽으로 산책을 나가, 율리시스를 삼킨 물고기를 잡아먹은 조상을 둔 갈매기들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왜 나야? 왜? 나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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