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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신지민, <와인: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

by Jaime Chung 2023.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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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신지민, <와인: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

 

 

제목부터 미쳤다.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고 공감되어서 와인을 포함한 그 어떤 술도 입에 대지 않는 내가 이 책에 손을 댔다. 그리고 생각했다. 덕질이란 ‘굳이’ 무언가를 ‘기꺼이’ 하는 일이구나. 저자는 딱히 정가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와인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굳이’ 먼 길을 달려 주류 전문점에서 와인을 구입하고,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취향에 맞는 와인을 추천하며 ‘굳이’ 영업을 하며, ‘굳이’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까지 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러분은 와인잔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달라진다는 걸 아셨는지? 난 전혀 몰랐다. 와인잔은 두께가 얇을수록 좋고, 또 각 와인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잔의 종류가 따로 있단다. 저자는 “얇디얇은 유리에 와인 한 병이 다 들어갈 정도로 큰 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아주 가느다란 손잡이”를 가진 “잘토 부르고뉴 잔”을 한 와인숍에서 보고 한눈에 반했고, 비싸고 잘 깨진다는 걸 알면서도 큰맘 먹고 구입한다. 어느 날, 저자는 잘토, 동생은 저렴한 잔을 사용해 같은 와인을 마셨다. 저자는 “이 와인 정말 맛있다.”라고 했고, 동생은 무슨 소리냐고, 전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잔을 바꿔서 맛을 보니 잔에 따라 같은 와인도 완전히 다른 맛으로 느껴진다는 걸 알았단다. 이 충격적인 실험은 결국 동생도 잘토를 종류별로 다 사들이게 되는 걸로 끝이 났다고. 아니, 어떻게 하면 잔의 모양과 두께 차이로 같은 와인이 완전 다르게 느껴질 수가 있지? 술을 안 마시는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잔의 중요성을 알게 된 저자는 모임에 직접 귀한 잔을 들고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게 됐다. 그런데 기껏 신문지를 싸고 뽁뽁이를 감아 애지중지 들고 가서 와인을 마시는 것까진 좋았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평소 습관대로 가방을 바닥에 던져 버렸고 잔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다음 날 저자는 눈물을 머금고 같은 잔을 또 주문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덕후가 아니다. 놀랍게도 이 슬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와인잔을 포기하라고 하겠지만, 난 다른 방법을 택했다. 아예 와인 캐링백을 샀다. 이 가방은 크기가 정말 크다. 유난스러움으로 치면 신문지와 뽁뽁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지하철에 이 가방을 들고 탈 때면 사람들에 밀려 잔이 깨질까 봐 겁이 나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건재하다.

그래서 와인잔을 안 깨고 잘 버티고 있냐고? 와인을 마신 다음 날 아침엔 거룩한 의식을 시작한다. 세제를 사용하기보다는 따뜻한 물로 잔을 세척한 후, 부드러운 리넨으로 닦는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 다음에 수증기가 나오면 잔을 갖다 댄다. 김이 서린 상태에서 바로 또 리넨으로 닦아준다. 이렇게 하면 잔에 광을 낼 수 있다. 이 의식은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도 걸린다. 귀찮고 번거롭지만 소중한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이쯤이야.

그러나 딜레마가 생겼다. 와인을 마신 다음 날 잔을 닦으면 이미 얼룩이 잔뜩 생겨 있었고, 거룩한 의식을 다 치뤄도 기대만큼 깨끗해지진 않았다. 와인을 마시자마자 바로 뜨거운 물로 씻고 닦는 방법이 훨씬 깨끗하게 잔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난 술에 취한 상태인데? 잔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더 깨끗하게 유지할 것인가, 덜 깨끗해도 안전한 방법을 택할 것인가.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답은 내리지 못한 상태다.

진짜 사랑이 아니라면 이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덕질이란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하는 일인가 보다.

 

이 책은 아무래도 와인 덕후가 애정을 담아 썼기에 와인에 관한 정말 유용한 정보가 많다. 나는 와인 마실 일도 없는데 이걸 알아서 뭐하나 싶긴 했지만. 아까우니까 여러분께 몇 개만 보여 드리자면 다음과 같다.

엄마는 와인을 추천받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마트 직원에게 그 정도만이라도 말할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알려드린 방법은 ‘맛있게 마셨던 와인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기’였다. 직원은 그 와인 사진만 봐도 대략적인 가격대와 산지, 품종, 특징 등을 알 수 있으니 비슷한 와인을 추천해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비비노’라는 와인 정보 앱으로 ‘와인 라벨 찍어보기’였다. 해외 평균가와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면서 평점이 3.8 이상이면 실패할 일은 많지 않다.

와인을 마실 땐 어떤 것을 지켜야 할까. 일단 따라주는 와인을 받을 때 와인잔은 들지 않고 테이블에 놓아두어야 한다. 와인잔은 향과 맛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얇고 투명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잔을 들고 받으면 와인을 따르는 도중에 얇은 와인잔이 병에 부딪혀 깨질 수도 있다. 또 와인을 받을 땐 두 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잔 받침에 가볍게 손을 놀려놓으면 된다. 좀 더 예절을 표하고 싶다면 다른 한 손을 살짝 포개면 된다.

상대방에게 와인을 따라주는 경우에는 와인잔의 제일 볼록한 부분까지 따라주면 된다. 잔의 4분의 1 또는 3분의 1 정도만 채워주는 것이다. 생각보다 와인잔의 용량은 꽤 크다. 음식점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보르도 와인잔의 용량이 600ml 내외이기 때문에 잔을 가득 채우면 와인 한 병(750ml)이 거의 다 들어간다. 너무 많이 따랐다가는 자칫 건배를 위해 잔을 들다가 쏟을 수도 있고 와인잔의 다리가 부러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여섯 명이 와인 한 병을 마신다고 가정하면, 각자 한 잔씩 돌아가도록 여섯 잔이 나오게 따르면 된다. 단, 스파클링 와인은 예외다. 스파클링은 기포를 오랫동안 보기 위해 3분의 2까지 따르면 된다.

한참이 지난 후 소믈리에에게 설명을 듣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바로 오크통 숙성 때문이었다. 오크향이 생선회 등 해산물을 만나면 비린내를 극대화한다는 것.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생선회와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는 오크를 아주 적게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은 와인을 골라야 한다. 오크 숙성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면 아예 저렴한 화이트 와인을 고르는 게 낫다. 고급 화이트 와인은 오크 숙성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산미가 강한 소비뇽 블랑 같은 품종도 좋다.

 

이 외에도 알아 두면 와인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은데 와인 셀러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 (결국 저자는 89구짜리 업소용 셀러를 구입했다) 지름신이 오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와인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나보다 이 책을 더욱 즐겁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와인 입문자들이 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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