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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이삭,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

by Jaime Chung 2023.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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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이삭,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

 

 

옛말에 ‘남남북녀’, 즉 남쪽에는 미남이 많고 북쪽에는 미녀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북한 이주민’의 모습은 대체로 여성이다. 하지만 남성 북한 이주민도 있고, 그들과 연애하는 또는 결혼한 남한 여성도 있게 마련이다.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는 ‘남녀북남’의 연애 및 결혼 이야기이다.

 

일단 저자(’남녀’)로 말할 것 같으면 중국 가수 및 배우 들의 덕질로 중국어를 배워 중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교수님의 부탁으로 (중국어) 원어 연극의 기획을 돕다가, 역시나 이에 참가한 (미래의) 남편, ‘민’을 만났다고 한다. 저자는 기획을 맡은 선배로서 연극에 참여하는 팀원들에게 연습할 때 슬리퍼나 하이힐 신고 오지 않기, 편한 복장으로 오기, 다른 사람이 연습할 때 딴짓하지 말고 함께 보면서 코멘트 해주기 등의 주의 사항을 일러 주었다. 그런데 민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날 뒤풀이 때 저자 옆자리에 앉더니 꼬치꼬치 과거를 캐물었다고. “그렇다. 우리의 시작은 혐관(혐오 관계) 로맨스였던 것이다.” ㅋㅋㅋㅋ 다행히 저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꼬리를 내리고 잘 협조해 주어서 둘은 무사히 연극을 무대에 올렸고, 민이 저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개인적으로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저자 말을 빌리자면, “당시 민은 머리카락이 절반 정도 없는 변발 분장을 했는데도 송아지처럼 큰 눈망울과 매력적인 목소리 덕분에” 후배의 호감을 샀다는 것. 민에게 한눈에 반한, 후배는 저자에게 소개팅을 부탁했단다. 민은 “그분은 제가 북한 이주민이라는 걸 아나요?” 조심스레 물었다고 하는데, 소수자가 자신의 소수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거야 이해가 가지만, 변발을 하고서도 잘생겨 보이는 건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저자 남편분이 정말 미남인 게 틀림없다고 나는 이 대목에서 확신했다.

 

저자는 ‘들어가면서’에서 ‘북한 남성’과 ‘남한 남성’의 차이를 묻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말한다. “딱히 다른 점은 모르겠는데.” 그렇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진리는 남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에 통용되는 진리인 것이다(아님). 내 말은, 남한인이나 북한인이나 연애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다 같다는 거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소수자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저자 역시 민과의 연애와 주위 사람들을 통해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소수자들을 ‘보게’ 된다. 예컨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교 친구는, 저자가 기원할 수 있는 기업에 원서조차 쓸 수 없다고 했다. 화교도 외국인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갑작스레 나타난 듯한 ‘차이’와 ‘차별’에 어리둥절했다. 사실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건데 나만 뒤늦게 안 거였다.” 또한 저자 본인 역시 자신의 소수자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저자는 친한 사람에게 ‘(북한 이주민과 결혼한다고 할 때) 부모님이 반대하시지 않았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부모님이 반대하실 수는 없었지. 난 아버지가 없거든.”이라고 대답했다. “민이 북한 이주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가 전혀 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게 질문했던 사람들도 내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을 수도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비혼모/비혼부나 북한 이주민, 퀴어, 트랜스젠더 등의 소수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게 더는 어렵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소수자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꿈꾼다. 그래서 북한 이주민에 관한 책이 나오면 다 사서 읽는다고.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자 ‘적독가’인 나는 북한 이주민과 관련된 책만큼은 일단 다 사서 읽는다. (일 년에 몇 권 안 나온다.) 탈북자나 북한 이주민의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가늠해 보는 책을 선호하고, 탈북 수기나 북한 이주민을 객체처럼 다루는 글은 피하는 편이다. 그런데 하나씩 제외하다 보니 읽을 게 없다. 가뭄에 콘 나듯 출간되는데 겨우 나온 콩마저도 내 입맛이 아니라니, 그럼 나는 무엇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지,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마저도 안 팔아주면 앞으로 누가 또 콩을 심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자 북한 이주민을 객체로라도 다뤄준 게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기회가 된다면, 북한 이주민을 주체로 그린 장편소설을 쓰고 싶다. 북한 이주민 사이에서도 존재가 지워진 비체로 남아 있는, 그런 존재들의 목소리를 되살린 글을 쓰고 싶다.

 

최근 북한 주민 네 명이 소형 목선을 타고 귀순한 일이 있었다. 이번 기회에 대중이 북한 이주민들의 존재에 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을 권한다. 아무래도 북한 이주민의 삶이나 환경, 사상적 배경에 관한 이론적인 내용보다는 실제 커플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이다 보니까 쉽고 말랑말랑하게, 재미있게 읽으며 배우고 느낄 점이 많다는 것이 이 책의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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