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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훤, <아무튼, 당근마켓>

by Jaime Chung 202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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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훤, <아무튼, 당근마켓>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작은 TMI 하나: 나는 여태껏 ‘당근마켓’을 써 본 적이 없다. 지역 기반 중고 매매 앱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해외에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이 앱 또는 ‘번개장터’를 써 보려 했으나, 살 만한 물건을 찾을 수 없었기에 단 한 번도 실제로 사용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훤의 <아무튼, 당근마켓>을 통해 간접 체험을 시도했다.

이 책을 알라딘에서 처음 접했을 때 시인이자 사진가인 ‘이훤 작가’가 도대체 누구지 했는데, 읽다 보니 누군지 알게 되었다. 바로 이슬아 작가의 남편분이었다! 글을 읽는데 흔하지 않는 ‘모부’라는 표현과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익숙한 이름 ‘복희 씨’가 등장해 ‘혹시…?’ 했는데 정말이었다.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에서 봤던, 익숙한 표현과 이름! 이슬아 작가와의 연관점을 찾기 위해 검색을 했더니 두 분이 부부라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읽다 보면 ‘그러다 다솔은 슬아의 남편인 나를 만났다.’라는 문장이 나와서 둘의 관계를 알려 준다. 나는 이걸 보기 전에 폭풍 검색을 했지만). 헐… 몰랐네. 나는 정말 책’만’ 좋아하는 편이라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도 굳이 인터뷰를 찾아서 읽는다거나, 그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등의 일은 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몰랐다(아래 인용문들에서 굵게 강조된 것은 전부 내가 한 것이다).

물건 수집을 좋아하는 성향은 어쩌면 나의 모부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 함께 살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먼 나라에 떨어져 살다 잠깐 집에 들른 스무 살 여름에 알게 되었다. 풍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미숙과 종찬은 성인이 된 후에도 아주 작은 물건조차 쉽게 버리지 않았다. 베란다부터 거실까지 크고 작은 오래된 물건이 즐비했다. 10년 거뜬히 넘은 옷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다 받은 메모장과 볼펜 하나까지도 남아 있었다(이 사람들 나한테 뭐라고 할 게 아니었네).

이야기를 듣던 이웃집 중년 복희가 말한다. 복희의 동생 윤희는 아기 보는 게 그렇다고 한다. 복희의 남편 웅이는 얼마 전 구매한 차를 청소하는 일이 그렇다고 한다. 누운 채 우릴 바라보던 숙희는 누워서 사랑받기가 바로 그 일이라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다.

그뿐 아니었다. ‘개미’를 유독 좋아하는 ‘미현’이라는 인물 이야기도 등장해서 ‘어라, 이거 왠지 익숙한데…?’ 싶어서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 맞다! 양다솔 작가의 <아무튼, 친구>에서 개미를 비롯한 곤충을 좋아하는 ‘공주’라는 친구가 언급됐었지! 그렇게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아내가 이슬아 작가이고 또 양다솔 작가랑 친구인 이훤 작가님! 와, 여기 인맥 서클 쩐다. 너무 부럽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 모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내가 유행에 뒤처지고 최신 소식을 늦게 접하는 사람인 것 같아 씁쓸했다(나는 학부생 때도 과 내 소식을 정말 가장 마지막으로 알게 되는 사람이었다).

미현은 웬만한 물건은 당근마켓에서 산다. 물론 의류도 포함되어 있다. 그저 당근마켓 피드를 손가락으로 뚜덤 뚜덤 걷다 예뻐 보이면 n만 원 안에서 살지 말지 고민할 뿐이다. 미현 또한 슬아와 마찬가지로 패션 업계에는 관심 없다. ‘발렌시아가’를 우산 브랜드라 생각했고 ‘미우미우’는 고양이 장난감 브랜드인 줄 알았다. 개미를 유독 좋아하는 그는 ‘당근’에서 개미 프린트 티셔츠만 네 개를 샀다. 그런가 하면 미현은 자신은 볼일이 없으면서도 다솔이 백화점에 가고 싶어 하면 기꺼이 같이 가주었다.

이 인맥 너무 부럽다고요! 하지만 이렇게 멋진 작가님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는 걸 보니 또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다. 역시 ‘끼리끼리’ 이즈 사이언스. 나도 내 친구들, 주위 사람들, 그리고 내가 친애하는 우리 이웃님들에게 묻어 가야지, 히히.

 

어쨌든, 그건 그렇고, 저자는 당근마켓을 통해 찾던 물건을 구매하는 경험뿐 아니라 당근마켓에 있는 ‘동네생활’이라는 게시판을 통해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연결되는 경험을 즐기는 듯하다. ‘정릉 커뮤니티의 일들’이란 꼭지는 이훤 작가가 2023년 3월 당근마켓에서 목격한 동네생활 게시글과 댓글을 저자 나름대로 수집, 정리한 것이다. 그중에서 제일 웃겼던 건 이거다. ‘동네사건사고’ 카테고리에 ‘못 나는 비둘기 어디다 신고해야 하나요? 어젯밤부터 계속 이 자리에서 못 날고 있는데 비둘기 구조하는 곳이나 구조 가능한 분 계신가요?? 사진은 오늘 아침 8시경 그리고 조금 전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그 밑에는 ‘구청 야생 구조대에 신고하세요. 아마 유해 조류라 별도 조치 없을 듯합니다만. ㅜㅜ’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저자는 이 글에 관해 이렇게 코멘트한다.

무얼 던지거나 공격하는 사람 때문에 다치는 비둘기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길 바란다. 나는 비둘기를 막 대하는 사람들이 밉다. 특히 발길질하거나 돌을 던지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길 지나다 비둘기가 이런 육시랄, 하고 욕하였나요? 날개로 뺨을 때렸나요?”

한편 이 상황에서도 유머를 찾고 싶기에 다른 상황도 상상해본다. 비둘기는 다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오래 있었을 뿐이다. 비둘기라고 늘 날지는 않는다. 날개가 있어도 가만히 있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우리도 다리가 있고 뛸 수 있지만 항상 달리고 있지는 않으니까. 혹시 집에서도 산책할 때도 회사 갈 때도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읽을 때도 뛰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길 지나다가 비둘기가 이런 육시랄, 하고 욕하였나요? 날개로 뺨을 때렸나요?’ 이게 너무 웃겨서 책을 다 읽고 난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나면 킁, 하고 코로 웃게 된다.

 

물건 욕심, 특히 자기가 좋아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물건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아래 인용문에 공감하실 듯.

수박색 물컵, 찰랑이는 물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진파랑 화병, 나무껍질 같은 찻잔, 처음 보는 패턴에 그러데이션이 있는 연둣빛의 유리병…. 갖고 싶었다. 전부 갖고 싶었다. 너무 많은 아름다움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혼이 나갈 것 같았다.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어서 어지럽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빨리 움직여야 했다. 20평 남짓 되는 공간을 휙휙 스캔하며 도사처럼 움직였다. 당장 챙겨야 할 컵들 먼저 손에 쌓기 시작했다. 내 손이 모자라 보였는지 직원분이 조용히 트레이를 쥐여주고 갔다. 애석하게도 그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컵을 챙기고 있었다. 어깨와 어깨가 닿을 만큼 밀집해 있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은 표정으로 최대한 빠르게 손을 뻗어 물건을 사수하는 사람들의 광경이었다.

선포하고 싶었다.

“동작 그만…! 여기 있는 거 제가 다 사기로 했으니 손 떼세요!”

간혹 판매 현장의 물건을 깡그리 다 사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행위를 ‘아도친다’고 부른다. 아도칠 재력이 없는 나는 그저 예산보다 무리하게 담았다.

나도 아도친다는 거 한번 해 보고 싶다… 이래서 내가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인 거라구욧(물론 이 말은 신지민 작가의 에세이 <와인: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에서 빌려왔다)!

 

이 책의 마지막 꼭지에는 ‘서울시 성북구에 거주하는 장복희 님’이 ‘올해의 당근인’으로 선정되어 이훤 작가와 한, 당근마켓과 소비 생활에 대한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이 책에서 복희 님이 언급될 때마다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세계관이 이어지는 느낌이라 재밌었는데 아예 이렇게 한 꼭지를 할애해 아예 복희 님께 멍석을 깔아 드리니 훈훈하달까. 전반적으로 <아무튼> 시리즈의 덕목, 즉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쓴, 가볍고, 재미있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점을 잘 살렸다. 이슬아 작가를 좋아하는 팬들이 읽어도 좋을 듯(나처럼 이슬아 작가님 소식에 느린 사람은 또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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