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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야기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영어 선생님들이 내게 한 거짓말 두 가지 - '노트북'과 '추잉 껌'

by Jaime Chung 201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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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영어 선생님들이 내게 한 두 가지 거짓말 - '노트북'과 '추잉 껌'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라는 칼 R. 로저스(Carl R. Rogers, 미국의 심리학자)의 명언이 이 글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글 끝에 가시면 이해하실 수 있다!

 

(오늘은 딱히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만 국한된 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호주에서 알게 된 '영어' 이야기라 일단 [호주 이야기]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내가 영어를 공식적으로 배우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라는 정규 교과 과정을 통해서였다. 사실 그 전부터도 집에서도 손윗형제의 '윤선생 영어' 교재를 통해 ABC와 기초 수준(어린이들 기준으로)의 영어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영어에 흥미를 붙여서 혼자서도 영어 책이라든지, 인터넷,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배워 나갔지만, 그렇다고 학교 영어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학교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나는 워낙에 교육에 대한 신뢰와 열정이 가득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데다가 원체 규칙을 거의 맹목적으로 따르는 성격을 타고난 탓에 선생님들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믿었다.

그래서 학교 및 학원 영어 선생님들이 이런 말씀을 했을 때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 영어 선생님의 첫 번째 거짓말

"외국에서는 '노트북(notebook)'이라는 말은 안 써. 콩글리시(Konglish)거든. 외국 나가서 '노트북'이라고 하면 '공책'이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무릎에 올려 놓고 쓰는 소형 개인 컴퓨터를 말하려면 '랩탑(laptop)'이라고 해야 해."

→ 현실: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의 나, 친구에게 '랩탑'을 살까 말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친구는 자기가 컴퓨터를 좀 아니까 원한다면 같이 가서 봐 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일단 마음에 드는 기종이 있나 보려고 JB 하이파이(JB Hifi, 호주의 전자 기기 전문점 브랜드. 우리나라의 '하이마트'나 '디지털 프라자' 등을 생각하면 된다)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거기 메뉴에 'notebook'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시는 캡처할 생각을 못 했는데 방금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laptop'이라고 되어 있더라.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2018년 9월에 올라온 글에서 이런 짤을 발견했다. 출처는 https://www.ozbargain.com.au/node/401163)

 

 

'노트북'?????????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 시내에 나갔는데, 한 컴퓨터 수리점이 간판에 아예 'NOTEBOOK/LAPTOP REPAIR' 이렇게 써 붙였더라.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약 15년쯤 믿어 온 선생님의 말이 거짓이었다니!?

그래서 나는 '노트북'과 '랩탑'의 차이가 뭔가 검색해 봤다. 이런 저런 사이트들을 둘러봤는데 결론은 '랩탑이 노트북보다 조금 더 두껍고 무게가 나가며 조금 더 성능이 좋을 수 있지만,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https://www.webopedia.com/DidYouKnow/Hardware_Software/laptop_notebook.asp)

'노트북' 대신에 '랩탑'이라고 해도 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노트북'이 약간 더 가볍고 문서 작업 같은 단순한 업무에 적합하다는 뉘앙스이긴 한데, '노트북'이라고 해도 영어 원어민이 "공책????" 이러면서 못 알아듣지는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나도 혹시나 해서 호주인 친구에게 '노트북'이라는 단어를 써서 말해 봤더니 완벽하게 잘 알아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구글에 '노트북'을 검색해 보니 관련된 제품 광고에 '노트북' 컴퓨터가 뜬다. 다시 검색해 보니 공책도 같이 뜨더라.

'노트북'이 단순히 '공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띠용. 이 무슨... 나는 아직도 이 영어 선생님 생각을 한다. 이분이 내게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아닌 걸 아는데 일부러 틀린 걸 가르쳐 주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당신은 정말 그렇게 믿으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15년쯤 지나 알게 된 진실은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혹시 호주 또는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이 있다면 댓글 달아 주시라. 아니면 '노트북'이라고 하면 '공책'만을 뜻하더라 하는 제보도 좋다. 어떤 것이든 관련된 이야기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정보 부탁드린다.

 

# 영어 선생님의 두 번째 거짓말

"우리가 씹는 '껌'을 말하고 싶으면 '검(gum)'이 아니라 '추잉 검(chewing gum)'[각주:1]이라고 말해야 해. 그냥 '검'이라고 하면 외국인들은 '잇몸'이라고 생각할 거야."

→ 현실: 미국 TV를 보다가(호주 위성 TV에도 미국 및 영국 프로그램을 많이 들여와 보여 준다) 어떤 미국인이 "껌 먹을래?"라는 의미로 껌을 내밀며 "Gum?" 하고 말하는 걸 봤다(<빅 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인 것 같지만 지금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정확히 이거였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 나한테는 '추잉 검'이라고 하라면서요!!

다시 한 번 영어 선생님(잘 기억은 안 나지만 위의 그분과는 다른 분인 거 같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평생 '검'이 콩글리시인 줄 알았는데, 원어민도 그냥 '검'이라고 말한다고?

그래서 또 검색을 해 봤다.

 

내로라하는 콜린스 사전과

 

케임브릿지 사전에서도 'gum'에 '잇몸'뿐 아니라 '씹는 껌'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정의해 놓았다.

 

호주의 대형 마트 브랜드인 울워스(Woolworths, 우리나라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에서도 '껌'을 '민트'와 같이 분류해 놓았다.

 

물론 약간의 시대적 차이도 있을 수 있다. 영어 선생님들께 이 두 가지 표현을 배운 게 벌써 최소 15년은 예전 일이니까.

그렇지만 그동안 내가 영어를 손놓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나는 영어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영어 실력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았다!), 시대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어떻게 그것이 더 이상 요즘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마 내가 내 경험보다 선생님의 말, 선생님의 권위를 앞에 놓았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오늘의 결론 및 교훈: '진정한 교육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나는 배우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그 '배움'이라는 게 반드시 어떤 선생님에게 강의를 듣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어떤 것이든 배울 수만 있다면 그건 내가 읽는 책, 내가 보는 TV 시트콤, 내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 내가 길거리에서 본 것일 수 있다.

나는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통해 하나라도 더 배우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나에게 해 준, '가르쳐' 준 거 말고, 일단은 나의 경험과 나 자신을 더 믿어야 한다.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시기를 바란다.

  1. 제목에는 '추잉 껌'이라고 써 놓고 여기에서는 왜 '추잉 검'이라고 썼는지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해 두기 위해 각주를 단다. 제목에 쓴 '추잉 껌'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이고, 이 본문에서 '추잉 검'이라고 쓰는 건 이 단어의 영어 발음을 최대한 비슷하게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그럼 왜 '노트북'은 '놋북'이라고 표기 안 했느냐 하시면... 그건 너무 '나 영어 합네' 하고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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