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이진민,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는 저자가 선정한 독일어 단어들을 소개하는 에세이. 대체로 독일의 문화를 보여 줌으로써 동시에 우리나라의 문화도 견주어 생각해 볼 만한 단어들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 작은 단어 안에 든 큰 세계’에서 이 책을 제안받았을 때 독일에서 생활한 지 6년차였으로 “공손히 앞발을 모으고” “제 독일어는 이제 다섯 살 수준입니다.”라고 출판사 측에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 편집자가 “다섯 살의 감각으로 채집할 단어는 또 얼마나 새로울까요.”라며, 책의 독자는 대부분 독일어 신생아일 테니 다섯 살이면 충분히 든든한 선배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분들 말씀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하시지? 감탄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사실 저자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표현도 참 잘한다. 예를 들어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있는 글들이 그렇게 독일을 잘 묘사한 통찰력 있고 빼어난 글이냐 한다면 나부터 비웃으며 오래 두어 갈변하고 쭈그러진 사과의 표정을 할 예정이다.”처럼.
책의 첫 장을 여는 단어는 ‘Feierabend’이다. ‘축제’나 ‘파티’를 뜻하는 ‘Feier’와 ‘저녁’을 뜻하는 ‘Abend’가 합쳐진 단어인데, 하루 일을 마감할 때 쓰는 명사다. 동료들끼리 ‘수고했어, 잘 쉬어!’라는 의미로 “Schönen Feierabend!(쇠넨 파이어아벤트!)”라는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그러므로 파이어아벤트는 열심히 생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주로 평일 근무의 끝자락에 외치는 단어다.” 축제나 파티를 꿈꿀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 한국인에겐 그야말로 꿈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독일에 살면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랑스러운 독일 맥주를 제치고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은 바로 삶의 여유다. 불교 신자로서 와불의 존재, 그러니까 부처님이 종종 누워 계신다는 점을 특별히 좋아하는 나는 (예수님도 가끔 십자가에서 내려와 편하게 누워 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독일에 살면서 격렬히 누워 지낼 수 있어 몹시 기쁘다. 한국에서는 앉아서 졸고 서서 자는 특기를 발휘했고 미국에서는 탈진해서 누웠다면, 독일에서는 정말로 편안히 누울 수 있는 기회가 부쩍 늘었다. 단순히 아이들이 조금 컸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부가 공히 자기 시간이 많고 충분히 쉴 수 있다 보니 삶이 전체적으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독일 사회에서도 자본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한다지만, 대다수가 노동의 가치를 귀하게 인식하는 만큼 쉼의 미덕 또한 아는 것 같다. 사람들은 매일의 파이어아벤트를 즐기고 주말을 소중히 여기며 축제를 사랑한다.
이런 표현이 있다는 건 독일이 그만큼 삶의 여유가 있다는 뜻일 테다. 저자도 그 점을 독일에서 사는 일의 장점으로 꼽았다.
독일에 살면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랑스러운 독일 맥주를 제치고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은 바로 삶의 여유다. 불교 신자로서 와불의 존재, 그러니까 부처님이 종종 누워 계신다는 점을 특별히 좋아하는 나는 (예수님도 가끔 십자가에서 내려와 편하게 누워 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독일에 살면서 격렬히 누워 지낼 수 있어 몹시 기쁘다. 한국에서는 앉아서 졸고 서서 자는 특기를 발휘했고 미국에서는 탈진해서 누웠다면, 독일에서는 정말로 편안히 누울 수 있는 기회가 부쩍 늘었다. 단순히 아이들이 조금 컸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부가 공히 자기 시간이 많고 충분히 쉴 수 있다 보니 삶이 전체적으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독일 사회에서도 자본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한다지만, 대다수가 노동의 가치를 귀하게 인식하는 만큼 쉼의 미덕 또한 아는 것 같다. 사람들은 매일의 파이어아벤트를 즐기고 주말을 소중히 여기며 축제를 사랑한다.
비슷한 의미에서, 저자는 ‘Arbeit(’아-바이트’라고 발음)’라는 단어를 통해 독일와 우리나라의 노동 문화를 비교해 보기도 한다. 독일에서 이 단어는 ‘노동, 일, 작업, 과제’ 등의 뜻으로 쓰는데 일본에서 이것을 가져다 “본래의 일이 아니라 임시로 하는 부업, 시간제 근무나 단기로 돈을 버는 일 등에 붙였고, 우리도 이를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다”. 보통 우리는 ‘알바생’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정확하고 놀라워서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본다.
독일에서는 당당한 단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왠지 주눅 들어 있는 단어가 아르바이트다.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버는 어린 학생들을 볼 때의 대견함과는 별개로, 제대로 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과 거기에서 오는 멸시의 마음이 단어 안에 엷게 스며 있다. 그런데 이런 못난 마음을 당당히 부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존중이 어렵지 무시는 쉬운 법이라, 알바생을 대할 때 갑질을 해도 되는 만만한 대상, 정해진 일이 따로 없으니 그야말로 뭐든 시켜도 되는 대상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 취급을 받으면 스스로도 자기를 가볍게 대체될 수 있는 인력으로 생각하고서 맡은 책임을 쉽게 거두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알바’라는 단어에는 부당 해고, 갑질 신고 같은 측은한 말도, 잠수, 대타 핑계 같은 난감한 말도 연관 검색어로 따라붙는다. 알바는 이제 돈을 받고 여론 조작을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직업의식 같은 것 없이 그저 돈만 받으면 가리지 않고 해주는 일이라는 씁쓸한 뉘앙스도 배고 있다.
단어를 유심히 보다 보니 ‘알바생’이라는 말도 독특하다. 알바인人, 알바자者가 아니라 알바생生이라는 것. ‘-생生’은 수습생, 실습생, 초년생 같은 말에서처럼 명사 뒤에 붙어 ‘학생’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기 때문에, 단어에 ‘배우는 어린 사람’이라는 뜻이 섞인다. 그 결과 어쩐지 상대를 내려다보기 쉬워지는 말이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한데, 알바생이라는 단어로 굳혀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70대 알바생’이라니, 꼭 ‘유치원생 가장’처럼 어색하지 않은가. 40대에서 60, 70대의 임시직 노동자는 날로 늘고 있고, 이들에게 ‘알바’는 단순한 용돈 벌이가 아니라 생계 수단이 될 확률이 오히려 높다. 그런데 용돈을 벌기 위해 잠시 시간을 쪼개 일하는 학생이라는 의미가 짙은 ‘알바생’이 일반화되다 보니, 그냥 용돈 벌이로 하는 일에 깐깐하게 계약서를 쓴다거나 관련된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그릇된 생각이 들러붙기 좋지 않았을까. 이들은 엄연히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이다.
사실 ‘-생生’이 붙은 말 중에 내려다봐도 되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어린 학생이나 초심자일수록 더욱 존중하며 정중히 대해주는 것이 어른의 할 일이다. 대접을 받고 큰 이들이 자라나서 또 자연스럽게 타인을 배려하고 대접하게 될 것이다. 대중들은 이미 ‘알바’라는 약어를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확대해서 쓰고 있지만, 설령 진짜 어린 학생들일지라도 ‘알바생’이라는 말을 삼가고 ‘아르바이트 노동자’ 같은 표현을 뉴스나 일간지에서부터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그들도 엄연한 노동자라는 사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일상에서도 함부로 얕보이지 않도록.
이 외에도 소개하고 싶은 독일어 단어가 많지만 내가 다 불어버리면 책이 안 읽힐 테니까 하나만 더 하겠다. 독일 유치원에서는 졸업할 때 아이들을 유치원 밖으로 던져 준다고 한다! 어떤 사연인지는 아래 인용문을 보시라.
“엄마, 이음이는 세 밤 자면 던져져.”
최근에 들은 귀여운 문장이다. 세 밤 자면 유치원을 졸업한다는 뜻이다. 독일 유치원에는 재미있는 풍습이 있다. 라우스부르프(Rauswurf, 실제 발음은 ‘라우스부어프’에 가깝다), 혹은 라우스슈미스Rausschmiss라고 하는데, 선생님이 졸업하는 아이들을 유치원 밖으로 던져주는 것이다. 물론 바닥에 폭신하고 두터운 매트리스를 겹겹이 깔아두고. 이것이 독일 유치원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다.
라우스부르프Rauswurf는 ‘던짐’을 뜻하는 명사 부르프Wurf에 ‘바깥쪽으로’라는 의미의 접두사 라우스raus가 붙은 말이다. 원래는 자의에 반해 쫓겨나거나 그만두게 되는 일, 즉 퇴출이나 제명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다. 하지만 유치원에서는 말 그대로 졸업하는 아이를 밖으로 던져주는 세리머니를 지칭한다. 베르펜(werfen, 실제 발음은 ‘베어펜’에 가깝다)과 슈마이센schmeißen은 모두 ‘던지다’라는 뜻의 동사고, 여기에서 ‘밖으로 내던짐’이라는 의미의 라우스부르프Rauswurf와 라우스슈미스Rausschmiss가 파생되었다. 아이들을 던지면서 모두가 함께 외치는 문장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대체로 이렇다.
Eins, zwei, drei, die Kindergartenzeit ist jetzt vorbei!
하나, 둘, 셋, 유치원 시절은 이제 지나갑니다!
Fenster, Türen aufgerissen!! Die/Der ○○○ wird jetzt rausgeschmissen!
창문도, 문도 활짝!! ○○○가 이제 밖으로 던져집니다!
모두의 환호 속에서 콩, 하고 던져진 아이들은 다소는 수줍고 다소는 자랑스러운 감정을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섞은 듯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나 씩씩하게 밖으로 나간다.
이게 너무 신기해서 유튜브에서 검색해 봤더니 당연히 영상이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위 인용글에서 알려 주는 노래도 부르면서 던져 주신다(가사는 쪼오끔 다른 듯). 의미도 좋지만 일단 애들이 너무 재미있어하는데 ㅋㅋㅋㅋㅋ 저도 정신 연령은 유치원생 비슷한데 시켜 주시면 안 될까요… 😉
마지막으로,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저자가 여러 책(대체로 소설)을 자주 언급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위의 ‘아르바이트’ 꼭지에서 김애란 작가의 단편 <하루의 책>에는 공항 청소 노동자 기옥 씨가 등장하는데, 저자는 그의 “많은 이들이 재떨이와 재떨이 청소부를, 승강기와 승강기 청소부를 동격으로 대하듯” 한다는 대사를 인용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장강명 작가의 단편 <알바생 자르기>를 언급하기도 한다. 한 책을 읽다가 그 안에서 다른 책을 알게 되어 그것까지 읽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는 분들께 좋을 듯. 덕분에 나도 현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다 앞으로 읽을 책 보관함에 수집해 두었으니 차차 꺼내서 읽어야지.
한 언어를 안다는 것은 그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의 문화와 사고 방식까지 알게 된다는 뜻이다. 꼭 그 언어를 마스터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종종 외국어를 접하며 ‘이런 문화도 있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알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저자의 에세이, 곽미성 작가의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도 아니고요>도 읽어 볼 만하다. 이 책도 물론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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