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박서련, <마법소녀 복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박서련 작가님의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에 이은 후속작! 안 그래도 한 권으로는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2년 만에 후속작이 나와서 무척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줄거리는 당연히 전작과 이어진다. 어찌어찌 세상을 구한 주인공 ‘나’는 세상을 구한답시고 모든 마법소녀들의 능력을 소멸시켰기 때문에, 죄책감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이하 ‘전마협’)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최소한 새로운 마법소녀를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전마협’과 함께하기로 한다. 동시에 ‘나’는 연인인 예언의 마법소녀 아로아와 공간의 마법소녀 최희진과 함께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다루기 위한 훈련에 돌입한다. 그런데 ‘전마협’에 대항해 ‘마법소녀 사유화에 반대하는 모임’, 다른 이름으로는 ‘극동마법소녀전진본부’가 등장한다. 이들은 세계 유일의 진정한 마법소녀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의 마법소녀’를 숭배하는, 어딘가 사이비 종교스러운 모임인데…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사귀는 ‘나’와 아로아의 달달한 연애가 아주 귀엽다. 백합러라면 아주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읽으실 수 있을 듯. 나는 딱히 GL을 파는 건 아니지만 둘이 죽고는 못 사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전부 여성인 것도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 모 애니처럼 (참고) 남자가 없는 세계관은 아닌데 주요 인물들은 전부 여자. 아이 좋아라. 주인공도 악역도 전부 다 여자가 해처먹읍시다!
주인공 ‘나’는 교환의 마법소녀로, 마구(魔具)는 블랙 카드이다. 그녀의 마법은 대가가 있는 교환이라서, A를 얻는 대신 B를 희생해야만 한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일어나는 대가로 적당한 대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번 소설에서 그 능력을 훈련하는 게, 뭔가 삶에 대한 비유 같기도 하다. 아니면 최소한 빚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대환’이라는 개념을 이해했다고 하면 오버일까. 하지만 정말인걸요! (참고로 대환은 아로아의 설명대로 “이자가 센 대출 상품을 보다 유리한 대출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음은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인용문들 모음.
“마력이라는 게 뭔데요?”
“결국은 체력이죠. 작은 일이지만 수십번 연달아 사용하니 지칠 만도 해요.”
하긴 그렇네. 내가 떠올린 이미지는 (왠지) 설거지였다. 혼자 사는 내가 나 밥 먹은 그릇 씻는 정도는 얼마든 할 수 있는, 즉 무한히 가능한 일 같지만, 뷔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서 접시 팔백장을 애벌 설거지하고 업소용 식기세척기에 적층하는 작업에는 어마어마한 체력이 요구되겠지.
“그러면 체력을 더 많이 키워야겠네요.”
“한정된 마력을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도 좋겠죠.”
“리리 언니 하러 온 분 맞죠?”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팀장은 우리 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다는 투로 물었다. 손을 배꼽 아래 모으고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즉, 조금 굽신거리는 태도로) 서 있던 나는 난처함을 숨기려고 살짝 웃으며 답했다.
“저는 시식 코너인 줄…… 알고 왔는데요.”
팀장은 접객용일 듯한 환한 미소(웃기 실력으로 치면 그쪽이 나보다 프로인 건 당연했다)를 띠며 말했다.
“시식 코너 시킬 거면 굳이 왜 이십대를 뽑았겠어요? 옷 사이즈 몇 입죠?”
“육육이요.”
반사적으로 말하고 나는 얼른 덧붙였다. 저 보건증도 가지고 왔는데, 혹시 몰라가지고. 피시방 알바 때문에 검사했었거든요. 흠, 하고 내 말을 흘려들으며 유니폼 캐비닛을 뒤지는 팀장을 보고 있자니 옷 사이즈 말고 나이를 말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요, 이십대가 맞긴 한데 이제 서른에 더 가깝거든요? 리리 언니라면 그거죠? 그거잖아요, 그……
“여기 있네.”
팀장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내가 입어야 할 유니폼을 집어 내게 건넸다. 통기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없게 생긴 옷감이 바스락바스락 비벼지며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도망치라고.
“제가 해야 할 일이 정확히 뭔가요?”
“이거 입고 그냥 서 있으면 돼요. 애들이 같이 사진 찍자면 찍어주고. 이렇게 쉬운 일이 또 있을까? 할 수만 있으면 내가 하고 싶네.”
진심인가요? 진심으로 이, 잠자리 눈알 색 같기도 하고 똥파리 몸통 색 같기도 한, 색종이 오려 만든 드레스 같은 걸 입고 싶단 말인가요? 나는 직원 탈의실의 형광등 불빛을 오색으로 반사하는 유니폼을 받아들고 잠깐 숨을 골랐다.
리리 언니는 어느 장난감 제작사에서 마법소녀 열풍에 힘입어 내놓은 마법소녀 콘셉트의 인형이었다. 현실의 마법소녀에게 변신은 능력을 한층 강화하는 수단이지만, 리리 언니는 변신이 능력 그 자체라서 파란 머리도 될 수 있고 갈색 머리도 될 수 있고(이론상 대머리도 될 수 있어야 할 테지만 그런 건 아마 수요가 별로 없겠지……) 변호사도 플로리스트도 아이돌도 테니스 선수도 될 수 있었다. 시무룩하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한, 서른살에 가까운 일일 알바생이라도 리리 언니는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마법소녀 복직합니다> 본문이 시작하기 전, 전작의 내용을 한 쪽으로 요약한 ‘지난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아직 전작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제발 그것부터 읽고 이것도 읽어 주세요. 부탁입니다! 밀리의 서재에 두 권 모두 (그것도 리커버 버전으로!) 올라와 있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하시라. 덧붙여, 마법소녀라는 소재 자체를 좋아하고 이 소재를 좀 더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보고 싶으시다면 사이토 미나코의 <요술봉과 분홍 제복>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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