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지우,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책 감상/책 추천] 김지우,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휠체어를 굴린다고 해서 유튜브 채널 닉네임도 ‘구르님’인 장애 여성인 저자가 자신처럼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총 여섯 명.

10대 소녀 지민, 20대 ‘운동가’이자 ‘운동 선수’인 성희, KBS의 첫 장애인 아나운서 30대 서윤, ‘사업가, 몽상가, 엄마, 유튜버’ 40대 다온, 휠체어를 타고 여행하는 50대 윤선, 은퇴한 교수이자 여전히 시민 교육에 힘쓰는 비혼 여성 60대 효선까지, 저자는 (자기보다 어린 10대 지민을 빼고) 인터뷰이들을 다정하게, 애정을 담아 ‘언니’로 부른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여성’ ‘장애인’이라는 같은 정체성을 나누는 그들이기에 공감하고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휠체어 탄 언니를 볼 때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우리 안에서 공명하는 무언가를 느낀다. 각자의 역사가 다름에도 우리를 통과하는 감각은 놀랍게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마주침은 서로에게 웅웅대는 파장을 만들어 낸다. 그 울림은 내게 정겹고 그리운 것이라, 계속 진동을 좇아 움직이게 된다.

휠체어 탄 언니들을 만나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 고난과 외로움은 지독히 독특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많은 언니가 경험한 대수롭지 않은 일이거나 참고문헌을 따라 마주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휠체어를 탄 채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순응이나 실패가 아니라, 바퀴의 동력으로 더 멀리 구르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었다. 장애와 함께 사는 미래는 불투명한 미지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갈래로 뻗어 나간 언니들이 있는 실제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 진동을 더 널리 퍼뜨리고 싶었다. 아직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장애여성들이 언니들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무작정 언니들을 찾아갔다. 그들이 흔쾌히 전해 준 이야기를 글로 썼다. 나는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내 이야기를 썼었다. 여전히 필요로 움직이는 작가인 나는 장애가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사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너무 듣고 싶어서 다시 글을 썼다.

 

이 ‘언니들’(저자와 달리 나는 20대 성희 씨조차 언니라고 부를 수 없다… 따라서 내게 언니는 오직 네 명)과 동생들(남은 두 명)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진하게 느낀 것은,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여자는 여자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일단 장애인이라는 큰 분류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스스로를 ‘장애여성청소년’이라고 부르는 10대 소녀 지민조차 느낀다. 다음 인용문을 보시라.

지민 예전에 지하철에서, 어떤 뇌성마비 남자 장애인이 나한테 와서 내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거야. “왜요?” 이랬더니 예뻐서 찍고 싶대. 그래서 “아니요. 싫어요.” 몇 번을 거절하니까 그제서야 가더라고. 나는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같은 장애인인데도 그때 나한테는 정말 위협적이었거든, 그 사람이. 그래서 되게 복잡한 감정을 느꼈어. ‘내가 이 사람을 거절하면 장애를 차별하는 건가? 악의적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여기서 거부를 해도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지우 언니는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게 너보다 훨씬 늦었으니까, 스무 살 넘어서야 혼자 지하철도 타 보고 했는데. 그때부터 위협적인 거야, 세상이. (맞아) 밤늦게 집에 갈 때 내가 너무 취약한 거지. 솔직히 휠체어도 남이 힘 줘서 밀면 밀리는 거고, 장애가 있는 게 사람들 눈에 빤히 보이니까. 하루는 늦은 밤에 길거리에서 술 취한 남자가 도와주겠다면서 가만히 있는 내 휠체어를 민 적이 있었어. 너무 놀랐는데 괜찮다고, 고맙다고 했어. ‘나쁜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을 거야.’ 하고 애써 생각하면서.

같은 장애인이라도 여성 장애인은 남성 장애인에게 위협당한다고 느낀다. 비장애인 남성은 장애인 여성에게 더욱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 저자는 애써서 그는 좋은 의도로 그랬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고 실제로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닌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느낀 두려움은 진짜다. 이걸 무시하고서 ‘장애인’ ‘여성’을 이해할 수는 없다.

내가 여자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여자라고 한 데에는 여자라는 그 정체성의 구체적인 경험을 지울 수 없다는 의미다. 또 다른 사례 하나. 저자는 “비슷한 몸들이 겪는 감각을 수면 위로 끄집어낼 때면 다른 어떤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성큼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월경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경 기간 중 어떤 방식으로 고통이 찾아오는지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처음 그런 기분을 느꼈다.”라고 썼다. 월경만큼 온전히 (생물학적) 여성의 것인 경험이 있을까? 생리 때면 비장애인도 힘든데, 휠체어에 계속 앉아 있어야만 한다면 두 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이 당연한 걸 왜 나는 상상조차 못 했을까? 비장애인 여성인 내가 그걸 상상조차 못했다면, 이게 장애인/비장애인 남성에게는 완전히 다른 우주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지민은 또한 다이어트에 대해서도, 여성에게 기대되는 미적 기준에 대해서도 말한다.

지민 일단 요즘 다이어트를 했잖아. 그러면서 내 몸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우리가 비장애인들보다 활동량이 현저하게 떨어지잖아. 자연히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고. 이런 부분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 마르려면 덜 먹어야 돼. 그러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그러고 싶지 않지만 몸을 혐오하기도 했어. 내 몸을 잘 돌봐 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몸에 대한 감각이 예전에는 주로 장애와 관련되어 있었다면 이제 여성으로서 느끼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 다이어트를 처음 시작한 건 비만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저체중이야. 당연히 적당하게 유지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완전 삐쩍 말랐거나 아니면 완전 뚱뚱하거나. 내가 봐 온 언니는 막 뚱뚱했던 적이 없는 것 같거든. 언니는 나랑 또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혹시 이런 고민해 본 적 있어?

지민은 또한 이런 말도 덧붙였다. 보호자나 다른 비장애인들이 자신을 안고 옮길 때가 많은데 그때 가볍고 작은 게 편할 것 같고, 실제로도 가족들은 그가 가벼워지니까 편하다고 말했다고. ‘장애인’ ‘여성’도 ‘여성’에게 기대되는 미적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민은 살을 빼니까 척추측만증이 더 잘 보여서 오히려 더 예뻐 보이지 않는 몸이 되었다고 털어놓는데, 저자도 이에 공감하며 염색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 등 꾸미면 ‘당차’ 보이고, 그러면 ‘장애인은 다 예민하더라’라는 ‘장애 이미지’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고백했다. 물론 비장애인인 내가 그들의 장애성 이야기에 공감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미적 기준 때문에 자신의 몸을 바꿔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또 실제로 자신의 몸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 본 경험에 공감할 수는 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굶는 장애여성의 몸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꾸만 논의를 이탈한다. 섹슈얼리티와 유리된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비난의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하고, 몸이 마르면 다리가 차가워지거나 휜 척추가 드러나 ‘매력적인 몸’은 커녕 자기 만족에서도 멀어지곤 한다. 성적 주체와 돌봄 수혜자 사이에서 작고 마른 몸은 비장애인과 또 다르게 해석된다.

장애가 있는 여성의 몸은 이처럼 매력 자본으로서의 섹슈얼리티와 주체성을 둘러싸고 미묘한 경계를 넘나든다. 어느 한쪽의 이야기로 정체성 일부를 소거시키는 관점으로는 지민의 다이어트를 이해할 수 없다.

 

30대 서윤의 꼭지에서는 서윤이 ‘장애인’ ‘여성’의 성(性)에 대해 조금 더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서윤은 필리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그곳에서는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서윤의 상황을 이해하고 또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성교육 역시 철저했으며, 또 주변 ‘언니’들이 피임이나 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서 그에게 많은 걸 알려 주었다고. 건강하게 성생활하는 법이나 어떻게 내 몸을 지키는지 등등. 그런데 한국에서 대학교에 갔더니 주변 친구들이나 여자 동생, 후배들이 그러지 못하는 걸 봐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서윤 지우한테 너의 몸을 잘 지키는 법, 그리고 즐기는 법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파트너와 즐겁게 관계 맺기를 기대했던 거지. 왜냐하면 장애가 있는 여성으로서는 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대부분 어떻게 얘기하냐면 내가 ‘여성’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야. 나의 ‘여성성’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문제가 있냐면 나를 성적인 상대로 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파트너가 성적 학대를 하든 뭘 하든 견디는 사례가 있는 거예요. 지우 만날 즈음에 장애여성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여러 사례를 봐서 더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보이십니까, ‘장애인’ ‘여성’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여성성’을 인정해 주는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말이? 이게 서윤 말대로 파트너가 성적 학대를 하더라도 견디는 사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왜? ‘장애인’ ‘여성’도 여성이니까. 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의 장애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걸 요구하거나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부’ 장애인 남성들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타인에게 풀어 주기를 요구하기까지 하는데? 장애인의 성에 대한 이야기, 게다가 그걸 누군가 ‘봉사’해서 풀어 줘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죄다 남자들에 대한 것뿐이다. 장애인 여성들은 그럼 어떡하라는 건지? 장애인 여성들은 성욕이 없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소리다.

서윤은 자신이 영어로 장애인의 성에 대해 검색해 봤을 때에도 이런 남성 중심적 사고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확실히 해 두자면, 이 경우의 맥락은 ‘척수 장애가 있으면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없나?’가 궁금해서 영어로 검색해 봤더니 해외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부부 사이에서 성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나 같은 내용들이었다는 것임을 밝힌다(하지만 위에서 내가 언급한 장애인 남성의 성에 대한 이기적인 사고, 즉 남성의 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타인이, 대개는 여성이, 이를 해소해 주어야 한다는 사고에 대한 비판도 남성 중심적인 사고라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서윤 고민이었던 게 뭐냐면, 되게 남성 중심적인 사고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서 ‘남성 비장애인의 경우에는, 파트너가 여성 장애인일 때 어떤 포즈로 어떻게 하면 된다.’라고 되어 있거나, 아니면 ‘남성이 장애인이고 여성이 비장애인의 경우에는 여성 파트너가 어떻게 해야 한다.’ 이렇게만 나와 있는.

지우 비장애인이 ‘해 줘야’ 하는 거라는 건가요?

서윤 비장애인이 해 주거나 혹은 ‘남성의 쾌락’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가 쓰여 있는 거죠. ‘그럼 여자는?’ 이 질문이 있었어요. 근데 거기에 대한 명백한 해답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받았던 성교육의 핵심은 ‘자기 몸을 스스로 잘 탐색해라. 내 몸을 내가 다 케어링 해야 한다.’였거든요. 그때부터 그냥 이렇게, 몸을 만져 봤어요. (팔, 다리를 쓸면서) 여기까지 감각이 있나?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여기에도 감각이 있나? 이런 식으로 만져 봤어요. 그랬더니 진짜 요만큼, 손가락 두 마디 차이로 여기는 감각이 있는데 바로 옆에는 감각이 없어. 이런 데도 있고. 앞면이랑 뒷면이랑 감각의 부위 차이도 있고. 이런 부분을 다 캐치해야 하는 거예요. 심지어 중요한 부위도 이렇게 만져 보면, 어디는 되고 또 안 되고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럼 그걸 내가 알고 있어야 하는 거죠. (성관계) 포즈나 이런 것들은 나는 외국 걸 봤지. ‘저게 돼? 저게 돼?’ 막 이러면서. (웃음)

지우 오. 그런 게 있구나, 신기하다!

서윤 아니 야동이 없으니까 그거라도 봐야지! 막말로 휠체어 탄 사람이 하는 야동이면 내가 봤겠지, 없는데 어떡해! 제가 찾은 건 교본 같은 거였어요. 실제 부부인데 여자분이 장애가 있고 남자분이 없는데, 그 교본을 만들기 위해서 묘사를 하는 거죠.

사실 내가 바란만큼 아주 분명하고 노골적인 정도는 아니지만, 사실 나는 이만큼이라도 솔직하게 장애인 여성의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를 한국에서는 본 적 없다(아래 내가 언급할, 장애인 인권 운동가에 대한 영화에서는 봤다). 장애인 여성들이 좀 더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이야기를 해 줬으면 좋겠다. 장애인 남자들은 그러던데, 여자들은 왜 안 돼? 같은 여성으로서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아, 이 외에도 멋지고 존경스러운 언니들 이야기가 더 많은데 이 리뷰에 다 쓰지 못해서 아쉽다. 60대 전직 교수이자 비혼 여성인 효선의 꼭지에서는 그가 ‘비혼’ 여성이라는 점도 짚어 줘서 너무 좋았다. 아니, 이제 보니 멋있으면 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럼 나에게는 여섯 명의 인터뷰이와 저자까지 포함해 총 일곱 명의 언니가 생긴 셈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언니’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이라면 원도 작가의 <아무튼, 언니>도 추천한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 바버라 리시키와 앨런 홀즈워스의 삶을 다룬 BBC 영화 <Then Barbara Met Alan(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2022)도 보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