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앤 카슨, <남편의 아름다움>
제목에 혹해서 읽긴 했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일단 부제는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라고 한다. 허구의 에세이라는 것은 대충 픽션이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탱고로 썼다는 것은 도대체 뭔지 감도 안 왔다. 다 읽고 난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옮긴이 민승남은 이렇게 해설했다.
이렇듯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에 가까운 갈망을 노래한 《남편의 아름다움》은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라는 부제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탱고’를 구조적 장치로 이용하고 있다. 이 작품의 템포는 긴 스텝과 짧고 복잡한 스텝이 교차하는 탱고의 강렬한 리듬을 닮았고, 극단적인 서술 방식은 탱고의 과장된 포즈를 연상시킨다. 탱고는 격정과 관능, 애수의 춤이다. 아름답지만 나쁜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탱고보다 더 잘 어울리는 춤은 없다. 그리하여 그녀의 비극적인 결혼 이야기는 열정의 춤 탱고를 통해 아름다운 시로 승화되고, 이 작품은 앤 카슨에게 여성 최초의 T. S. 엘리엇 상 수상자라는 빛나는 영예를 안겨준다.
예… 그렇군요… 저자인 앤 카슨은 키츠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고 29개 장(章)을 키츠의 희곡, 편지, 비평, 메모 등에서 인용한 구절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3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훌륭한 헌정은 간접적이다(우연히 엿듣는 것 등등)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이 유리에 새겨진 시였던 것처럼”. 자신이 이 작품을 키츠에게 헌정했고, 이 작품의 매 장을 그의 작품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사실 크게 어렵거나 하지 않다. 아래 인용문에서 옮긴이가 요약하는 바 그대로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열다섯 살에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 남자는 아름다움이라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아름다움은 섹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 섹스를 섹스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생산과 유혹의 관계처럼 그와 상극이었다”는 구절이 암시하듯 남자는 거짓말과 배신을 일삼는 나쁜 남편이 되고 둘의 결혼생활은 불행으로 점철되다가 마침내 파국을 맞는다. 이혼 후 아내의 회고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는 불안, 질투, 분노, 슬픔의 감정들이 팽배하다. 하지만 후회는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남편을 소유한 대가는 너무도 혹독하고 잔인했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아름다움을 붙잡으라고 충고한다.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진리’이고 지상에서 그녀가 아는 모든 것,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니까.
그런데 작품 자체는 어렵다. 무슨 말이냐면, 줄거리는 대충 이해하겠는데 그 이외에, 직접적이지 않은 문학적 표현들이 너무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래 인용문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시는 분?
그리고 나는 죄가 없으므로 사죄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 앞에서
보호받지 못했고
존재는 아름다움에 의존한다.
결국에는.
존재는 아름다움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다음엔 종말로 이어지는 모든 결과들이 뒤따를 것이다.
분석을 덧붙이거나
사실이 아닌 의견을 내는 건 부질없다.
Quid enim futurum fuit si…… 만일 ……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등등.
라틴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용한 파동을 타고 오르내렸다. 수동태 완곡어법은
사실에 반하는 조건에서
반과거나 가정법 대과거를 대신할 수 있다.12)
Adeo parata seditio fuit
ut Othonem rapturi fuerint, ni incerta noctis timuissent.
그들이 밤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음모가 잘 진행되어 오토를 붙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왜
이 문장을
30년이 아니라 세 시간 전의 일인 것처럼 또렷이 떠올리는 걸까!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밤의 위험을 두려워한 건 얼마나 지당한 일인지.
이것은 단연코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라틴어 문장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머지 문장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저자 본인(’무슨 약을 했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어떻게 이게 T. S. 엘리엇 상을 받은 거지? 형편이 없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좋다고 느낄 수 있는지가 알고 싶은 거다. 내가 얼마나 더 문학을 공부해야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참고로 내가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구절 중 하나가 바로 아래의 인용문이다.
아내의 눈, 목 그리고 목의 뼈들을.
놀랍지 않다,
그 뼈들이 그 목의 뼈들이 아님을
깨닫고
놀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내면
중간 깊이에서 홍조가 스스로를 찢는다.
그녀의 내면 ‘중간 깊이’는 도대체 어느 깊이이고 홍조가 스스로를 찢는다는 건 또 뭐야? 나에게는 이런 표현들이 전부 두억시니(참고)의 말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표현이 나오는 장 바로 다음에 나오는 키츠의 인용문도 기가 막히다. “당신은 그것을 무엇으로 보는가 방으로 혹은 스펀지로 혹은 실수로 칠판 반을 지워버리는 부주의한 소매로 혹은 우리 마음의 병(甁)에 찍힌 부르고뉴 상표로 보는가 기억이라 불리는 춤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런 글쓰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작품이 형편없다거나 상을 받을 만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이런 문장들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얼마나 더 문학을 공부해야 이런 표현들이 마음에 와닿고 이해가 될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느낀 독서 경험이었다. 그나저나 이 남자는 얼마나 잘생긴 남편이었길래 이 소설 속 아내는 그렇게 사랑에 눈이 멀었던 걸까… 그 얼굴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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