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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시간을 팝니다, T마켓>

by Jaime Chung 2025.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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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시간을 팝니다, T마켓>

 

 

이 책은,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에 의하면, ‘글로벌 경제학자들이 최고의 소설로 뽑았’다고 한다. 뭐, 그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시간(T, 시간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Tiempo’의 약자)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제품이 되자 사람들이 이를 사들여서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고, 기업인들과 정부가 긴장해 이를 저지할 방법을 궁리한다는 내용이다. 경제학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이고, 또 저자도 나름대로 “시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각자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썼다(책 말미에 ‘저자의 말’에 “’시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각자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이 책을 독자에게 바친다.”라고 썼다).

 

다만 내가 따지고 싶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남성’인 ‘보통 남자(Tipo Corriente, 줄여서 TC)’가 현대 사회의 가장 평범한 인간의 형태로 제시됨에 따라 여성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것, 그리고 둘째, 사람들이 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사용하게 되었을 때의 결과를 오직 경제적인 면에서만 본다는 것이다.

일단 첫 번째 점부터 따지고 보자. 주인공 TC는 어릴 적부터 붉은 머리 개미(줄여서 ‘적두개미’)의 생식체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학업 진도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물학과에 진학하지 못했고, 낙담해서 회계사 자격을 취득했다. TC는 은행에서 빌린 주택 융자 상환금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자기 삶의 대차대조표를 따져보니, 은행에서 빌린 융자금 상환을 위해 35년을 더 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니까 그가 진 빚은 $의 빚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시간의 빚이었다.” 의식주의 가장 기본이 되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거의 평생을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여남을 불문하고 마찬가지다(아래에 언급할, 역자 후기도 참고하시라).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가진 꿈을 잠시 옆으로 미루어 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주인공은 남성이며, 소설 속 화자는 TC의 아내를 묘사하는 데도 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이 화자는, 공평하게 말하자면, 다른 것도 자세히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을 절약하려 한다. 예를 들어 TC가 주택 융자 상환금을 빌린 은행의 이름을 언급하는 대신 그냥 은행(스페인어로 ‘Banco’)을 줄여서 ‘Bco’라고 줄일 정도다. 그러니 TC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하는 대신 이렇게 쓰는 것도 ‘경제성’에 입각한 처사라고 봐야 할까?

TC의 신부에 대해서 T나 공간을 할애하는 일은 현명치 않다. 그럴 T가 없다. 그래서 TC와 마찬가지로 그녀에 대한 묘사 역시 생략하겠다. 금발이든, 검은 머리든, 나이가 몇이고 직업이 무엇이든, 성격이 상냥한지 반항적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결과는 똑같다. 그녀를 TC의 아내(Mujer de TC)라고 부르기로 하자. 나는 이를 줄여서 MTC라고 하겠다.

좋다. 그러면 MTC의 어린 시절과 그녀가 TC를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생략함으로써 우리는 약 여섯 쪽을 절약했으며, 이 이야기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당분간은 떨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암요, 다른 인물도 아니고 고작 부차적인 인물에 불과한 주인공의 아내 따위를 묘사하는 데 왜 여섯 쪽(과 그걸 읽는 데 드는 시간)을 낭비하겠습니까? 이 외에도 MTC가 언급되는 일은 사건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하는 캐릭터가 필요할 때뿐이다. TC의 존재 자체가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국적이나 시대상을 막론하고 누구나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의도하고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적두개미를 연구하고 싶어 한다는 특수성은 주어졌다. 하지만 MTC는 딱히 그런 것도 없다. 머리카락과 눈 색이 무엇인지, 나이가 몇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성격인지, 독자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MTC 같은 여성들이 하는 평범한 일은 당연히 가려진다.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 같은 것 말이다. TC와 MTC 사이에는 애가 둘이 있다는 설정인데, 그 아이들을 누가 돌봤을까? “집에 들어와 남편이 이미 잠들어 있는 걸 보자, MTC는 역시 일이 예상대로 진행된 줄 알 수 있었다. 바보 같은 자기 남편이 아니면 누가 T를 파는 따위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남편을 바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사랑했기에 그를 깨우지는 않았다. 너무 피곤한 게 틀림없었다. 아주 곤히 자고 있었다. 남편이 안쓰러웠다. MTC는 남편의 뺨에 키스를 하고 아이들을 재운 다음 TC를 위해 신문의 채용 공고를 보면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같은 표현이 있는 걸 봐서 당연히 아내가 했겠지.

 

TC가 시간을 팔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자신의 변호사인 아론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론, 내가 창업을 하려고 하거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운영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네. 당장 절차를 밟자고.”

아론은 종이와 볼펜을 들고 필요한 정보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은요?”

TC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자유주식회사.”

“설립 목적은요?”

“남자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매춘은 불법인데요.”

“아니, 아니야.”

TC는 분명히 말했다.

“필요를 충족시키는 보다 윤리적인 방법이 있어.”

아론은 그렇게 적고 나서 물었다.

“주소는요?”

“남자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라는 TC의 말에 아론이 “매춘은 불법인데요”라고 대꾸했다는 점을 유심히 보시라. 원문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남자(man)’를 모든 인간, 인류(mankind)를 대표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영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에 있다 보니 그걸 의도한 것 같다. 시간은 여자의 필요는 충족시키지 않나요? 아니면, 여자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여자들이 오히려 시간을 더 많이 필요로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당연히, 시간을 통에 담아서 판다는 봉이 김선달 같은 생각을 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분명히 남자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들이 하는 일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당연히 여자들이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여기면서 자기는 인생을 살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당연히 남자이지 않겠습니까? ㅎㅎ 작가는 브리짓 슐트의 <타임 푸어> 같은 책을 읽으면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얼마나 더 바쁜지(제가 굳이 여남이 집안일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 통계를 가져와야 그 차이가 얼마나 극명한지를 아시겠어욧?) 좀 배울 필요가 있다. 아니, 시간 아깝게 몇백 쪽짜리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그냥 주변 여자들 몇 명에게 물어보시라. 다 같은 얘기를 할 테니.

 

이제 내가 따지고 싶었던 두 번째 포인트로 넘어가자. 사람들이 5분, 2시간, 1주, 35년의 시간을 사들여서 자기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비하기 시작하자 사회는 이에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걸 저자는 온전히 경제적인 면에서만 바라본다. 예를 들어서 “재계와 금융계 인사들과 함께 비밀 회동을 했던 정부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장관님, 얼마 전부터 두 시간짜리 T가 담긴 상자의 판매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만 이제는 사태가 너무나 심각해졌습니다. 1주일짜리 큐브의 출시 이후로 기업의 수익성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이며 상가, 서비스업 등을 막론하고 전국의 기업이란 기업은 생산성 급락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해서 직원의 부재를 커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실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끔찍한 일이지요! 고용할 사람이 없으니 더 이상 가용 노동력이 없습니다!”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주일의 T를 사는 사람은 월말이면 전보다 25퍼센트가 깎인 급여를 받게 됩니다. 국민 구매력의 엄청난 감소를 초래하게 되지요.”

장관은 심각한 표정을 했다.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그뿐이 아닙니다. 1주일짜리 큐브는 은행에도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받은 월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은행 계좌의 잔고도 비어가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잔고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국민들은 예전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은행 잔고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소득이 충분하지 못하면 융자금이고 대출금이고 갚을 수가 없습니다. 금융권은 국민들에게 $를 빌려주고, 국민들은 자신의 T를 전적으로 일하는 데 투자해야 체제가 돌아갑니다. 국민들은 자기 T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파멸입니다! 심각한 위험입니다! 자유주식회사는 자유 T가 많으면 그다지 많은 상품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게 했습니다. 국민들은 이제 소비를 하지 않도록 유도되고 있습니다!”

정부 대표는 국가가 처한 문제들을 요약했다.

“결국 이제 가용 노동력이 없고, 태업과 유사한 행태가 증가 일로에 있으며, 국민들의 은행 잔고는 줄어가고, 국민들의 월급도 삭감되면서 비非소비 문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재앙이 아닐 수 없지요! 달리 말하면 앞으로 몇 달 안에 국내총생산이 30퍼센트 떨어질 겁니다. 나라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국고도 줄어들고 군대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져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영토의 다른 지역들까지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런 비상시에 국고가 비어 있다면 우리나라는 취약해질 테니 외국의 침략을 받기도 쉽습니다.

글쎄,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일을 예전만큼 일을 길게 하지 않고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그 시간에 어떤 여가 활동을 해서 오히려 소비가 활성화될 것 같은데. 노동자가 일을 많이 하면 돈을 많이 받을지는 모르지만(사실 고용주가 돈을 많이 줄 것 같지도 않지만) 그 돈을 쓸 시간조차 없어서 돈이 안 돌고, 그러면 경제가 침체되지 않나? 사람들이 시간을 마음껏 쓰게 되면 오히려 경제가 살아날 것 같은데.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러면 사람들 체력이 좋아져서 건강해지고(따라서 의료 보험의 부담이 줄어들고), 평균 독서 시간도 늘어날 것이며, 문해력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문해력이 나아지면 사람들간의 갈등이랄지 소소한 짜증도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쓰게 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테니 정신과적인 도움을 구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사람들 정신 건강도 많이 좋아질 것 같다. 이렇게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여럿 있을 것 같은데, 그것까지 생각해 보셨나요, 작가님? 여기에다가 내가 아까 전까지 말했던 (시간을 자유롭게 쓰게 됨으로 인해) 여성이 해방된다면, 그것도 사회문화적으로 큰 파급력을 미칠 것이다. 여성들이 더 많은 글을 쓰거나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할 수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이 뭐든 간에 그 분야에서 더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나도 남자들만큼이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으면 여성들이 이제 여성 혐오로 인한 차별이나 억압에 저항할 테니, 여성의 인권도 더욱 보장되는 방향으로 여성들의 움직임이 커질 것이다. 근데 그런 점도 생각해 보셨나요, 작가님? 내가 경제지를 왜 진정한 의미에서 신문, 저널리즘, 미디어로 치지 않는지, 이 소설이 아주 잘 보여 주었다.

 

이런 점이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애시당초 이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생산’하며, 컨테이너(처음에는 5분의 시간을 소변 샘플을 담는 작은 통에 담아 팔았다)에 담아서 팔 수가 있는지 같은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뒷전이 되었다. 그래, 뭐 누구의 삶에서 이 5분을 깎아서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것이든, 사실은 그 통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사람들이 여기에 시간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믿어서 그 정해진 시간을 자기의 것으로 소비하게 되는 것이든, 무엇이 중요하랴. 시간을 사고팔 수 있는 환상의 세계에서조차 여성은 그 존재가 지워진다는 게 중요하지. 경제가 아닌 삶의 다른 모든 면은 무시된다는 것도 마찬가지고.

 

내가 이 책에서 최고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던 것은, 이 책의 역자가 여성이라는 거다. 이것까지가 이 책의 완성이라고 해야 할까. 역자 권상미 씨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주노 디아즈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비롯해 많은 책을 번역하셨는데, 역자 후기에 이렇게 썼다.

2006년에 처음 이 책의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 나는 갓 첫 집으로 이사했었다. TC처럼 주택 담보대출을 받았던 우리의 부채는 이 책의 주인공보다는 적은 25년이었다. 은행에서는 소득이 불규칙한 프리랜서를 그리 신용하지 않는 탓에, 정확히 말하면 25년의 빚은 대체로 내가 아닌 남편 몫이었다. 2006년에 이 책의 초판이 나왔으니 꼬박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와 남편은 TC처럼 시간을 저당 잡힌 채 그 18년을 살았다. 25년의 빚은 집을 몇 차례 옮기면서도 따라다녔고, 둘이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한동안은 대출금 상환을 앞당겨서 다 갚은 적도 있었다. (…) 이 소설은 현대판, 그리고 서양판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한줄 한줄이 풍자로 교묘하게 짜여 있어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번역을 할수록 우리의 ‘보통 남자’에 남편과 내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고 25년이라는 시간에 짓눌린 어깨가 무거워진다.

예… ‘보통 남자’인 TC에 남편분은 물론 여성인 자신을 투영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오해 마시라. 나는 권상미 씨를 비웃으려는 게 아니다. 여성이 자기 자신의 특수성을 지우고 ‘디폴트’, 즉 기본이고 따라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반, 보통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남성에게 공감하고 자신을 이입하도록 프로그램하는 사회를 지적하고 비판하려는 것이다. 여전히 ‘햄릿’은 고뇌하는 인간 군상이고 ‘오필리아’는 그냥 플롯을 위한 도구, 무언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햄릿과 오필리아 대신에 한국 문학 속 인물, 예컨대 <허생전>의 허생이나 허생의 아내 등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이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이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런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도 이해를 못 할 것 같은데. 오늘날 그저 기본적인 의식주(그중에서도 특히 ‘주’를 위해)를 갖추기 위해 평생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비판할 정도의 기본적인 지능과 비판적 사고가 있다면 이제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경제적인 면에서 보는 일의 위험성을 잡아낼 수 있어야 하고, 또 이 와중에도 여성의 존재는 쏙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책을 읽은 보람이 없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경제학자들이 좋아할 법한 표현을 쓴다면, 그건 그냥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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