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호주 문화] 잡학 지식 시리즈 (2) 호주만의 특이한 와인 포장법 - 캐스크 와인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잡학 지식 시리즈 2탄을 준비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는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와인(=포도주)을 보관한다.
'캐스크 와인(cask wine)' 또는 '박스드 와인(boxed wine)'이라고 불리는, 대략 이렇게 생긴 와인을 본 적 있으신지?
이 종이 상자 안을 열어 보면, 비닐로 된 와인 컨테이너가 들어 있다.
이걸 '군 백(good bag)' 또는 '군 색(goon sack)'이라고 한다('군'이라는 단어는 '포도주를 담는 큰 병'을 가리키는 '플래건(flago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 컨테이너에는 약 4리터 정도의 와인이 들어 있다. 이건 온전히 호주인의 발명품이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 주의 양조장 주인이었던 토마스 앤고브(Thomas Angove)는 성서 시대에는 와인을 저장하기 위해 오래된 염소 가죽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이러한 포도주 통을 고안했다.
그는 유통 기한을 줄이지 않으면서(우리가 흔히 보는 병에 든 와인은 한번 뚜껑을 따면 3~5일 후면 맛이 간다) 많은 양의 와인을 싸게 팔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밀폐된 플라스틱 봉지에 와인을 담고 그걸 종이 상자에 포장해 팔면 되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렇게 하면 와인은 처음 개봉된 때부터 약 한 달 정도는 맛이 보존됐다. 그는 1965년에 이 발명품에 특허를 냈다.
이런 포도주 통이 발명되기 전까지 호주인들은 와인을 그렇게 자주 마시지 않았다. 와인보다는 오히려 차가운 맥주를 자주 마셨다.
1973년에는 보통 호주인들은 1년에 와인을 10리터가량 마셨다(요즘은 힘든 하루를 보낸 호주인이라면 하루만에도 그 정도는 마신다).
그러다가 싼 캐스크 와인이 보편화된 1983년에는 와인 소비량이 1인당 19.8리터까지 치솟았다.
'군 백' 또는 '군 색'에 든 와인은 여전히 셀링 포인트가 다양하다. 호주에서는 캐스크 와인이 맥주나 다른 술보다 세금이 적게 붙고, 따라서 이런 와인은 사람들이 쉽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싸다.
또한 이 컨테이너는 밀폐되어 있기 때문에 와인을 잔에 따르더라도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따라서 산화를 방지한다.
종이 상자에 담겨 나온는 점도 환경에 친화적이라는 이점이 있다.
이 와인 컨테이너를 가지고 하는 게임이 있다. 그 이름하여 '군 오브 포춘(Goon of Fortune)'.
<휠 오브 포춘(Wheel of Fortune)>이라는 TV 쇼 이름에서 따온 게임인데, 이건 '돌려돌려 돌림판'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대략 이렇게 생긴 돌림판을 돌리며 퀴즈를 맞혀 승자를 겨루는 TV 쇼이다.
'군 오브 포춘'에서는 힐즈 호이스트(Hills Hoist, 간단히 말해 뒷마당에 설치하는 커다랗고 동그란 빨래 건조대)에다가 '군 백/군 색'을 달아 놓고 돌린다.
('힐즈 호이스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전의 포스트를 참고하시라! 2018/07/20 - [호주 이야기]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문화] 호주 교외의 상징, Hills Hoist)
사람들은 힐즈 호이스트 아래에 둥그렇게 서 있다가, 빙빙 돌던 와인이 멈춘 곳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이 입구에 대고 와인을 마신다.
그다음에 또 다시 돌린다. 이런 식으로 계속되는 게임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와인을 엄청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야 끝이 날 것 같은 게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이 게임을 하는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짧은 영상을 한번 보시라.
이건 군 백을 하나만 달았다.
이건 사람 수도 상대적으로 위의 영상보다 적은데 군 백을 여러 개 달아서 한 번에 여러 명이 동시에 마신다. 미쳤다.
최근 캐스크 와인 생산자들은 이 '군'에 담긴 와인이 싸구려 술로 취하는 술주정뱅이를 위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도록 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래 짤 같은.
그렇다고 해도 하나 호주인이 즐기는 캐스크 와인과 '군 오브 포춘' 게임은 아주 오랫동안 사랑받을 것 같다.
(Bunny Banyai의 <100 Aussie Things We Know and Love>를 참고하여 포스트를 작성했음을 밝힌다.)
'호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문화] 호주에서는 이미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 - 호주 교통법 위반 시 벌금은? (0) | 2018.12.04 |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호주 돈을 '달러리두'로 바꾸자고요? - 호주 돈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 (0) | 2018.12.02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스트리아'를 헷갈리는 건 만국 공통? (0) | 2018.12.01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호주 우체국 배달부들이 타는 오토바이는? (0) | 2018.11.29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호주가 원산지인 꽃 5가지 (0) | 2018.11.25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문화] 신발에 술을 따라 마신다? 호주의 슈이(Shoey)! (0) | 2018.11.24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호주에서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대피한 경험 (0) | 2018.11.22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호주에서는 화재경보기가 잘못 울려도 벌금을 내야 한다!? (0) | 2018.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