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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캐럴라인 냅, <욕구들>

by Jaime Chung 2025.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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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캐럴라인 냅, <욕구들>

 

 

내가 이전에 리뷰를 쓴 적 있는 <명랑한 은둔자>를 쓴 캐럴라인 냅의 또 다른 에세이. 원서 제목은 <Appetites>. 식욕뿐 아니라 성욕, 쇼핑 문제 등 다양한 문제로 표현되는, 그 밑에 있는 기본적인 ‘욕구들’의 바닥까지 내려가 아주 정확하고 솔직하게 탐구했다. 나는 특히 이북을 읽을 때 하이라이트를 자주 하고 아주 인상적인 부분엔 메모도 남기는 편인데, 까딱하다간 책 전체에 하이라이트를 할 뻔했다. 그 정도로 버릴 말이 한마디도 없이 다 구구절절 명언이고 다 공감이 된다.

일단 서론 ‘‘하지 마’ 세계에서의 욕구’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식욕’이라는 단어를 왜 책 제목으로 골랐는지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올봄, 치료사와 나는 그간의 작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내가 어떤 과정을 ‘수료’했거나 ‘치료’되었거나 갈등을 털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마침내 요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식욕은 내 모든 부수적 괴로움을 끌어다 걸어두는 걸이이며 (나 자신과 수많은 여자들의) 내면에 흐르는 모든 강이 생겨난 바다다. 물론 식욕/욕구appetite란 단어는 우선 먹는 일에 관한 것이다. 먹는 일과 관련된 이 부분은 수많은 여자들의 삶을 결정하고, 나 역시 너무나 잘 아는 부분이지만, 다만 이 단어는 갈망과 동경과 필요로 이루어진 훨씬 폭넓은 범위도 아우른다. 욕구는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삶에서 풍요의 감각과 가능성을 느끼고자 하는, 쾌락을 경험하고자 하는 더욱 깊은 수위의 소망에 관한 것이다. 여자들에게는 이 소망이 종종 유난히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 고통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르누아르의 그림 속 여자들과 우리의 차이가 보인다. 거기에는 그들이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그러니까 기쁨, 육체 및 영혼과의 평화로운 관계, 넉넉함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그러나 흔히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갈망이 있다.

 

저자가 거식증을 앓았던 시절의 이야기는 내가 이전에 읽은 <명랑한 은둔자>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 경험은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이 책과 더욱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저자는 코티지치즈와 쌀 뻥튀기 따위의 음식으로 자신을 제한하며 ‘영양 공급과 쾌락’을 둘러싸고 투쟁했다. 그것은 자신이 삶에서 좋은 것들, 자신이 원하는 것들(그게 직업이든, 맛있는 음식이든, 자신을 사랑해 주는 파트너든 간에)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기반했다. 그래서 거식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는 의식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랬더니 씨앗 하나가 움텄다. 이 씨앗은 어쩌면 오랫동안 거기 있었지만 그때까지 휴면 상태로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길도 하나 닦였다. 이 길은 궁극적으로 음식보다는 감정과 관련이 있었고, 허기보다는 허기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과 더욱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 마음가짐이란 우선 우리로 하여금 나는 원한다라고 말하게 이끌고, 그런 다음 더욱 중요하게,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라고 말하게 이끄는 권리 의식, 행위 주체성, 주도성이다. 그날의 구매는 대수롭지 않게 보였을지 몰라도 사실은 하나의 전환점이었고, 한 여자가 한쪽 길에는 ‘텅 빔’이라고 표시되고 다른 쪽 길에는 ‘가득 참’이라고 표시된 두 갈래 길에서 한 길을 선택한 순간이었다. ‘가득 참’이란 것, 포만과 충만과 쾌락이란 것이 내가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깊이 없었던 나는 ‘텅 빔’의 길을 선택했다.

 

여성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아래와 같은 문장들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제 서구화된 이 세계에서 이 글을 읽고 공감하지 않을 여성은 없다고 본다. 여자는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게 있어도 그걸 드러내면 안 되고, ‘뻔뻔하게’ 요구해서도 안 되며, 타인을 나보다 우선시하며 돌보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니 여자들이 자기 욕구를 억누르다 못해 때때로 거식증, 연애/섹스 중독, 쇼핑 중독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놀랍지 않다.

음식, 섹스, 쇼핑. 당신의 독이 무엇인지 불러보라. 욕구, 특히 여자들이 경험하는 욕구는 으스스할 정도로 변신에 능하고 외적인 것들에 요령 좋게 찰싹 달라붙는다. 한 전투가 다음 전투로 이어지고, 어떤 약속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또 다른 약속이 빛을 발하며 지평선 위로 솟아올라 별처럼 신호를 보낸다. 내 말 들어봐. 이 다이어트를 하면, 이 남자를 만나면, 당신의 몸과 집을 위해 이 물건을 사면 그 문제가 해결될 거야. 이는 제니 크레이그, 대니얼 스틸, 마사 스튜어트*가 각각 해석한 성배들이다. (…)

다른 여자들이 각자 선택한 물질이 무엇인지는 내 경우처럼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개는 그에 못지않게 강한 악력으로 그들을 움켜쥐고 있고 욕구라는 더 폭넓은 주제와도 똑같이 연결되어 있다. 남자들과의 강박적인 관계, 통제되지 않는 쇼핑과 빚, 삶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외모에 대한 집착, 온갖 종류의 ‘이즘’들. 이 모든 것이 허함과 관련되어 있고 내면의 공백을 잘못된 방향에서 메우려는 노력과 관계있으며 모두 똑같은 어두운 감정에서 비롯된다. 많은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감정은, 갈망은 그 자체로 어쩐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릴 권리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스스로 노력해 얻어내야만 한다는 생각, 욕구를 채우려면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많이 원하거나, 너무 섹스나 야망이나 갈망에 치우쳐 행동하면 분명 그 청구서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대개 분노에 찬 자기 비난의 야유가 따라붙는다. 넌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 이런 것들이 특히 여성의 드라마 무대에 반드시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공감이 되고 좋았던 부분은 아래 인용문이다.

물론 이는 양성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현대 소비문화에서 여성은 욕망의 주체—스스로 대상을 욕망하도록 부추김당하는 사람—인 동시에 욕망의 주요 대상이며, 관능적이고 날씬하고 육체적으로 완벽한, 대대적으로 유포되는 이미지의 핵심 판매 도구라는 기묘한 입장에 처한다. 이리하여 여자들은 원하라는 말만이 아니라 무엇을 원해야 한다는 지시까지 듣는다. 그런데 이 무언의—제대로 된 욕망을 가지면 당신도 욕망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약속은 심각한 부조화의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 이론상 우리는 자신의 욕구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자유와 자원을 갖고 있지만, 어떤 욕구들을 품어야 하는지, 진정한 만족이란 어떻게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자유는 상대적으로 희박하기 때문이다. 신시내티 의학대학에서 실시한 대규모 조사에서, 3만 명의 여성이 체중을 줄이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답했다. 이 수치 하나만으로도 여성에게 식욕 문제가 얼마나 복잡다단한 문제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정말 그게 여자들의 가장 주된 목표일까? 욕구를 없애버리고 싶은 욕구가? 솔직히 나는 그 반대가 참이 아닐까 한다. 이 새 천 년의 초입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 말이다. 많은 여성들이 그 두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이어트와 체중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엄청난 수치에서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균형과 넓은 시야와 우선순위의 문제들을 고민하느라 여자들로 하여금 한밤중에도 잠 못 이루게 하고 여자들의 신경을 갉아대는 감정들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에는 우선 이따금만 지각될지는 몰라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인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욕구를 한껏 충족하는 일이 아니라 욕구를 억누르려 애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이 가짜 신들을 숭배하느라고, 다시 말해 결코 만족을 주지 않을 것만 같은 방식으로 만족을 추구하느라고 (5킬로그램을 줄이는 것으로 안 된다면 아마 저 직장이, 저 집이, 혹은 저 연인이 만족을 줄지도 몰라)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명확히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느낌이 또 하나 있는데, 전반적으로 이것이 살아가는 방식 치고는 너무 고통스러운 방식이라는 느낌, 이 방식이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더 불안하게 혹은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고, 어쩐지 기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마치 갈망에 대한, 우리를 먹여주고 채워주고 기쁘게 하는 것들을 원하는 일에 대한 우리의 권리 자체를 어디쯤에선가 도둑맞은 것처럼 말이다.

 

너무 좋고 공감이 되고 감탄하며 읽었는데 내가 느낀 그 감정을 리뷰에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그렇지만 진짜 너무 좋은 책이니까 여러분도 읽어 보셨으면 좋겠다. 이 책이 세상에 나왔으니 이제 만약에 여자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남자들이 있으면 눈을 들어 이 책을 보라고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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