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에드워드 애슈턴, <미키7>
최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Mickey 17(미키 17)>(2025)의 원작 소설이다. 원작은 ‘미키 7’밖에 안 됐는데 영화는 왜 ‘17’이냐면, 봉 감독은 “그럼 미키를 10번을 더 죽일 수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스티븐 콜베어와의 인터뷰에서). 농담일 거고, 원작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자기의 영화와 헷갈리지 않도록 살짝의 변주를 준 것일 테다.
영화 트레일러를 보신 분들은 이 책의 줄거리도 대충 아실 것이다. 주인공 미키 반스는 ‘익스펜더블’이다. 자신의 신체 정보와 기억 등이 몽땅 저장되어, 익스펜더블 본인이 죽으면 몇 번이고 그를 복제해 낼 수 있다. 이렇게 몇 번이고 복제해 내는 이유는? 그야 당연히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임무에 보내기 위해서다. 미키는 모종의 이유로 다리우스 블랭크라는 자에게 큰 빚을 졌고, 그래서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니플하임’이라는 외계 행성을 개척하기 위한 우주선 ‘드라카’에 익스펜더블로 합류한다.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에 드라카는 니플하임에 도착했지만, 이곳이 인류가 살 만한 곳인지 우선 확인하기 위해 미키가 정찰병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크레바스에서 멍청하게 죽을 뻔하는데… ‘크리퍼’라 불리는 벌레 비슷한 외계 생명체가 놀랍게도 미키를 잡아먹지 않고 동굴 밖으로 보내 준다. 당연히 미키가 죽을 것이라 생각한 우주선 조종사 베르토는 미키 7의 정보를 이용해 다음번 미키 8을 만들어낸다. 니플하임의 추위를 견디고 걸어서 우주선으로 돌아온 미키 7(이하 세븐)은 이제 미키 8(이하 에잇)과 맞닥뜨리는데…
이 소설을 끝내마자마 바로 영화도 봤기에,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글을 진행하겠다. 위의 줄거리만 봐도, 또는 영화 트레일러만 봐도 이 작품의 핵심이 되는 문제가 ‘나와 같은 신체와 기억을 가지고 있는 클론이 있다면, 그는 나인가?’ 또는 ‘계속해서 신체와 기억을 복제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존재를 나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테세우스의 배’ 문제를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와 합쳤다고 볼 수 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문제는 이것이다. 테세우스는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전 세계를 항해했는데, 그 배는 여러 번 수리되었다. 몇 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원래 선체를 구성했던 목재는 모두 교체되고 없었다. 그렇다면 이 배는 출발할 때와 같은 배일까, 아닐까?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같은 주인에게 이용되는 배이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목재가 교체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 세븐은 이렇게 말한다.
이쯤에서 사고 실험을 한번 해 보기로 하자. 여러분이 잠자리에 들면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죽는다. 당신은 죽고 내일 아침부터 다른 사람이 당신의 삶을 대신 산다. 그는 여러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모든 희망, 꿈, 두려움, 소망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전날 밤 잠자리에 들었던 그가 아니다. 당신은 겨우 오늘 아침부터 존재했을 뿐이고 오늘 밤 눈을 감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 달라진 점을 눈치챌 수는 있을까?
‘잠자리에 들기’를 ‘으스러지기, 증발하기, 불태워지기’로 바꾸면 내 삶이 어떤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원자로 코어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달려간다. 아직 미완성인 백신을 시험해야 한다면? 내가 나설 차례다. 개발한 신약에 독성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기꺼이 삼켜 드리지. 죽으면 새로 만들면 그뿐이니까.
그 모든 죽음의 경험에서 괜찮은 점이 있다면 내가 진짜로 어떤 면에서는 빌어먹을 불멸이라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미키1이 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로 살았던 삶을 기억한다. 뭐, 그의 마지막 몇 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그러니까 나는, 우주선을 타고 이동하던 중 선체가 파손되는 사고가 난 이후 죽었다. 몇 시간 후 미키2가 깨어났고, 그는 당연히 자신이 미드가르드에서 태어난 서른한 살 남자라고 생각했다. 누가 알겠는가. 진짜 그럴 수도 있다. 미키2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진짜 미키 반스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한들 알아차릴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이 동굴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호흡기를 뗀다면 나는 내일 아침 미키8으로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의심이 든다.
나샤와 베르토는 차이를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성 너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넌 네가 불멸이라고 생각해?”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뭐라고?”
“네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느냐고. 여태 한 일곱 번쯤 죽었나?”
“여섯 번. 아직 여섯 번이야. 이런 상황이 생긴 근본 원인이기도 하지.”
“뭐 어쨌거나. 넌 우주선을 타고 미드가르드를 떠날 때와 같은 사람이야?”
생각해 볼 문제다.
마침내 대답했다. “음, 당연히 같은 몸은 아니지.”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야.”
“응, 알아. 그러니까, 나는 미드가르드 시절의 미키 반스를 기억하고 그 미키 반스가 자란 집도 기억해. 그의 첫 키스도, 그가 마지막으로 엄마를 본 날도, 이 망할 탐사에 자원한 것도 기억나. 그 모든 것들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인 것처럼 기억이 나. 그렇다고 내가 미키 반스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걸 누가 알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나를 빤히 보았다. 눈을 가늘게 뜬 그녀를 마주 보고 있자니 오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등줄기가 서늘해져 왔다.
“테세우스의 배에 관해 찾아봤어. 너 설명 진짜 못하더라.”
“그래, 알아. 훈련받은 것 중에서 그나마 기억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설명하려고 보니까 깨닫게 되더라고, 내가 전혀 기억 못 하고 있다는 걸.”
“의외라서 놀랍네. 난 그게 네 삶과 너무나 잘 들어맞는 비유라서 거기에 매료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라서 미안.”
“정말 결론을 내기 어려운 난제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대답을 하려다가 고개를 내젓고 물었다. “캣, 정말 이해가 안 가.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내가 왜 하냐면, 네가 미키 반스가 맞는지, 아니면 그의 껍데기를 쓴 다른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그래.”
“말했잖아, 모르겠다고. 젬마가 힘멜 스테이션에서 해 준 이야기도 있고, 나는 미드가르드 시절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 하지만…… 잘 모르겠어. 그게 이 논쟁의 이면이지, 안 그래? 내가 그 시절과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어느 방면으로도 수치화할 만한 차이가 없다는 건 사실이야. 즉, 나로서는 확실히 알아낼 방법이 전혀 없다는 뜻이지.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그래도 네가 미드가르드의 미키 반스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건 아니지?”
“응, 모르겠어.”
캣은 답이 없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정적 속에 앉아 있었다. 더 할 말이 없냐고 물으려는 찰나, 그녀가 말했다.
이 점은 소설 버전에서 조금 더 답하기 어려운 문제처럼 느껴지는데, 영화 버전과 달리 소설에서는 세븐과 에잇의 성격이나 태도 차이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X(구 트위터) 유저가 말했듯이, “<미키 17>에서 숫자별로 성격 다른 거, 그거 기계에서 나온 날짜, 시간 달라서 사주팔자 바뀌어가지고 그런 거라 생각”(원 트윗)하면 너무나 이해가 쉽겠지만… 원작의 저자는 한국인이 아니므로 그걸 의도한 건 아닐 테다. 소설 속에서 세븐과 에잇의 성격이나 태도 면에서 차이가 있다면, 세븐은 가지고 있지만 에잇에게는 없는 지난 6주간의 기억(지난 6주간 세븐이 자신의 기억을 업로드하지 않았기 때문)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 기간 동안 큰 사건이 있었다면 삶의 태도나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 영화 속 미키들이 조금씩 다른 성격을 가진 건, 한 사람에게도 다양한 면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장치인 것 같고(예를 들어 평소에 조용하고 사근사근한 사람도 화가 나면 무서워질 수 있듯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조명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소설에서는 ‘나탈리스트’라는 종교가 등장해서, 이 익스펜더블 또는 복제 인간 문제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한다. 참고로, 마샬은 이 우주선 ‘드라카’의 총사령관인데 영화 버전과 달리 독재자라는 설정은 없다. 물론 비슷하게 불쾌한 사람이긴 하지만.
“저기, 멍청해 보이기는 싫지만, 마샬의 종교랑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설명 좀 해 줄래?” 내가 말했다.
브리는 내 쪽으로 돌아섰다. 표정으로 보아 듀건에게 훨씬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나에게 어딘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는지, 슬슬 성가시게 여기는 눈치였다.
브리가 말했다. “나탈리스트 교회의 주요 교리 중 하나가 하나뿐인 영혼의 신성성을 믿는 거야.”
“아…….”
“백업은 필요 없단 거지. 신체마다 영혼이 하나 있다고 믿어. 신체가 죽으면 영혼도 죽는 거야.” 듀건이 말했다.
“맞아. 그들한테 바이오 프린팅된 신체에 백업된 인격을 심어 만든 존재는 영혼 없는 괴물일 뿐이지.”
“그래, 혐오스러운 존재랄까.”
“완전한 인간이 아닌 거지.”
듀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인간이 아니라고 봐야지.”
내가 끼어들었다. “흠, 그건…….”
브리가 말했다. “알아. 유감스럽게 생각해.”
듀건이 덧붙였다. “그래도 네가 익스펜더블이기는 하지만 아직 죽었다 살아난 적은 없잖아? 그러니까 지금 네 몸은 원래 몸이잖아, 안 그래?”
“뭐, 그렇지. 탐사에 자원한 지 이틀밖에 안 됐어. 백업 같은 건 어떻게 하는지도 아직 몰라. 적어도 지금은 태어난 몸 그대로야.” 내가 말했다.
듀건이 내 어깨를 다독였다. “훌륭해. 계속 그 상태로 있으면 마샬한테 밉보이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정말이지 유익한 조언이었다.
왜 그 조언을 따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영혼’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식물인간들은 신체는 있지만 영혼이 없다고 봐야 하나? 그렇다면 그들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가? 그들이 신체가 있고 영혼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면, 신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을 구분할 수 있나? 신체 없이 영혼만 존재하는 경우를 상정해야 영혼이란 게 신체와 구분되어 따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굳이 신체와 영혼의 문제까지 가지 않아도 사람을 복제하는 일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본인의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명하기에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가 조금 더 이 문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주제 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스포일러는 하지 않겠지만 결말을 보면 그 점이 명확하다). 소설에서는 딱히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는다. 영화에 비해 소설은 그렇게까지 스펙터클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느낌인데, 그렇다고 긴장감이 없거나 지루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소설과 영화의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비슷한 줄거리와 소재를 가지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내고 또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해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과 영화 모두 훌륭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내가 대체적으로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간 각색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봉준호 감독이 진짜 각색을 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원작을 완전히 씹어먹고 자기 식으로 다시 잘 만들었다고 할까(개인적으로 감동적으로 읽은 니콜라 윤의 <The Sun Is Also A Star>를 영화로 만든 <The Sun Is Also A Star(운명의 하루)>(2019)를 봤을 때 내 실망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원작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우주 ‘개척’, ‘정복’, 그리고 원주민들(’크리퍼’)을 몰아내는 일 등의 제국주의 비판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인다. 나샤가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사를 하기도 하고.
소설 원작도 영화판도 모두 좋았지만, 굳이 순서를 정한다면 역시 소설을 읽고 난 후 봉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소설도 아주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소설과 영화의 다른 점을 찾아내는 일도 소소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소설 속 베르토가 영화에서는 티모라는 이름이라든지, 소설 속 캣 첸이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영화 속 카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든지 등등. 영화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로버트 패틴슨!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렛!)도 보는 재미가 있지만, 소설도 나름대로 유머가 있어서 유쾌하다. 둘 다 즐겨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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