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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Brad's Status(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2017) -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by Jaime Chung 201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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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Brad's Status(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2017) -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감독: 마이크 화이트(Mike White)

 

브래드(Brad, 벤 스틸러 분)는 오늘 밤도 생각이 많아 잠들지 못한다.

그는 침대에서 뒤척뒤척하며 자기 친구들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떠올리며 자기와 비교 중이다.

닉(Nick Pascale, 마이크 화이트 분)이라는 한 친구는 건축가로, 그가 디자인한 건물이 한 건축 잡지에 커버 스토리로 실렸고, 다른 친구 크레이그(Craig Fisher, 마이클 쉰 분)는 책도 쓰고 사회적 영향력도 대단한 교수이다.

게다가 제이슨(Jason Hatfield, 루크 윌슨 분)은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와 함께 개인 비행기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며, 또 다른 친구 빌리(Billy Wearslter, 저메인 클레멘트 분)는 벌써 은퇴해 하와이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다.

그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며, 아내 멜라니(Melanie, 제나 피셔 분)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은 얼마나 가격이 나가고, 또 그걸 누구에게 물려 주실까 걱정하는 처지인데 말이다.

옆에서 잘 자던 아내를 깨워 부모님 댁 가격이 얼마나 할까 물어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당신 손자손녀들에게 물려주실 것이고,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단 사실에 너무 슬퍼서 돈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을 테니 이상한 소리 말고 그냥 자라'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순간 브래드는 이제 대학에 진학할 아들 트로이(Troy Sloan, 오스틴 에이브람스 분)의 학비는 대줄 수 있을지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한다. 조만간 아들을 데리고 이 대학, 저 대학 방문해 견학하고 면접 보러 다녀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걱정이 너무 많아 고민인 브래드, 이대로 괜찮을까?

 

자기 인생에 대해 고민 중인 브래드

 

브래드와 달리 걱정이 많지 않은 편인 아내, 멜라니

 

뮤지션이 꿈인 아들, 트로이

 

브래드의 잘나가는 친구들. 왼쪽 빨간 재킷은 교수 크레이그 피셔, 오른쪽의 흰색 양복남은 성공한 비즈니스맨인 제이슨

 

역시나 이미 크게 성공해 벌써 은퇴한 사업가 빌리

 

트로이(왼쪽 녹색 스웨터)와 공연을 관람하는 브래드(오른쪽 검은 양복)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남에게 비교하고, 걱정이 많으며, 게다가 상상력은 또 쓸데없이 좋아서 정말 피곤하게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 2002)>로 처음 알게 된 감독 마이크 화이트의 작품이라서 혼자 친근감을 느끼며 봤다.

이번 작품에도 (<오렌지 카운티>처럼) 대학 입학 이야기가 나와서 '아, 이 감독에게는 대학이라는 것이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인가 보다' 생각했다.

뒤에서도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 사실만 봐도 그의 작품, 그리고 특히 이 작품이 얼마나 '백인-중산층-남성적'인지를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이들이 대학 교육에 그 정도의 중요성을 부여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우리의 주인공 브래드는 조금 위에서 말했듯이 걱정이 많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별로 큰일이 없어도, 작은 일 하나하나에 걱정을 하고 '아, 그러다가 이러이러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고 상상력의 나래를 펼친다. 영화는 브래드가 상상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는데, 그 덕분에 벤 스틸러의 전작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와 비슷하게 겹쳐 보이기도 한다.

브래드는 자기의 그 좋은 상상력을 자기 인생을 괴롭게 하는 데 말고는 쓰는 일이 없는 거 같다. 브래드가 '남들은 이렇게 잘살 거야' 또는 '에이, 알고 보면 걔도 그런 걱정이 있을 거야' 하면서 남의 인생을 제멋대로 상상하거나 '트로이(자기 아들)이 잘될 거야' 또는 '트로이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이런 거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는 조상님 말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트로이가 (브래드 본인이) 그토록 바라던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할 가능성이 조금 보인다 싶으니 바로 '이야, 트로이 잘되겠네' 하고 상상하다가 '어, 근데 저 혼자 잘나서 성공한 줄 알고 제 아비를 우습게 보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이 이상한 곳으로 튄다.

그 즉시, 성공한 뮤지션이 되어 유명 토크쇼에 나온 트로이가 '우리 아버지는 살짝 미쳤다' 하고 낄낄대는 상상을 하는 브래드. 그러고 나니 기분이 안 좋아져서 '어차피 뮤지션이 될 거면 하버드처럼 비싼 교육을 받을 필요 없는 거 아니야?' 하고 뜬금없이 아들을 공격한다.

진짜 걱정도 이 정도면 병 아니냐. 거의 조울증 레벨인 것 같다. '우리 아들 잘되겠네' 하며 흐뭇해다가도 길가에 앉아 버스킹을 하는 한 청년을 보고 '예술가는 성공하기 힘든데 우리 아들도 저런 처지 되는 것 아냐?' 하고 버스킹 청년의 얼굴에 트로이 얼굴을 합성해서 상상하는 모습에는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렇지만 그게 또 현실성이 느껴진단 말이지. 걱정 많은 사람들은 정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면서 온갖 시나리오를 다 쓰니까 말이다. 혼자 천국도 갔다가 지옥도 갔다가 하면서.

 

트로이가 콘서트를 통해 알게 된 아나냐(Ananya, 샤지 라자 역)는 이미 하버드에 재학 중인 선배로, 행정학을 전공하고 있다.

아나냐는 트로이의 아버지 브래드가 비영리 단체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기도 그쪽에 관심이 있고, 논문을 구상 중인데 나중에 도움을 청해도 되겠느냐 묻는다. 물론 브래드는 허락한다.

그는 아나냐와 그 친구 마야(Maya, 루이자 리 분)의 총명함과 명랑함, 젊음에 반해서 이미 자기 친구 빌리가 두 쭉쭉빵빵 미녀와 함께 사는 것처럼, 자기도 아나냐와 마야와 같이 살면 어떨까 상상한다.

아나냐가 젊은 패기로 남들을 돕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말하자 '그렇지만 그건 다 아직 어려서 뭘 몰라 그러는 것'이라 말하며 마음속으로는 '돈을 못 벌어 허덕이게 되면 갑부 비즈니스맨의 무릎에 앉아 호호 웃으며 그에게 홀딱 넘어갈 것'이라고 억측하기도 한다.

이게 다 자기가 자신감이 없으니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려야지만 그나마 자기 기분이 좋아질 수 있어서 그런 거다. 딱히 브래드가 기본 성정이 나쁜 사람, 악한 사람으로 비춰지지는 않지만 아나냐와 마야에 대한 이런 상상은 정말 브래드 본인의 피해 의식에서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기 대학 시절 친구들은 다 돈도 잘 벌고 성공한 것 같은데 자기는 자기 선택에 자신이 없으니 남들이 뭐라든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니까 마음에 꼬인 구석이 없는 아내가 웬만해선 다 좋다 하고 만족하는 걸 보고(일부러 문제를 덮으려고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하는 거 말고, 진짜로 딱히 욕심이 없고 '만족'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아 쉽게 행복해하는 것 말이다) '뭐든 그렇게 쉽게 만족하니 발전이 없어서 내 발목을 잡았다'라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책임 전가를 하는 거겠지만.

멜라니는 브래드처럼 걱정이 과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저 행복할 뿐인데 말이다.

브래드도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다면 자기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자기가 자기 문제에 너무 천착하니까 조그만 것도 크게 보이고, 그러니까 마음이 놀라서 불안해지고 끊임없이 걱정을 하게 된 것뿐이지.

그것을 각본을 쓴 감독 마이크 화이트도 인지하고 있어서, 아나냐의 입을 빌려 '브래드가 생각하는 문제는 너무나 백인-중산층-남성적이고, 한마디로 제1세계 문제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가진 놈들이 더하네'. 그렇게 고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본인이 가진 게 많다는 의미인데 그걸 깨닫지 못하는 브래드에게 아나냐가 직설적으로 말해 줘서 정말 통쾌했다.

세상에는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고,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도 많은데 브래드는 적어도 먹고살 정도는 되지 않나.

자기보다 형편이 좋은 사람과 비교를 하면 끝이 없다. 자기보다 덜 가진 사람,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기의 처지에 감사해야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하지만 브래드처럼 타고나기를 근심이 많은 사람이 갑자기 '아, 근심걱정 모두 버리고 나는 행복하게 살겠어~' 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명상이라든가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상태가 훨씬 좋아질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그런 과정을 다 보여 주기는 어려우니까, 이 영화는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끝을 맺는다.

브래드가 아들과 해변을 묵묵히 걷는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끝내는 것이다. 브래드가 시끄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키려 노력한다는 점이 드러나는 엔딩이라 적절했다.

우리도 이 영화를 본다고 해서 갑자기 걱정을 덜하고 성격으로 변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브래드의 모습을 보며 '아, 저렇게 걱정만 끊임없이 늘어놓는 것은 오히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뿐,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구나' 하고 새삼 깨달을 수는 있다.

왜 어떤 안 좋은 버릇이 있는 사람은 자기 모습을 영상으로 녹화해서 보면 '아니, 내가 저런 더러운/역겨운/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니!' 하며 현실을 인식하고 버릇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들 하지 않나. 이 영화는 그런 효과가 있다.

다만 걱정과 불안이 너무 많아서 이런 비슷한 내용을 보는 것도 트리거(trigger)가 된다 하는 분들은 차라리 피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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