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Another Simple Favor(부탁 하나만 더 들어줘)>(2025)
⚠️ 아래 영화 후기는 <Another Simple Favor(부탁 하나만 더 들어줘)>(2025)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A Simple Favor(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의 후속작. 꽤 성공한 작품의 후속작이라는 데서 이미 예측했을지도 모르지만, 대차게 망했다. IMDB 별점이 5.3점… 내가 여러 번 말했지만, 별점이 6.0점 이하일 경우, 취향을 떠나 그냥 객관적으로 못 만든 영화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근데 이 영화는… 하… 내가 웬만해서는 스포일러 없이 영화를 소개하려고 하고, 별로인 영화는 따로 리뷰를 쓰지 않고 월말 결산에만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는데, 이건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제대로 이야기하는 게 이 팬들에 대한 예의 같다. 그래서 오랜만에 스포일러 주의 문구를 달고 시작해 보겠다.
일단 전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작의 ‘트릭’의 핵심은 스테파니(안나 켄드릭 분)가 거의 우러러 보던, 자기 아들의 절친의 엄마, 에밀리 넬슨(블레이크 라이블리 분)의 정체였다. 에밀리는 사실 쌍둥이(‘페이스’와 ‘호프’)였는데, 호프는 자신의 언니인 ‘페이스’를 죽여서 자기가 죽은 것처럼 속이고 이 죄를 남편 숀(헨리 골딩 분)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자기는 사라져서 다른 곳에서 편하게 살려고 했는데, 스테파니가 이 진실을 다 밝혀 버린 것이다. 그것도 라이브로.
그럼 이번 후속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일단 시간적으로는 전작으로부터 5년이 지났다. 스테파니는 ‘에밀리’가 라이브 방송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그 사건을 가지고 책을 썼고, 북 투어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처음으로 책 낭독회를 가지는 날, 놀랍게도 에밀리가 가석방되어 낭독회에 나타난다. 그러고서는 자기가 결혼을 하는데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열릴 예정이니 와 달라며,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명백한 동의 없이 자신을 바탕으로 해서 책을 썼으니 고소하겠다고 협박한다. 스테파니의 책 에이전트인 비키(알렉스 뉴웰 분)는 이게 책에 관심을 끌어올 좋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에밀리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스테파니는 이탈리아로 향하는데…
이 다음이 진짜 미쳤다. 에밀리가 결혼하게 된 상대는, 에밀리가 젊을 적에 이탈리아에서 바에서 일할 때 만나곤 하던 손님, 단테 베르사노(미켈레 모로네 분)다. 문제는, 결혼식 전에 열린 축하 파티에서 이미 쎄한 느낌이 든다는 것. 베르사노 가는 바르톨로 가와 경쟁하고 있는데, 둘 다 마피아다. 이 결혼식이 열리는 기간에만 일단 휴전하기로 했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마피아와 결혼하다니 에밀리는 여간 강심장이 아니다. 어쨌든 이 축하 파티에 불청객이 있었으니, ‘에밀리’, 그러니까 호프 맥랜든의 어머니 마가렛(엘리자베스 퍼킨스 분)과 이모 린다(앨리슨 제니 분)가 그들이다. 누가 봐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 마가렛은 에밀리를 악마라고 부르고, 축하 파티 분위기는 싸해지고 만다. 이런 엉망진창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단테는 무슨 일이 생기면 에밀리가 자신의 재산을 다 물려받을 수 있도록 혼전 합의서(pre-nup)까지 불태워 버렸는데,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그날 저녁 피로연에서 살해당한다. 단테의 어머니이자 에밀리의 시어머니 되는 포샤(엘레나 소피아 리치 분)는 며느리 에밀리가 돈에 눈이 멀어서 아들을 죽였다고 의심하는데…
줄거리 요약하다가 숨넘어갈 것 같으니 이제 이 영화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이야기하겠다. 여태까지 줄거리를 소개한 건, 그래야 다음 내용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진짜 스포일러는 이제 시작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단테를 죽인 건 에밀리가 아니었다! ‘나 수상해요’ 냄새를 피우던 린다가 주범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린다가 데려온 세쌍둥이 채리티였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그렇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전작에서 우리는 에밀리, 그러니까 사실은 쌍둥이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근데 이 영화는 갑자기 에밀리, 즉 호프가 평범한 두 쌍둥이(twin)가 아니라 세쌍둥이(triplet)이었다는 설정을 들이민다. 마가렛은 세쌍둥이, 페이스와 호프 그리고 ‘채리티’를 낳았는데 린다는 셋째 채리티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데려가 키웠단다. 그리고 여태까지 채리티를 자기가 사기를 치는 데 이용해 먹었다. 단테를 죽인 것도 에밀리인 척한 채리티였고, 숀을 죽였다(내가 이야기 안 했던가? 숀은 샤워하던 도중 이상한 약물을 주입당해 그야말로 온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는 혐의를 받아 가택 연금 당한 스테파니를 찾아가 ‘나를 사랑한다 했잖아’ 어쩌고 하면서 스테파니에게 키스하고 스테파니가 자기를 찌르려고 한 것처럼 손에 일부러 상처를 내 스테파니를 궁지에 몰고 간 것도 채티리였다. 이러니 관객인 나는 얼척이 없을 수밖에 없다. 아니, 전작에서 두 쌍둥이라며! 사실 세쌍둥이였다고? 이렇게 말 바꾸기 있습니까? 나는 이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지능이 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속편 만들기가 어렵기로서니, 그만큼 돈을 많이 버는 할리우드 작가와 감독들이 이렇게 억지를 막 갖다붙여서 얼기설기 땜빵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되는 건가? 1절, 2절, 3절도 아니고 뇌절을 이렇게 한다고? 세쌍둥이요? 아이고 두야.
진짜 환장하겠으니까 더 얘기해 보자. 단테의 죽음 이후, 스테파니를 의심한 포샤는 스테파니를 납치해서 ‘자백약(truth serum)’까지 먹여 가며 심문하다가 스테파니가 단테를 죽이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게 되고, 마피아 일원들에게 ‘그럼 쟤를 죽여라’ 하고 떠나 버린다. 스테파니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누가 와서 이를 구해 줄까? 놀랍게도 에밀리다! 에밀리가 마피아 조직원들을 때려눕히고 스테파니가 이 자백약에 취해 헤롱헤롱하며 ‘나를 사랑해서 나 없이 못 사는구나! 나한테 집착 쩐다 너!’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걸 들어주고 스테파니를 데리고 도망친다! 에밀리가 무술도 배웠다는 거야? 그래서 마피아 조직원들을 막 때려눕혀? 앞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서 내가 이 이야기하는 걸 까먹었는데, 스테파니를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FBI 요원이 파견됐는데, 이 아이린 워커(테일러 오르테가 분)라는 요원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스테파니에게 너무 쉽게 들키고, 나중에 스테파니를 도와줘야 할 때 멍청하게 자기 위치를 노출해서 에밀리인 척한 채리티에게 칼에 찔려 죽는다. 나는 FBI 직원도 아니고 심지어 미국인도 아닌데 FBI를 이렇게 멍청하고 한심하게 묘사하다니 모욕당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내가 저능해지는 기분. ‘지금 장난해?’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여기에서 더 정신이 날아가는 것 같은 반전은 이거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단테를 죽인 건 사실 린다가 시키는 대로 따른 채리티의 짓이었다. 이유? 린다가 단테의 비밀을 알고 협박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이 뭐냐고? 사실 단테는 게이였다! 베르사노 가문의 라이벌인 바르톨로 가문에 마테오(로렌조 드 무어 분)라는 남자가 있는데, 둘은 오랫동안 사귀는 사이였다. 젊을 적에 에밀리가 이탈리아의 바에서 일할 때 단테가 에밀리를 자주 찾아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게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데, 쭉쭉빵빵 핫걸인 에밀리랑 같이 있으면서 춤도 추고 같이 화장실로 사라지는 척하고 뭐 그러면 당연히 다들 단테와 에밀리가 화끈한 사이인 줄 알 테니까. 사실 에밀리는 단테와 마테오의 관계를 알고, 마테오가 자기랑 화장실에서 응큼한 짓을 하도록 유혹하는 척하며, 그가 미리 화장실에 숨어 있던 마테오와 만나게 해 주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했다. 아니, 게이인 두 남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에밀리를 꼭 이렇게까지 얼탱이 없게 ‘위장용 여친(beard)’으로 만들어야만 했나? 린다와 채리티, 이 둘만 가지고서도 이미 이 영화의 멍청함은 최고점을 찍게 됐는데? 이것만으로 부족합니까? 네? 감독님, 말 좀 해 보세요!!
이번 속편은 전편에 비해 ‘노림수’가 유독 강하게 느껴진다. 에밀리(인 척하는 채리티)가 스테파니에게 키스하는 장면도 짧지만 나오고, 채리티가 엄청 ‘크리피’하게 호프, 그러니까 에밀리에게 성적으로 건드렸다는 암시도 나온다. 스테파니가 말로 여러 번 에밀리한테 ‘너 완전 나한테 집착한다’ 말하기도 한다. 이런 퀴어베이팅(queerbaiting) 반갑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아요… 영화를 잘 만들어 놓고 거기에 슬쩍 끼워 넣었으면 영화의 성공에 묻어갈 수나 있지, 이건 영화를 거지같이 만들어 놓고 거기에 퀴어베이팅까지 끼워 넣었으니 영화가 망하는 데 일조한 셈이다. 보아하니 속편 각본에 원작 소설 저자 다시 벨 이름도 없던데. 각본은 제시카 샤저(Jessica Sharzer)와 레이타 칼로그리디스(Laeta Kalogridis)라는 사람 둘이 썼더라. 다시 벨은 ‘이 사람이 쓴 캐릭터들에 기반했다’ 하는 크레디트에만 이름을 올렸고. 원작 작가가 참여를 안 했으니 이렇게 처참한 결과물이 나오지… 내가 다시 벨 본인이었으면 내가 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이렇게 망친 작가랑 감독들 고소했다 정말…
이렇게 울분에 찬 리뷰를 길게 쓸 생각은 사실 없었으나, 원작과 전작 영화를 좋아했던 분들이 이 속편을 보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막기 위해 이럴 수밖에 없었다. 제가 대신 보고 욕을 실컷 했으니 여러분은 안 보셔도 됩니다. 진짜 보지 마세요. 보면 볼수록 내가 저능해지는 기분이 드는 이상한 영화입니다. 아마존 프라임에 있지만 찾아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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