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Bob Trevino Likes It(밥 트레비노 라익스 잇)>(2024)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트레이시 레이몬의 실제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완전히 100% 실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작가 본인이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걸 기반으로 각본을 썼다고 보는 게 맞겠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우리의 주인공은 릴리(바비 페레이라 분)라는 젊은 여성인데, 그녀의 아버지 밥 트레비노(프렌치 스튜어트 분)는 완전히 자기만 아는 나르시시스트다. 딸이랑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는 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도 잘 귀기울여 듣지도 않고 자기가 데이트하는, 또는 데이트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 얘기만 늘어놓는다. 아버지에게 진짜 아버지다운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릴리는 스물다섯 살 성인이 되어도 불안정하고, 자존감은 현관 매트보다 낮을 정도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자기가 데이트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딸 릴리를 데리고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갔는데, 일이 잘 안 풀렸다. 그러자 그는 릴리 때문에 자기 인생이 망했다며, 자기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한다. 전화나 문자를 씹는 것은 물론, 릴리가 울면서 아버지 집에 찾아갔을 땐 아예 문전박대하고 쫓아낸다. 릴리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페이스북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한 계정을 발견한다. 그리고 “혹시 우리 친척일까요?”라며 메시지를 보내는데 놀랍게도 이 밥 트레비노(존 레귀자모 분)는 릴리의 메시지에 일일이 성심성의껏 답장해 주고, 릴리가 올리는 페이스북 포스트에 꼬박꼬박 ‘좋아요'도 눌러 준다(그래서 영화 제목이 “밥 트레비노가 이 글을 좋아합니다(Bob Trevino Likes It)”이다).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는데…
이 영화를 요약하자면, 친부에게 사랑다운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딸이, 아버지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와 우정을 키우며 치유받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너무 뻔한 것 아니냐고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감동 포인트가 아닐까요(감독 인터뷰 참고). 애초에 릴리는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남들을 만족시키려고 애쓰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자기가 만나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실수로 자기에게 보내도 “내 전화번호 지워!”라고 화내기는커녕 “별거 아냐(No prob) :)”라고 괜찮은 척하고,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서 상담자에게 자기 인생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상담가가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왔냐’며 충격을 받을 정도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에게도 사랑받고 싶어서 착한 딸이 되려고 애쓰는 릴리 모습을 보면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런 릴리를 바꾼 것은 밥 트레비노의 친절함, 다정함이다. 그는 자기가 릴리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는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진심으로 릴리에게 다정한 친구가 되어 준다. 그 역시 외로운 사람이었기에 릴리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를 꿰뚫어볼 수 있었던 거다. 그의 아내 지니(레이첼 베이 존스)는 선천적 질환으로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을 내내 안고 있었고, 그래서 밥은 릴리를 제2의 딸로 여기지 않았을까… 의미는 아무래도 좋다. 그가 그냥 낯선 사람, 외로운 사람에게 내내 친절하고 다정했다는 게 너무나 감동적인 것… 이재명 대통령이 예전에 (아마 성남 시장 시절) 쓰던 블로그에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가지의 이유'라는 글이 있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그 글이 떠올랐다.
보통 사람들이 딸을 원한다고 할 때 대는 이유는 ‘딸은 애교가 많고 귀여우니까’, ‘딸은 말썽부리지 않고 사랑스러우니까’ 하는, 어떻게 보면 그 딸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 줄까에 관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글은 아빠가 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딸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100가지나 나열한다. 맞다. 딸에게는 이런 아빠가 필요하다. 릴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친부에게 못 받은 사랑을 아빠랑 이름만 같은 다른 남자, 친척도 아닌 이에게 받는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단 한 명, 자기에게 애정을 주는 이가 있다면 사람은 언제든 치유받을 수 있구나… 이 세상 모든 딸들이 아빠에게 사랑받고 행복하기를… 🥹
울고 싶고 감동받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할 만하다. 특히 딸들에게. 밥 트레비노는 50-60대 남성이고 주인공 릴리가 젊은 여성이라 약간 불쾌한 심리 스릴러로 길을 틀 수도 있었지만, 영화는 다행히도 그러지 않는다. 둘 사이는 진짜로 순수한 호의, 친절, 우정이니까 긴장하지 말고 보셔도 된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시청 가능하다. 아빠가 아닌 ‘아버지 같은 존재(father figure)’를 통해 치유받고 성장하는 릴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감상하시라. 사람은 상대가 비록 인터넷의 낯선 이일지라도, 진심 어린 관심과 친절, 애정을 통해 치유받을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더불어 나도 타인에게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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