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Blink Twice(블링크 트와이스)>(2024)
권력을 남용해 큰 추문을 일으키고 ‘자숙’ 중인 백만장자 슬레이터 킹(채닝 테이텀 분). 그는 매년 큰 파티를 벌이는데, 프리다(나오미 아키에 분)와 그녀의 친구 제스(앨리아 쇼캣 분)는 올해에도 그 파티장에서 서버로 일하게 되었다. 프리다는 작년에 이 파티에서 슬레이터를 만나 이야기를 했었고, 올해엔 좀 더 깊은 관계가 되길 바라고 있다. 서버로 잠시 일하는 척하다가 칵테일 드레스로 바꾸어 입고 파티에 초대된 손님인 척, 파티에 끼어든 프리다와 제스. 슬레이터가 프리다를 알아보고 다가와 말을 건다. 그리고 놀랍게도 프리다와 제스는 슬레이터의 ‘손님’이 되어 그 파티를 즐긴다. 파티가 끝나고, 프리다에게 가 봐야겠다며 인사하고 떠났던 슬레이터가 돌아와 ‘같이 가지 않겠냐’며 자신이 소유한 섬에서 ‘휴가’를 보내자고 제안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배우, 조이 크라비츠(왜 네이버 인물 사전엔 ‘조 크라비츠’로 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가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 현재 IMDB에서 별점 6.5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성적이라고 본다. 초반에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거 같지만 정말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까지 좀 과하게 길다는 느낌을 받아서, 한 10분만 앞부분에서 덜어냈어도 더 심장이 쫄깃한 스릴러가 되었을 것 같다. 근데 중후반은 적당히 편집이 잘되어서 괜찮았다. 진짜 초반만 좀 과하게 뜸들인다는 느낌.
슬레이터가 소유한 섬은 겉으로 보면 최고의 휴양지 같다. 영화 트레일러에도 나오지만, 남자들, 특히 슬레이터는 여자들, 특히 프리다에게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Are you having a good time?)”라고 묻고, 대답하는 쪽은 언제나 “완전 좋은 시간 보내고 있지!(I’m having a great time!)”라고 대답한다. 또한 여러 인물들이 반복해서 “망각은 선물이다(forgetting is a gift)”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럴까?
이 영화의 주제는 기억과 망각이다. 영어 문화권에는 “forgive and forget(용서하고 잊어라)”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 영화는 바로 그 말을 가지고 논다. 자세히 스포일러를 하지는 않겠지만,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초반부터 영화는 슬레이터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언급한다. 정확히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자신이 가진 지위를 이용해, 권력형 성추행이나 뭐 그 비슷한 짓을 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슬레이터는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나 대중에게 용서나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그것도 꽤 진심처럼 들리게. 하지만 슬레이터가 소유한 개인 섬에서는 분명히 뭔가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슬레이터의 ‘패거리’라 할 수 있는 코디(사이먼 렉스 분), 빅(크리스찬 슬레이터 분), 리치(카일 맥라클란 분), 톰(할리 조엘 오스먼트 분), 루카스(르본 호크 분)는 각각 한 명씩 여자를 데리고 이 섬에서 ‘휴가’를 즐기는데 대부분 대마초를 피우고 노는 것뿐이다. 다들 무슨 사이비 종교 신도처럼 똑같은 옷을 입고. 물론 이곳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일이 단순히 대마초 흡연만은 아니다. 뭔가, 더 나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
어쨌거나 만약에 당신이 피해자라면 그 끔찍한 일을 기억하고 트라우마를 평생 가지고 가겠는가? 아니면, 만약에 가능하다면, 완전히 그 일이 없었던 일처럼 잊고 살아가겠는가? 이 영화는 그런 가정을 가지고 만들어진 듯하다. 어떤 마법이나 기술로 자신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트라우마를 잊을 수 있다면 잊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것조차 삶의 경험이고 나를 만드는 일부분이므로 안고 가야 할까? 나는 내가 감히 괴로운 트라우마를 겪은 피해자를 대신해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는 것을 알고, 그러려는 마음도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대체로 ‘과거를 잊고 나아가자’라고 말하고 진짜로 그러기를 바라는 쪽은 대체로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라는 것.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도 똑같은 말을 한다. ‘과거가 뭐가 중요하냐, 미래가 중요하지.’ 과거를 잊겠다는 것은 똑같은 일이 또다시 되풀이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왜? 과거를 잊으면,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잊으면, 누가 뭘 잘못했는지 잊으면.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니까. 처벌을 피할 수 있으니까.
영화 초반에 프리다는 자기 어머니의 말씀이라며, “성공이 최고의 복수다”라고 말한다. 영화 끝에 프리다는 정말로 그렇게 한다. 하지만 최고의 복수는 역시 가해자를 적법하게 처벌하는 게 아닐까. 그러러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정확하게 지목하고 가해자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분명히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망각’한 상태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슬레이터가 일으킨 추문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을 앞에서도 언급했는데, 영화 내에는 제프리 엡스테인이 저지른 끔찍한 성추행을 암시하거나 부분이 많다. 그래서 슬레이터가 한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하는 것.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2004)이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대도, 우리는 다시 똑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라고 질문했다면, 이 영화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잊는 것이 정말로 축복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칼질하고 피 튀기는 장면이 조금 나오긴 한다만, 그래도 잘 만든 스릴러 영화고, 주제 의식도 좋아서 추천할 만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말 결산] 2025년 4월에 본 영화들 (1) | 2025.04.28 |
---|---|
[월말 결산] 2025년 1월에 본 영화들 (0) | 2025.01.29 |
[영화 감상/영화 추천] <It’s What’s Inside(왓츠 인사이드)>(2024) (0) | 2025.01.15 |
[영화 감상/영화 추천] <Wicked Little Letters(X를 담아, 당신에게)>(2023) (3) | 2025.01.08 |
[영화 감상/영화 추천] 2024년 12월에 본 영화 (+ 내가 뽑은 2024년 올해의 영화) (1) | 2024.12.30 |
[영화 감상/영화 추천] <I Capture the Castle(성 안에 갇힌 사랑)>(2003) (3) | 2024.12.27 |
[영화 감상/영화 추천] <Will & Harper(윌 & 하퍼)(2024) (3) | 2024.12.23 |
[영화 감상/영화 추천] <Buy Now! The Shopping Conspiracy(지금 구매하세요: 쇼핑의 음모)>(2024) (5) | 2024.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