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Nightbitch(나이트비치)>(2024)
⚠️ 아래 영화 후기는 영화 <Nightbitch(나이트비치)>(2024)와 레이철 요더의 소설 <나이트비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이철 요더의 소설 <나이트비치>를 바탕으로 한 영화. <Can You Ever Forgive Me?(날 용서해 줄래요?)>(2018)와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2019)의 마리엘 헬러가 감독을 맡았다.
일단 줄거리는 이렇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한 ‘엄마’(에이미 아담스 분)는 ‘남편’(스쿳 맥네이리 분)과의 사이에서 두 살배기 ‘아기’(알리 스노든/에멧 스노든 분)를 키우고 있다. 잘나가던 예술가이던 그녀는 아기를 탁아소에 맡기거나 직장에서 유축기로 젖을 짜는 일 등이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되었다. ‘아기’를 재워야 하는데 ‘아기’는 좀처럼 잠들지 않고, 피로하고 멍한 나날을 보내던 ‘엄마’. 어느 날, 등과 턱 밑 등 예상치도 못한 곳에 털이 자라난 것을 보고 내가 이상한 건가, 폐경 전 증상인가 혼란스러워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등에 혹이 생겨서 째 봤더니 꼬리 같은 털 뭉치가 잔뜩 들어 있었다는 것. 여자는 자신이 개가 되어 간다고 믿게 되는데…
원작 책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의 기본 설정은 ‘여자가 개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주인공도 ‘나이트비치(Nightbitch)’라고 불린다. 하지만 영화는 책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원작 소설의 통렬한 풍자에서 불쾌한 부분을 제거해서 적당히 많은 이들이 받아들일 만하게 만들었다. 물을 타서 이게 술인지 물인지 헷갈릴 정도.
원작에 등장하는 책, <신비한 여인들에 대한 현장 안내서>의 언급이나 중요성은 약간 줄이되, 그 책을 찾아주는 사서 노마(제시카 하퍼 분)와의 유대성을 강조한 것은 좋았다. 이런 게 좋은 각색이지. 하지만 결말을 바꾼 것은 용서가 안 된다. 소설의 핵심은 ‘미국 같은 현대 사회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이러하다’고 풍자하는 데 있었다. 근데 이 영화는 그걸 예쁘게 다듬어서 ‘아 그래도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로 끝이 나게 만들어 버렸다. 좋은 원작을 이상하게 비틀어서 원작이 말하고자 했던 것의 정반대로 가 버린다는 점에서 저넷 월스의 진솔한 회고록 <더 글래스 캐슬>을 감상주의적인 할리우드 영화로 바꾼 <The Glass Castle(더 글래스 캐슬)>(2017)을 연상시켰다. 원작의 포인트를 무시할 거면 도대체 왜 원작의 권리를 사 와서 이렇게 마음대로 바꾸는 걸까?
영화 버전에서는 ‘여자’(’엄마’)가 북 베이비즈에서 만나는 다른 엄마들, 그러니까 영화 속 젠(조이 차오 분) 같은 캐릭터들이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의 친구인 다른 엄마들이고, ‘엄마’라는 캐릭터의 생각을 말하게 하고 그녀의 성공을 축하해 주는 일밖에 안 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젠은 ‘여자’에게 허브를 파는 다단계 마케팅을 했고, 나중에 자신이 엄청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팔아야 하는 물건을 내가 다 샀다며 고백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마지막에 ‘여자’가 자신의 ‘나이트비치’ 삶을 예술로 승화시켜서 자본화하는 데에도 일조한다. ‘여자’의 홍보 전문가가 되어서 말이다. 책을 읽었을 때 ‘여자’가 어떻게 ‘나이트비치’로서의 삶을 받아들일까 궁금했는데 그걸 이제 자기 ‘예술’ 공연으로 만들어서 다른 여자들에게 자신의 야성을 대놓고 보여 주는 결말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솔직히 처음에는 ‘뭐 이런 황당무계한 결말이 다 있어?’ 싶었지만, 이 책에 대한 여러 리뷰를 찾아보니 이해가 됐고, 영화까지 보고 나서는 진짜 딱 이 엔딩 말고 다른 엔딩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는 뭐? 원작에서는 결말이 날 때쯤 ‘여자’는 ‘나이트비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남편에게 애를 보라고 요구하고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그게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라고 여겼던 걸까. 영화에서는 ‘여자’와 ‘남편’은 별거를 선택한다. 그렇게 생긴 시간에 ‘여자’는 다시 예술 프로젝트를 구상해 만들어내기 시작하고, 결국 전시회를 연다. 그 전시회라는 게 물론 원작 소설을 읽은 내가 보기엔 딱히 강렬한 이미지도 아니라서 실망스럽긴 한데, 진짜 화가 나는 부분은 이게 아니다. 영화에서 ‘여자’의 ‘남편’은 ‘여자’의 전시회를 보고 ‘그저 감탄만 나오네(I’m in awe)’라고 한다. ‘여자’는 드디어 ‘여자’ 속에 있었던 예술성을 알아차린 ‘남편’에게 감동받았는지 쪽쪽 키스를 하다가, ‘남편’이 집에 가서 베이비시터랑 바통 터치를 해야 한다고 하자 ‘나도 같이 갈게’ 한다. 다행히 ‘남편’이 ‘아니야, 자기는 자기 친구들이랑 시간 보내’라며 거절하긴 한다. 나는 이게 너무너무 싫었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 시간에 예술 작품을 만들어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 전시회 밤에 남편이 애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니까 자기도 가겠다고? 이걸 남편이 오히려 말려? “장난하지 마!” 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네가 예술가로서의 자격, 재능, 성공을 입증한 날이잖아. 왜 지금까지 네가 전업 주부로서 엄청난 가사와 육아 노동을 한다는 걸 몰랐던 남자에게, 고작 그딴 것에 감동받아서 다시 남미새처럼 굴려는 거야? 사실 이다음이 더 어이가 없다. (옷이 다른 걸로 봐서는 분명히 다른 날인 것 같은) 저녁에, ‘엄마’, ‘남편’, ‘아기’ 셋이 둘러앉아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동물이 된다는 건 분명 이러할 것이다’라며 ‘엄마’가 ‘남편’을 꼭 껴안고 익숙한 온기를 느끼는 장면을 보여 준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장면? ‘엄마’가 집에서 아기를 낳는데, ‘남편’이 뒤에서 ‘엄마’의 호흡을 도와준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결말이야?
내가 뭐 때문에 화가 나는지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다. 다시 정리해서 설명하겠다. 나는 전반적으로 이 영화가 좀 더 넓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원작의 거칠고 원초적이고(영어로 ‘raw’하다고 하는 그거) 불쾌할 수도 있는 요소들을 예쁘게 갈고다듬어서 ‘엄마는 그래도 강인하고 아이를 사랑한다!’ 따위로 바꾸어 버린 게 마음에 안 든다. 비유를 하자면, 마치 뷰티 업계에서 여자들의 소비를 촉진하고자 ‘권한 부여(empowerment)’, 힘 같은 키워드를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 일 같달까. 코르셋을 벗어 던진 여자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좁은 의미에서, 자기네들 제품을 팔아먹기 위한 ‘아름다움’인지가 뻔히 보이는데, 뭐 그 뷰티 기업들 입장에서도 사실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고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필요한 거죠!’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 그나마 팔릴 만한 마케팅을 하는 거지. 이 영화가 하는 게 딱 그 꼴이다. 원작에서 ‘여자’가 자신이 ‘나이트비치’임을 받아들이고 이를 예술 공연으로 만들어서 남들 앞에서 합법적으로 자신의 거친 야성을 보여 준다는 것만큼 진짜 충격적이고 기가 막힌 방법이 어디 있는가. 이게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말랑말랑한 메시지로 바꾸어서 버리는 게 잘한 일인가?
게다가 나는 영화 속 ‘엄마’도 마음에 안 든다. 자기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아니야, 자기, 그러지 마. 자기는 재능이 있어’라고 한 번도 붙잡지 않고 ‘그래 그럼’ 하고 자기를 전업 주부로 주저앉힌 남자의 어디가, 결국 별거를 해서 남편에게 일정 기간 동안 애를 맡겼더니 ‘애가 아직도 나를 어색해하는 거 같아’라는 말을 꺼내며 ‘그러니까 네가 다시 하루 종일 애를 보면 어떨까?’ 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남자의 어디가 사랑스러워서 그런 놈의 애를 또 낳아 주는 거지? ‘엄마’가 다시 엄마가 된다는 게, 딸을 낳는다는 엔딩 자체가 싫은 게 아니다.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 애를 낳았으면 그러려니 했을 거다. 이 모자란 ‘남편’ 놈하고 또 아이를 갖는다는 점이 싫은 거다. 그런 놈한테 왜 애를 낳아 줘요? 그리고 그 엔딩 나오기 직전에 늑대 무리 같은 느낌으로, 서로 보호하고 온기를 나누기 위해 서로 뭉치는 게 가족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그 내레이션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 영화 각색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거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와 현실적인 요구(아기에게서 온 것이든, 사회에서 온 것이든)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긴 시간을 들여 얘기했더니 “그렇지, 어머니는 강인해”라고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는 것 같다는 느낌. 전자는 자녀가 있는 여성들의 진솔한 고민이고 고충이지만 후자는 ‘어머니는 고귀하고 아름답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여성 혐오에 불과하다. 모성을 무조건적으로 칭찬하면서 거의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는 거. 그게 진짜로 여성을 위한 길이겠냐고요.
요약하자면, 원작 소설 <나이트비치>가 4점이라면 영화는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3점 정도다. 결말을 바꾸어 버리니 원작에서 말하려 했던 바가 약해져 버렸다. 원래는 이 영화가 완성되자마자 훌루로 곧장 스트리밍 보내 버리려던 것을, 평이 좋아서 극장에서 개봉했다는데… 그런 평가를 내린 관객 중에 원작을 읽은 사람이 많지 않았나 보다. 나는 원작을 읽자마자 직후에 이걸 봤더니 혈압이 급상승했는데. 모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쾌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용감하게 했더니 그걸 ‘건전’하게 만들다니. 깎이지 않은 거칠고 뾰족한 다이아몬드 원석을 갈고닦다 못해 아예 개성 없고 가치도 없이 그저 반들반들한 조약돌로 바꾸어 버린 셈이다. 제발 이 영화 말고 원작 소설을 보세요. 그게 진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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