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빌리 베이커, <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저자는 마흔 살이 되던 시점, 편집자에게 ‘중년 남성에게 닥친 우정의 위기’를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처음에는 ‘나는 중년이 아니야!’라고 부정하려 했지만, 이 주제에 대해 곱씹어볼 수록 이것이 자신뿐 아니라 많은 중년 남성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가장 마지막으로 면대면으로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절친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다시 우정을 되살리려 하는데…
전반적인 평을 하자면, 이 에세이가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돼 있다는 게 아쉽다. 우정의 위기, 외로움, 고립의 문제가 저자나 그 주변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중년 남성들이 겪고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면, 그걸 단순히 자신은 이렇게 친구들에게 다가갔어요 하는 경험만 보여 줄 게 아니라 어떤 이론적인 해설이랄지 진단이랄지 하는 것도 제공했어야 한다. 우정의 재료가 될 만한 것, 그러니까 가까이 산다든가, 같은 장소에서 자주 만난다든가, 취향을 공유한다든가, 그런 것들을 가진 사람에게 ‘나는 당신에게 호감이 있어요.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라는 솔직한 마음을 두려움 없이 보여 주는 것, 그리고 같이 무언가를 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저자가 경험을 통해 잘 보여 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우리가 잘 아는, 대여섯 명만 거치면 다 아는 사이라고 하는 ‘던바(Dunbar)의 수’(참고)를 인용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특히 외롭다고 느낄까? 나이가 들수록 결혼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친구를 만나는 데 들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하루 24시간 어디에서든, 누구와도 ‘연결’돼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어서? 글쎄, 저자도 지적하듯, 여자들은 전화로 이야기하며 우정을 키워 나가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들의 경험에 대해 자기가 말할 자격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주제를 남성의 우정으로 한정하는데, 그렇다면 문제는 남자들의 상호 소통 방식에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내가 기대한 게 그거였다. 마흔 살, 중년 남자가 친구들과 진짜로 허심탄회하게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지 오래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친구들과 다시 연결되려고 노력한다. 아, 그러면 남자들은 감정 표현을 억제해야 한다고 배워서 진짜로 힘든 일, 괴로운 일이 있어도 친구들과 그걸 나누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외롭다고, 고립돼 있다고 느끼는구나. 그런 생각을 안 하나? 저자 본인은 그런 타입이 아닐 수도 있지만, ‘유독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 여전히 많은 남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 아닌가. ‘일부’ 남자들이 피해자인 척할 때 맨날 꺼내는 레파토리가 늘 ‘남자들이 더 많이 자살로 죽고, 고독사에 더 취약하다(또는 이런 류의 주장)’인 것처럼. 그거야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자살로 실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고(하지만 자살 충동은 여성이 더 자주 느낀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협소하니 고독사할 위험이 높은 거지. 그게 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처리하지 못해서, 기껏해야 분노와 폭력으로만 표현하니까 그런 거 아닌가. 그게 바로 유독한 남성성인데요. 그걸 지적하면서 여기에서 벗어나면 다른 이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게 바람직한 길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가 남자들의 의사소통에 있는 문제점을 아예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남자들이 ‘게에에이’라고 불릴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갈굼은 그러나, 근본적인 결함을 하나 품고 있다. 그 결함은 남성의 정신에 헤아릴 수 없는 해를 입혀온 데다, 기본적으로 유대감을 위한 잠재적 배출구인 춤과 음악을 제거해 버렸다.
그 결함은 〈게에에이〉라는 용어의 사용이다.
그건 자기 감시의 한 형식이자, 어떤 행동이든 친밀하거나 다정하게 느껴지는 수준에 이르면 튀어나오는 어떤 구제 불능의, 안전을 위한 단어다. 정말이지 〈여성스럽게〉 느껴지는 무엇에든 튀어나오는데, 그 목록은 길었다.
그 말은 다른 남성에 대한 로맨틱한 끌림을 묘사하려고 쓰인 건 아니었지만 ─ 물론 분명 용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생각 전체를 모욕했다 ─ 뉴욕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니오브 웨이Niobe Way가 남성들 간의 〈관계의 위기〉라 부른 무언가를 강요하는데 쓰이곤 했다. 우리는 〈여성스러운〉 관계를 형성했다는 이유로 게에에이라 불리는 걸 어찌나 두려워하는지, 일상적인 농담을 위해 친밀감을 희생한다.
이건 어마어마한 단절로, 아마 현대의 남성 유대감과 관련된 문제들의 심장부에서도 한가운데에 놓인 문제일 것이다. 게다가 많은 〈남성적인〉 것들과 달리 유전자 탓을 할 수도 없다. 이건 문화적인 것이고, 학습된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게에에이’라고 불리는 게 왜 모욕이고 갈굼이 되냐면, 게이, 즉 남성 동성애자는 진짜 ‘남자답지’ 못한 존재, 그러니까 여성적이고 따라서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 혐오에 기반을 둔 모욕이다. 이걸 저자는 알겠지만, 본문에선 이렇게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면 정말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지 않나. 이 ‘맨박스’를 이렇게만 얘기하고 넘어간다고? 나는 이게 좀 더 ‘맨박스를 벗어나고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읍시다!’ 하는 내용이 될 줄 알았건만.
내용도 내용인데, 한국어 정발본은 편집이 처참하다. 일단 ‘-ㄹ지’(’할지 말지’에서처럼 추측의 의미가 있는 어미)를 시간의 흐름을 뜻하는 ‘지’와 헷갈려서 틀리게 띄어쓴 게 많다. 예를 들어서 “불렀을 지도”는 “불렀을지도”로 붙여 써야 한다. “될 지”, “쓸 지”, “쓸 지로”도 같은 유형의 실수다. “아무것”은 한 단어이므로(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붙여서 써야 하는데 잘못 띄어 쓴 것도 보았다. 맞춤법을 제대로 써야지요. 그리고 뜻은 대충 알겠는데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들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다들 나를 교대로 갈구느라 생긴 중단도 아주 많았다.” 한국어 화자는 중단이 생긴다고 안 하는데? 나라면 “다들 나를 교대로 갈구느라 자주 멈춰야 했다.”로 문장을 고칠 것 같다. 또한 “인생의 계획들을 그 둘레에다 짰다.”라는 문장도 이상하기 짝이 없다. 문맥을 보자면, 저자가 가는 헬스장의 여성 회원들이 매주 월요일 ‘여자들의 밤’ 모임을 갖는데, 이 모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서 반드시 참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을 해야 한다 하더라도 절대 그 모임에 빠지거나 미루거나 하지 않고, 그걸 바꿀 수 없는 불변의 스케쥴로 딱 정해 놓고서 다른 데에서 그 일을 해야 할 시간을 찾는다는 거다. 나라면 “그 모임을 중심에 놓고 인생의 계획들을 짰다.” 정도로 옮길 것 같다. “홀수 수요일”이라는 표현도 나오는데, 문맥상 2주에 한 번, 매월 첫째와 셋째 주 수요일을 말하는 거다. 그런데 “홀수 수요일”이라는 말만 들으면 수요일의 날짜까지 홀수여야 한다(예를 들어서 11일, 25일처럼)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 이걸 왜 이렇게 옮겼는지 모르겠다.
특히 제일 이해가 안 갔던 부분은 이거다. “아우우우우우. 정말이지 너무들 오랜만이었다.” 여기에서 “아우우우우우”가 뭔지 곧바로 이해하신 분? 미드나 영화 등에서 자주 나오는, 영어 화자들이 뭔가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모습을 봤을 때 내는 소리인데(모르겠다면 이 트랙을 들어 보시라. ‘아 그거!’ 하실 것이다), 이걸 이렇게 써 놓으니 무슨 늑대 울음소리 같다. 나는 이게 뭔 소리인가 하고 원문을 확인해 봤는데 정확히 “Awwwww. It had definitely been too long.”이었다. “Awwwww”는, 그 특유의 높낮이는 무시하고 발음만 굳이 한글로 적자면 “어어어어어”에 가까운데, 이렇게 써도 이해가 안 가는 건 마찬가지다. 차라리 “어머나”라든가 “감동의 물결” 정도로 적당히 바꾸는 게 나았을 거다. “Awwwww”가 책 내에 두 번 나오는데 둘 다 “아우우우우”라고 해 놨다. 아이고 두야… 이렇게 어색한 번역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편집자는 틀린 맞춤법도 안 고치고 이런 어색하고 뜻이 전달 안 되는 발번역 문장들도 안 바꿨으면 도대체 뭘 한 건지?
형편없는 책은 아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아쉬운 점이 여러 있는 책이다. 밀리의 서재 같은 플랫폼을 통해, 또는 도서관을 보는 게 좋겠다. 이와 비슷한 주제로 맥스 디킨스의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가 있는데, 다음엔 이걸 읽어 봐야겠다. 이게 좀 더 내가 기대하는 그런 내용일 듯. 지금 병렬 독서가 주체가 안 되는데 몇 권만 빨리 끝내고 이것도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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