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도영, <교도소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교도관인 저자가 쓴 에세이. 저자는 스무 살에 교도관으로 군 복무를 하고 10여 년이 지나 다시 교도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교도소 안에서 많은 수용자들을 보고 느낀 점도 많을 터.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역시 ‘한 번 쓰레기는 영원히 쓰레기’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받은 감상은 그것이다. ‘아, 한 번 범죄를 저질러서 교도소에 들어갈 정도로 인성이 글러먹은 놈은 교도소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교화할 수가 없구나.’
저자는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고백합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 솔직히 저는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의 직업은 수용자들과 소통하여 인간적인 감정을 이끌어내 그들을 사회로 되돌려 보내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그들과 공감과 경청을 수반한 유대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공감과 경청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교도관으로서 적어 내려간 직장 생활 생존기에 가깝습니다.
본문에서도 한 번 더 언급되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이 유명한 격언은 보통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회신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뮤지컬 팬들은 아시겠지만, 뮤지컬 <쓰릴 미>의 바탕이 되는 실화 사건, 그러니까 네이선 레오폴드와 리처드 롭이 14세 소년을 유괴해 살해한 사건에서 클래런스 대로우 검사가 이 말을 인용하며 그들을 변호하기도 했다(참고). 하지만 난 이 말만큼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얼핏 보면 기독교가 강조하는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죄를, 어떻게, 그 죄를 지은 인간으로부터 떼어내서 생각할 수가 있나? 나는 죄를 짓고 싶지 않았는데, 예컨대 누구를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내 옆에 있던 식칼이 나에게 ‘쟤를 죽여’라고 나를 유혹해서, 내가 결국 그 유혹에 빠져서 누구를 죽이게 된다는 말인가? 식칼이 나를 보고 쟤를 죽이라고 시켰다고요? 이게 조리에 닿는 말처럼 들린다면 그 사람은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있는 거다.
나는 이 격언이 기독교 정신보다는 변호사들의 말장난에 더욱 가깝다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샤가 자기 남편 안토니오를 구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가 이것과 비슷하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포샤는 (남자) 변호사로 변장해서 샤일록에게 이런 논리를 댄다. ‘보증 계약서에 쓴 것처럼,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베어가도 좋다. 하지만,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살을 베는데 피를 안 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라. 내가 만약에 달고 맛있는 수박 한 통을 당신에게 주면서 “이걸 마음대로 잘라서 드세요. 하지만 과즙은 한 방울도 흘리시면 안 돼요. 만약에 한 방울이라도 흘리시면 제가 이 수박으로 당신 머리통을 깨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당신은 ‘뭐 이런 미친 🤬이 다 있어?’라고 하실 것이다. 포샤와 이 격언의 논리가 딱 이런 식이다. 가슴살과 피, 수박과 과즙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죄와 죄인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걸 마치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려니 괴로울 수밖에 없는 거다. 죄를 저지른 책임은 전적으로 죄인에게 있다.
물론, 우리가 죄인을 모두 다 잡아들여 완전히 진공 상태에 격리시켜 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죄의 질과 경중에 따라 용서와 보상의 가능성도 달라진다.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작은 죄면 용서할 수도 있고, 살인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따르는 죄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금전적으로 보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죄인들을 교화시켜 다시 사회로 내보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점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단 죄에 따른 법적 판단이 대체로 가볍다고 여기는 듯하다. 나도 마찬가지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데 솜방망이 처벌만 하고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다든가, 아예 집행 유예를 주는 경우도 많이 봤다. 어느 포털 사이트를 가든 뉴스란에서 검색해 보시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아, 이건 처벌이 약한데’ 싶은 경우를 여럿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범죄자라는 것들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교도소에서 자기 인권이 침해되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해싸는 것이다. 이 책에도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언급된다. 한번은 수용자들이 옆 사람과 수군대거나 의미 없는 소리를 지르길래, 참다 못한 저자가 교도관의 권한으로 “조용히 하세요!”라고 정숙을 주문했다. 그랬더니 그 수용자는 외려 ‘왜 큰 소리를 내냐’며 소리를 질렀다. 옆에 있던 선배와 팀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얼마 후 그 수용자는 저자를 인권위원회에 신고했다고 한다. 눈을 부라리며 자기에게 소리쳤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저자는 정말로 일주일 후 인권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게 자기 죄를 뉘우치고 교화되는 수용자의 모습처럼 보이는지?
“선배. 근데 너무 아이러니 아니에요? 타인의 인권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명까지 앗아간 사람들이 자신의 인권을 침해당한다고 이렇게까지 한다는 게?” 난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애꿏은 담당실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간혹 타인의 목숨까지 앗아간 사람들이 본인의 옅은 타박상에는 바닥을 구르며 죽는시늉을 할 땐 그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솟았다. “도 닦는다고 생각해… 사리가 나올 정도로. 안 그러면 네 마음만 더 힘들어져.” 선배는 체념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도 말이야. 이곳에서 정말 변화돼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어.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희망을 아예 버릴 순 없어.” 사실 당시에는 선배의 말이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었다.
갱생은 정말로 가능한가. 저자는 요즘 교도소에서도 ‘갱생’이라는 말은 안 쓰고 ‘교화’라고 한다고 하던데, 어떤 표현으로 그것을 부르든 간에, 진짜로 죄를 지은 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한가. 책을 읽어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다. 갱생을 믿는 건 김갑환 씨(격투 게임 시리즈 <더 킹 오브 파이터즈>에 등장하는 인물로, 범죄자 출신 격투가 최번개와 장거한을 ‘갱생’시키려는 정의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뿐이다. 물론 교도관들은 이들을 보기 싫어도 매일 봐야 하는 분들이니 본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교화가 가능하다고, 그런 경우가 정말 있다고 믿어야 할 것이다. 그게 환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범죄자들의 교화니 인권이니 하는 걸 믿고 신경 쓰기보다는, 그들을 접하며 고통받아야 하는 교도관들의 정신 건강과 인권부터 챙겨야 하는 게 아닐지. 괴롭고 힘들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사회에 기여하는 이 일을 하시는 교도관분들이 필요한 지원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 무척 깊거나 자세한 통계 등을 보여 주는 전문적인 책은 아니고 개인적인 에세이지만, 그래도 대략 교도관이 매일 겪는 현실에 대한 감을 잡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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