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reasure(트레져)>(2024)
호주 소설가 릴리 브렛의 소설 <Too Many Men>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이 소설은 또한 저자의 삶에 어느 정도 기반한다. 릴리 브렛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기 때문이다. 브렛은 독일 출생으로 1948년에 부모님과 함께 호주 빅토리아 주 멜버른으로 이주했다. 부모님의 트라우마를 곁에서 보고 자란 홀로코스 생존자 2세대로서, 이런 경험을 담은 소설을 여러 권 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Too Many Men>이다. 따라서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어느 정도 실화에 기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1991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시작한다. 43세의 딸 루스(레나 던햄 분)가 81세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아버지 에덱(스티븐 프라이 분)과 함께 폴란드를 여행한다. 루스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서 폴란드, 그중에서도 특히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기로 했고, 에덱은 루스가 혼자 폴란드를 여행하다가 큰일이 날까 봐 루스의 여행에 동참한다. 나중에 에덱이 말해 주듯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시 자기 집을 찾아왔던 유대인들이 폭력과 반유대주의적 정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그중 가장 큰 사건이 1946년 켈체라는 폴란드의 도시에서 일어난 ‘켈체 학살(Kielce Pogrom)’이다. 유대인들이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거짓 혐의로 총 42명이 학살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페디아를 참고).
루스와 에덱은 상극인 것처럼 보인다. 루스는 전남편 가스와 이혼한 후 홀로 지내고 있고, 에덱도 아내(그러니까 루스의 엄마)가 죽은 후 홀로 지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루스보다는 훨씬 유쾌하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린다. 스테판과 친구가 된 것은 물론이요, 에덱은 조피아(이와나 비엘스카 분)와 카롤리나(마리아 마모나 분)라는 중년의 폴란드-영어 통역사들과 썸씽(!)을 타기도 한다.
또한 루스는 폴란드 여행 일정을 꼼꼼하게 세워 놨는데 에덱은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바르샤바에 도착한 루스가 화장실에 가야 해서 에덱에게 여기에서 딱 기다리라고 했더니 그는 그 사이에 공항 건물을 나와 택시 타는 곳에서 택시 기사 스테판(즈비그니브 자마코브스키 분)과 벌써 절친이 되어 있다. 루스가 가고 싶어 하는 곳에 에덱은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일부러 훼방을 놓는 것처럼 보인다. 루스는 우치(Lodz, 폴란드 제4의 도시)에 가려고 하는데 에덱은 스테판에게 바르샤바 게토로 가 달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어딘가에 도착하긴 했는데 스테판 말로는 에덱이 찾던 곳은 이미 독일군이 파괴해 버렸단다. 비스툴라 강(폴란드에서 가장 긴 강)의 이쪽 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다음 날 루스는 에덱과 에덱이 살던 집에 간다. 당연히 다른 가족이 그곳에 살고 있었는데 에덱이 폴란드어로 말을 걸어 잠시 집 안을 둘러보게 된다. 그곳에 살던 울리치 씨(웨난티 노술 분)는 자신이 이곳에 입주했을 때 집은 텅 비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말과는 달리 에덱은 가족이 쓰던 소파, 자신의 어머니가 쓰던 은 그릇이나 찻잔과 주전자 세트 등을 발견한다. 여러 감정이 뒤섞여 평정을 잃은 그는 집을 나와 버리고, 루스는 ‘아빠네 가족이 집을 나와버리자마자 저 사람들이 여기를 차지한 게 틀림없다’며 화를 낸다. 나라도 화났을 듯… 극 중 배경이 1991년이니까 따지고 보면 몇십 년이 지난 후에 원래 집 주인이 찾아와서 ‘그거 우리 가족이 쓰던 건데!’ 한 셈이긴 하지만.
그다음 날, 루스는 에덱을 데려가지 않고 혼자, 호텔에서 영어 좀 한다는 직원 타데우스(토마스 월로소크 분)를 데리고 다시 아버지네 가족이 살던 집으로 간다. 거기에서 아버지가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어머니가 쓰던 은 그릇과 찻잔, 주전자 세트 등을 (형편없이 비싼 값을 주고) 사 온다. 심지어 아버지의 아버지, 즉 루스의 할아버지가 입던 코트까지. 울리치 씨는 루스의 할아버지 이름이 ‘이스라엘 로스왁스(Israel Rothwax)’였다고, 코트에 새겨진 이니셜을 보고 말해 준다. 자신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 루스는 당연히 그걸 사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드디어 나와 이어진 존재들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어찌 기쁘고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
이 영화를 위해서 스티븐 프라이는 폴란드어를 배웠다고 한다. 극 중 에덱이 하는 영어도 폴란드 액센트가 섞여 있다. 여담이지만 스티븐 프라이는 이 역할을 하기 위해 폴란드 배우에게서 폴란드어를 배웠는데, 넷플릭스에서 폴란드 드라마들도 찾아서 봤다고. 내가 폴란드어는 전혀 모르니 스티븐 프라이의 폴란드어 발음이 어떤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영어로 하는 연기는 정말 최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티븐 프라이인 걸!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루스와 에덱의 부녀 관계에도 조금씩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도 좋았다. 루스가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되는 것도, 에덱이 가슴속에 묻고 직면하지 않으려고 하던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결국 눈물 흘리는 것도, 이 여행으로 인해 루스와 에덱이 서로 사랑하는 가족임을 깨닫는 것도 너무너무 좋았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이용 가능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길. 원작 소설 작가 릴리 브렛의 경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이 기사를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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