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브라이언 무어,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주디스 헌이라는 40대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 1955년에 첫 출간되었을 당시 제목은 <주디스 헌>이었으나, 이 소설이 1987년에 매기 스미스를 주연으로 하여 영화화되면서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The Lonely Passion of Judith Hearne)>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 이후로 원작 소설도 영화를 따라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으로 출판된 듯하다. 국내에도 그렇게 들어왔고.
이 소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민음사TV 팬이라면 기억할, 낮술 낭독회 영상에서 정기현 편집자가 낭독한 그 작품이다. 40대의 (요즘에는 이런 말을 잘 안 쓰지만) 노처녀 주디스 헌은 거의 평생 이모의 병간호를 해 왔다. 이모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가 된 주디스는 하숙집을 전전하는데, 이번 하숙집에서는 나름대로 자기와 ‘썸’을 탄다고 느끼는 남자가 있다. 이름은 제임스 매든, 하숙집의 주인인 라이스 부인의 오빠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오래전에 미국에 가서 일하다가 귀국했다. 주디스가 보기에 매든 씨는 돈도 있는 것 같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젊은 시절을 이모 뒷바라지만 하다가 이제는 다 시들었는데,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라니? 이 남자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인가 보다 싶어 그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려 애쓰지만 사실 매든 씨는… (더 보기)
줄거리 소개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쯤 해 두자. 책에 대한 감상을 풀자면, 이만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 같은 이야기는 참 오랜만이다. 주디스 헌의 일생이 혐오스럽다는 게 아니라, 마츠코나 주디스나, 딱히 본인 잘못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안타까운 상황(주디스의 경우 이모가 병을 오래 앓았는데 이모를 돌보아 줄 다른 사람도 없음)에 처했고, 또 거기에서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뜻이다. 이모가 아픈 것은 주디스의 잘못이나 책임은 아니지만, 이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신 것은 주디스의 결정이다. 이모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도 이모가 요양원에 가기 싫다고 하니까 마음이 모질지 못한 주디스가 이모를 죽을 때까지 (이모는 그러고도 5년을 더 살았다) 보살핀 건, 자기 결정이니까 자기가 책임져야지. 이모 성질이 보통이 아닌 건 자기도 알았으면서. 자기 삶을 생각해서 단호하게 끊어냈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어… 착하다는 말이 요즘 남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진짜 착한 건 남에게 휘둘려서 해 달라는 걸 다 해주는 게 아니지요… 게다가 술독에 빠진 것은 전적으로 주디스의 책임이다.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누가 주디스에게 몰래 술을 먹여서 중독시킨 것도 아니고, 자기가 찾아서 마신 거니까 자기 잘못이지… 술 좀 작작 마셔요 주디스…
주디스 같은 유형의 인물을 뭐라고 해야 할까. ‘공감성 수치’라고 해야 하나,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것)’라고 해야 하나. 이것은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것 같지만, 나는 공감성 수치를 느끼는 쪽이었다. 주디스에게는 결혼해서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친구가 있는데, 그게 오언 오닐 교수다. 오닐 교수는 모이라라는 여자랑 결혼해서 딸과 아들을 두었다. 주디스는 이 그림으로 그린 듯한 완벽한 가정을 부러워한다. 오언이 자기를 위해 나서 주는 망상에 빠진 주디스를 보시라.
오닐 교수가 응접실에 들어섰다. 오닐 교수의 단안경이 불빛을 반사하며 흐릿하게 반짝였다. “안녕, 주디. 잘 지냈어?” “안녕, 오언, 나야 잘 있지. 잘 지냈지?” 오언 오닐, 기품 있어 보이는 남자. 분명 오언은 곧장 매든 씨를 찾아가 눈을 부릅뜨며 따져 물을 거야.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선생님. 주디는 제 소중한 친구입니다. 어떻게 감히 제 친구한테 그런 말로 상처를 줄 수 있죠? 수많은 남자가 주디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했을 겁니다. 게다가 천사 같은 주디는 아픈 이모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에요.” 아, 오언, 오언. 어떻게 모이라 같은 여자가 널 채 갔을까. 모이라는, 저 여자는 잘 몰라.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속물인지 말이야. 모이라, 난 당신이 싫어. 한 번도 좋아한 적 없어. 내가 얼마나 당신한테 내 속마음을 까발리고 싶은지 알려나.
같은 하숙집에 사는 매든 씨에 대해 망상하는 부분도 웃기고 수치스럽다. 결혼한 부부처럼 망상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자기 망상 속에서도 남편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걸 상상하냐고요! 그건 행복한 상상도 아니잖아… 주디스 자존감 무슨 일이야…
하지만 큰 트렁크를 열어 침대 위에 온갖 꾸러미를 늘어놓은 주디스는 말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두 손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머릿속은 아침에 있었던 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매든 씨는 그녀와의 대화를 진심으로 즐거워했었다. 게다가 매우 건장하고 진중해서 남자다워 보이기도 했다. 특히 근엄한 모습으로 식탁을 탁 내리쳤을 때. 묘한 미국인 억양을 지닌,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 호텔에서의 일과를 끝낸 매든 씨가 밤늦게 피곤한 기색으로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 둔다. 매든 씨는 잠옷 가운을 입고 안락의자에 앉고, 주디스는 다소곳이 다가가 그의 무릎에 걸터앉는다. 매든 씨는 사랑하는 아내 주디스에게 그날 하루가 어땠는지 얘기한다. 그리고 다정하게 입을 맞춘다. 아니면 이럴지도. 주디스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에 분노한 매든 씨가 커다란 주먹으로 주디스를 후려친다. 주디스는 다리를 비틀거리며 그 짐승에게 다가간다. 곧 매든 씨는 깊이 뉘우치며 주디스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주디스 헌,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당장 집어치워. 애틋하게 연애하는 상상은 너한테 다가오는 남자들하고나 하라고.
주디스와 매든 씨가 영화를 보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장면은 웃겼다. 이런 걸 동상이몽이라고 하지요… (참고로 망상 속에 삼손과 델릴라 이야기가 나오는 건, 둘이 현재 보고 있는 영화가 그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둠을 틈타 안경을 코에 살짝 걸친 주디스는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오는 삼손 매든을 바라본다. 힘차게 솟은 이두박근의 당당한 굴곡과 입가에 번지는 섬광처럼 하얀 미소가 사방을 환하게 밝힌다. 델릴라가 등장한다. 삼손을 파멸시킬 여자, 저항할 수 없는 미녀. 이제 삼손의 눈이 멀고, 바퀴에 묶인 그의 몸은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여자의 변덕이 그의 강인함과 위대한 힘을 모조리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아, 모든 여자는 약점이 있는 법, 요부 델릴라는 자기가 벌인 짓에 괴로워한다. 분노에 찬 삼손은 델릴라를 붙잡은 뒤 온몸을 꽁꽁 묶은 사슬을 끊고 적들에게 복수하러 나아간다. 삼손은 여전히 델릴라를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이제 델릴라는 사랑과 그리움을 가득 담은 채 다곤 신전으로 향한다. 야유하는 사람들 틈에서 델릴라는 둘만의 비밀 놀이라는 핑계로 삼손을 거대한 기둥으로 이끈다. 삼손은 사랑하는 여인, 델릴라 헌 양에게 위험하니 제발 떠나 달라고 애원한다. 델릴라 헌은 삼손 매든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떠나지 않는다. 델릴라 헌은 어둠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삼손은 매든의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마지막 장관을 펼친다.
그녀의 곁에 앉은 매든 씨는 대추 젤리를 먹으며 캘리포니아를 떠올렸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줄거리는 괜찮았지만, 영화에 담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사자만큼은 정말 굉장해 보였다. 그는 누군가 들려준 빅터 머추어에 관한 얘기를 기억하려 애썼다. 머추어는 영화계에 뛰어들기 전에 텐트에서 살았댔지. 그리고 영화계에서 집요하게 버텼어. 그에겐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영화였으니까. 오늘 밤에는 헌 양에게 물어볼 거야. 난 마음을 굳혔어. 영화가 끝나면…… 아니, 잠깐만. 삼손이 힘을 되찾고 있잖아. 쇠사슬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다니. 세상에, 저것 좀 봐! 엑스트라가 수천 명이잖아. 여자 손에 이끌린 눈먼 삼손이 신전 기둥을 향해 걸어가고. 블레셋 군중들이 야유를 보내고. 장님이라니. 주디스는 생각했다. 친구라곤 한 명도 없는 장님. 정말 끔찍해. 하지만 삼손한텐 여자가 있잖아. 연인이자 안내자인 여자가.
주디스의 망상과 자기 비난과,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나를 이렇게 살게 놔두다니) 정말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신학적인 분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나는 이게 새드 엔딩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게 신선했다. 작가는 주디스의 삶에 대해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는 듯하다. 주디스 같은 인물이 있다면 (역시나 위에서 언급한 민음사TV 낮술 낭독회 영상에서처럼) ‘주디스를 꼭 안아 주고 싶다’ 파와 ‘난 절대 만나기 싫은데’ 파로 의견이 갈릴 듯하다. 결말을 낸 걸 보면 작가는 그래도 전자가 아닐까. 주디스가 자기 혐오에 사로잡혀 이런저런 짓을 해도 어쨌든 주위 사람들이 나름대로 주디스를 도와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그러면서도 억지스러운 감동 결말이 아닌 게 좋았다. 또는 다른 시각으로 보면, 주디스가 ‘사고’를 치고 나서 그냥 거기에서 결말을 내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그 후에도 인생이 길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이 소설을 단순히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캐릭터 연구로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드라마틱하게 끝을 낸다면 그것으로 이미 주디스에 대한 판단이 될 수도 있었는데(’거봐, 이런 사람은 결국 이렇게 파멸한다니까’) 그러지 않았다는 게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야 같달까. 아니면 이걸 좀 더 ‘사실주의’적인 접근이라도 봐도 좋을 것 같다. 인생은 그렇게 딱 극적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인생은 지난하게 계속된다…
주디스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주디스를 민폐 캐릭터, 공감성 수치를 불러오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면 읽는 내내 괴로울 것이고, 주디스에 공감하거나 연민을 느낀다면 그 감상은 또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나는 공감성 수치 반, 연민 반이었다. 영화도 보고 싶다. 주디스 헌 역에 매기 스미스라니, 40대 노처녀 캐릭터치고 좀 과하게 예쁘고 우아한 상(相) 아닌가… 영화를 보게 되면 리뷰도 써야지. 일단 소설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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