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사치 코울,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없겠지만>
인도계 캐나다인 저널리스트 사치 코울의 에세이. 그는 인도계 이민 2세대이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합쳐서 두 배의 마이너함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의 글에서 이런 정체성을 언급하지 않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민해 온 부모님께 두려움을 상속받았다고 말한다. 이민자들은 아무래도 안정된 삶을 추구해 다른 나라로 온 사람들이니 자녀들도 그런 경향을 물려받는 것이 이상하진 않지만, 문제는 그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 쪽 할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언제든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국 그 할머니도 저자가 20대 초반일 때 운명을 달리하셨다. 저자의 어머니는 두 부모님을 고작 11개월 사이에 모두 잃었고, 그로 인해 “그녀의 히스테리 저변에 깔린 공포심”이 생겼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비행기를 타는 것, 지하철 타는 것, 복잡한 교차로를 건너가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을 다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이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맛보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독감에 걸리는 것을 어떻게든 피해보라고 했다. 누가 나를 언제 어떻게 죽일지 아무도 모르니까! 내가 사는 도시에 눈이 온다는 예보를 들으면 엄마는 공포에 질려서 내게 ‘충분한 음식과 양말’이 있는지 확인하는 문자를 보냈다. 이웃 도시가 정전이 되면 내게 전화했다. 어릴 적 내가 기침을 하면 엄마는 국물 요리와 쭈쭈바로 나를 달랬다. 응급실이나 수혈 같은 말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원래 감기는 그녀에게 걱정거리 축에도 못 끼는 병이었다. 별것도 아니던 감기가 결국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죽게 만든 별것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이제는 멀리 사는 내가 살짝이라도 아픈 내색을 하면 당장 나보고 병원에 같이 가자며, 비행기를 네 시간 타고 집으로 날아오라고 한다. 너무 번거롭지 않느냐고? 좋아, 그렇게 말한다면 엄마는 기꺼이 내게 날아올 것이다. 두 손에 뜨끈한 국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말이다.
저자는 스물두 살 때 일주일 동안 에콰도르를 여행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 밤, 아버지는 저자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네가 가려는 나라를 선택한 합당한 근거가 무어냐. 나에게 일종의 앙갚음을 하고 있는 것이냐. 네가 가 있는 동안 내가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샐 것을 너도 알겠지. 네 오빠는 이렇게 동떨어진 외국은 가본 적이 없는데. 내가 너한테 무엇을 잘못했는지. 네가 고등학교 교육을 마칠 때까지 나는 네가 바라는 대로 다 해줬다고 생각한다. 네가 머물기로 한 호스텔은 안전한 곳인지. 공용 화장실을 쓰는지. 그 밖에 어느 곳들을 다닐 것인지. 네가 떠나 있는 동안 내겐 몇 날 밤을 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걸 안다. 내 주변에 이런 애들이 없었는데. 너는 왜, 왜.
너의 수호신에게 하늘의 힘이 있길. 할 말이 없구나. 너랑 같이 가는 사람은 누구인지. 요즘 들어 왜 한참 동안 집에 오지 않았는지. 그런 곳에 가기엔 앞으로 네 인생은 너무 창창한데.
저자가 무사히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고서도 그는 대화를 거부하다가 드디어 다시 말할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서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에콰도르엔 뭐가 있더냐?” 저자가 대답했다. “화산이랑 영어 못하는 사람들이요. 그게 다던데요.”
저자와 아버지와의 이런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저자가 아버지와 나눈 이메일이 각 장 사이사이에 ‘쿠키 영상’처럼 들어가 있는데, 다음은 그중 하나다.
Papa papa@gmail, November 31, 2012
네가 늑대 무리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너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것처럼 구는구나.
Scaachi sk@gmail.com, November 31, 2012
아빠, 내 생일이 언제일까요?
Papa papa@gmail, November 31, 2012
내가 왜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냐.
참고로 원서에는 날짜가 2012년 11월 30일로 되어 있는데 번역본에는 31일로 되어 있다. 캐나다와 한국의 시차를 고려한 것인가 생각했으나, 다른 이메일들 모음은 원서랑 날짜가 똑같았다. 이것만 실수인가 보다. 아니, 애초에 11월은 30일까지밖에 없다고요! 31일일 수가 없잖아!
저자가 사촌 스위투의 결혼식을 위해 인도에 갔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에는 인도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남존여비 사상을 지적한다. 신랑은 딱히 할 일이 없는데 신부는 몸단장으로 바쁘고, 그 와중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인도 결혼식에 참석하면, 인도 안에서든 외국에서든 내내 남성과 여성에게 기대하는 수준이 달라서 느껴지는 불평등에 맹렬히 얻어맞는다. 아빠와 오빠는 결혼식 어느 행사에서도 전통 의상을 입어야 할 필요가 없다. 대신 대체로 그들은 운동할 때 입는 재킷이나 폴로셔츠, 아니면 티셔츠나 걸쳐 입는다. 그들은 먹고 마시는 데서도 자유롭다. 스위투의 머리 주변에서 경전을 암송하는 의식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의 몸은 논의의 대상이었던 적도 없다. 내 몸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 나는 이 사실에 가장 분노했다.
나는 테라스에 있던 아빠한테 다가갔다. 아빠는 나와 비밀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닭고기를 먹어 보라고 했다.
”왜 남자들한테는 술을 주죠?” 아빠에게 물었다. “여자들은 바보 같은 옷을 입고 아래층에서 구질구질한 것들만 보면서 사이다랑 환타나 마시고 있는데 말이죠.”
”원래 그런 거니까 그렇다.”
”참 가부장제스러운 헛소리네요.” 나는 입에 치킨을 한가득 물고 튀김옷 덩어리를 입 밖으로 발사하면서 말했다.”참 위선적이에요. 페미니즘 관점에서 최악이군요.”
”네가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면 그렇게 여기렴.” ”하지만 아빠도 한몫 거들고 계시잖아요.”
”아, 그렇지.” 계속 마시면 은근 취하는 달짝지근한 술을 비우며 아빠가 말했다. “그래서 우짤낀데?”
인도에서든 캐나다에서든 여성의 모든 것은 조롱거리가 된다. 스위투는 자립심 있는 여성이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그래왔다. 하지만 이 결혼에서 스위투는 여성을 인간으로 대한다고 보기 힘든 풍습과 전통, 그러니까 으레 그래왔기에 대물림되는 하나하나를 견뎌야 했다. 스위투는 손질해서 구워질 고깃덩어리같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만 줘도 되는 신부가 아니었다. 두개골에 화려한 기계장치 같은 어마어마한 장식들을 매달고 이런저런 의무를 다 해내야 했다. 그동안, 스위투는 자기 욕망과 바람을 그 어디에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불평하지도 뭘 부탁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건 인도 여자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결혼식에 가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그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학습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지내며, 불평하지 말고, 울되 소리 지르며 울지 말고, 연장자들에게 마실 차를 내어주고, 차분하게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라.
이 결혼식은 또한 저자가 자신의 ‘(인도인치고) 하얀 피부’가 일종의 권력임을 상기하게 되는 경험이기도 한다(저자의 위키페디아에 딸린 프로파일 사진을 보시라). 저자는 카슈미르 지역 출신인 아버지와 피부색이 밝은 편인 어머니를 통해 갈색보다는 “누런색”에 가까운 피부를 물려받았지만, 오빠의 딸, 그러니까 자신의 조카에 비하면 어둡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저자가 ‘건포도’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 조카는 역시 인도인치고 밝은 피부의 오빠와 백인 올케로부터 백인의 흰 피부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눈도 하늘색이다. 저자는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게 분명한 건포도를 보고 셰이디즘(shadism, 같은 인종 내에서의 피부 톤에 기반한 차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공항 근처에서 돈을 구걸하는 여자들의 피부색이 모두 짙다는 사실을 모르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은행원 중에서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은 없다.” 저자는 추측한다. “계급적 차이가 먼저인지, 셰이디즘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둘은 분명 불가분의 관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인도인들은 타고난 피부색을 넘어서는 수준의 흰 피부에 집착한다. 인도인들, 특히나 여자들은 피부가 조금이라도 더 하얘 보이길 바란다.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를 찾으러 낸 구인 광고에서 자녀의 소득과 키 옆에 ‘연한 갈색’ 피부색을 자랑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언티[auntie, 이모/고모]들은 내가 얼마나 우리 엄마를 많이 닮았나 애기한다. 이건 그저 우리 엄마가 예뻐서라기보다는, 엄마가 가족 중에서 피부색이 가장 하얘서 그런 것이다. 고모는 이번 여행에서 나보다 일주일 먼저 인도에 온 앤[저자의 올케]의 팔을 문질러대면서 “그 하얀 피부 좀 내게 옮겨다오”라고 했다고 한다. 고모는 항상 그랬다. 그 누구보다 자신과 자식들의 미백에 신경 썼다. (…)
“밝고, 맑고, 자신 있게[Fair and Lovely]”는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유명한 피부 미백 화장품 브랜드다. 볼품없던 여자가 화학물질 가득한 이 화장품을 얼굴에 떡칠한 후, 피부가 허옇게 동동 뜬 유령 같은 모습으로 변신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광고를 마케팅에 이용한 바로 그 브랜드다. 광고 속 크림은 ‘착색된’ 얼굴이나 ‘갈색’이 된 신체 부위에 바를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신체 부위도 가능하겠지. 갈색인 내 피부 전체에도, 심지어 달갑잖은 갈색 음순에 바르라는 미백 화장품까지 있다. 밀가루 죽같이 하얀 피부의 한 여성이 자신을 휭 스치듯 휘감고 가는 꽃잎들과 함께 춤추는 그 광고는, 피부색이 더 하얘지면 더 날씬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며 남자들의 시선을 더 끌 수 있다고 소비자들에게 소구한다. “이 멍청이 같은 나라 사람들은 하얘지는 데 집착하고 있어.” 고모가 앤의 팔을 문댄 이야기를 해주자 로한[고모의 아들]이 못마땅하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만 그런 건 아니지만 엄마는 거기에 너무 꽂혀 있어.”
저자가 트위터에서 여성주의적인 말을 했다고 강간 및 살해 협박을 받아 괴로워하는 부분도 나오는데, 이게 로라 베이츠의 <인셀 테러> 같은 논픽션 등에서 꼭 언급하는, 온라인상 남자들의 사이버불링 현실이라는 거… 저자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서 이 장이 제일 읽기 힘들었다.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여자를 괴롭히는 놈들 다 뒤졌으면 😡 이 외에 젊은 시절 음주와 관련한 기억이나, 자신에게 딱 맞는 치마를 찾았으나 지퍼가 내려가지 않아 가위로 잘라내야 했던 부끄러운 일화, 털과 몸에 대한 이야기 등에서도 저자가 가진 여성주의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냥 숨쉬듯 자연스러운 페미니즘! 솔직히 필독서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재미있게 잘 써서, 관심 있는 분이면 읽어 볼 만하다. 아쉽게도 구독 서비스에는 없고, 나는 서울 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으니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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