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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단요, <마녀가 되는 주문>

by Jaime Chung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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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단요, <마녀가 되는 주문>

 

 

내가 청소년 소설을 읽고 리뷰할 때마다 매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청소년이 예상 독자라고 해서 일부러 ‘쉽게’ 쓰거나 자신이 보기에 이상적인, 바람직한 청소년의 모습을 그 안에 많이 담는 작가는 청소년을 믿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 그럴 거면 도대체 왜 청소년을 위해 글을 쓰지? 이런 사람들은 그냥 차라리 성인들을 위해 글을 썼으면 좋겠다(청소년들을 내려다보듯 하는 관점을 가진 사람이 성인을 대상으로는 안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서 나는 청소년 소설이라고는 해도 그런 게 ‘티’가 나지 않는 청소년 소설들을 좋아한다. 오늘 소개할 단요 작가의 <마녀가 되는 주문> 같은 것. 분류는 알라딘, 교보문고 등지에서 청소년 소설로도 되어 있지만 성인 독자가 읽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작가는 ‘청소년’이라는 데 꽂히지 않았다. 그냥 청소년이,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을 이들이 할 법한 고민에 자기 자신을 이입해 이야기를 써냈을 뿐.

 

줄거리는 이러하다. 인종, 성별, 민족, 외모(피부색, 신체 조건 등)로 사람을 구분하고 혐오하며 차별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 소설 속 사회는 효율과 능력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평등함을 위해 세워진 학교에서 아이들은 공정하게 경쟁하는데, 교육을 위해 드는 모든 비용은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유예되었다가 학생을 고용하는 회사가 이 비용을 지불한다. 학생들은 이제 자신의 후원자가 되어줄 기업을 찾기 위해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한편, 이 학교에는 ‘가상공간 게임’이 있는데 매주 목요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 딱 2시간만 비밀 서버가 열린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녀가 되는 주문’. 학생들은 이 가상공간에서 웃고 떠들고 놀고 쉰다. 게임에는 학생들을 공격하는 괴물들이 있는데, 마녀(또는 보기에 따라 마법 소녀) 복장을 한 관리자들이 일반 학생들을 보호한다.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이 가상공간은 학생들의 휴식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때때로 스스로 삶을 끝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이 공간에서 목숨을 끊는다. 이 가상공간 접속은 뇌파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사망하면 실제로 본체에서도 뇌출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15년 전, 이 게임에서 사망한 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은 현실에서도 사망했다. ‘마녀’인 관리자 현에게 새 관리자직을 제안받은 서아는 새로운 ‘마녀’가 되는데, 과연 이 게임은 정말로 안전한 것일까?

 

‘마법소녀’라는 소재만 보면 박서련 작가의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마법소녀 복직합니다>처럼 내가 좋아하는 ‘마법소녀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 따지고 보면 마법소녀 또는 마녀가 되는 것이 이 소설 내에서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그냥 이 게임 속 관리자가 마녀 복장을 하고 있으며, 아무래도 게임 속이라서 허공에서 구름을 만들어낸다든가 실을 만들어서 괴물을 묶는 등의 능력을 가졌다는 게 전부다. 좀 더 중요한 것은 이 마녀/마법소녀가 실제로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 서아가 말하듯, “마법소녀는 좋은 거. 마녀는 나쁜 거”다. 본문에 아래와 같은 표현이 있는데 제목은 결국 ‘마법소녀’가 아니라 ‘마녀가 되는 주문’인 점을 상기하면 소설 속 인물들이 결국 이 관리자들을 부정적으로 여긴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서아는 생각으로 글자를 움직였다.

빛나는 점 몇 개가 눈앞으로 훅 다가오면서 다른 것들이 어둠 속에 숨었다.

이제 보이는 것은 무작위한 알파벳과 숫자의 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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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사설 서버에 접근하는 주소.

또는 마법소녀가 되는 주문.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 이 게임 속에서 자살을 시도한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녀’들은 정말로 학생들을 지킬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자살을 방조한 걸까? 서아는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데…! 스포일러는 하지 않을 테니 비밀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결국 이 소설은 청소년이 자라면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나보다 훨씬 큰 체제에 부딪혀 좌절할 때가 있다. 그 안에 있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지금 당장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방법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이 소설 속 예를 들자면 교육비가 학생의 졸업까지 유예되어 이를 모두 지불해 줄 후원자 기업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제도이다(학생이 사망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가족에게는 이 비용이 탕감되고, 유가족은 비용을 청구받지 않는다). 자신을 고용해 줄 기업을 찾지 못한 학생은 졸업을 미루기도 한다. 애초에 이 사실이 학생들에게 크나큰 심적 부담감으로 다가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교칙을 어기면 벌점이 부가되고, 이 벌점은 졸업 후 내야 할 교육비에 일정 금액이 추가되는 식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칙을 어기는 일을 꺼려한다. 교육비가 너무 크면 후원사가 내키지 않아 할 테니 말이다.

 

후원 기업을 찾아야 하는 경쟁을 남들보다 더 힘들게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후원사를 낚는 데 도움이 될) 연구 결과가 남들보다 좋아도, 졸업 전에 후원사가 정해졌어도, 그런 무한 경쟁 속에서 이미 지친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 학생들이 게임 속 사망이 현실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약점을 이용했다. 제도 자체가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이 학교를 때려치우고 다른 삶을 추구할 수 있느냐고 한다면, 그것도 쉽지 않다. 굳이 비슷하게 한국 사회에 비유하자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로 여겨지는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길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 (출처) 대한민국에서 (어느 대학이든) 대학조차 안 가고 다른 길을 찾겠다고 마음먹기가 쉬울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우연이라는 인물도 이렇게 말한다.

우연은 그렇게 운을 떼고서는 학비 대납 제도부터가 불합리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죽음과 취업 중에서 택일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하기 어려우니까, 자퇴를 택하고 빚더미에 짓눌리는 것과 졸업해서 연구원이 되는 것이 똑같은 선택일 수는 없을 거라고. 따라서 학교에 들어온 이상 학생들의 진로는 사실상 강제가 된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생들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자유이자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어 버린다고 했다.

“사실 그게 모두 학생 책임일 수는 없을 거야. 가끔은 학교가 일부러 싸움을 붙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걸. 그냥 달리기 시합을 하면 다들 적당히 뛸 텐데, 10등 아래로는 죽는 규칙이라면 누구든 전속력으로 뛸 거 아냐. 평균 속도야 엄청나게 올라가겠지만…… 그러다가 지친 사람은 그만 죽어 버리는 거지. 중간에 시합을 포기할 수도 없는데.”

 

제도 자체가 혹독한데 거기에서 자살하는 학생이 있다고 해서 다른 학생들이 이에 대해 큰 슬픔이나 공감을 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이 경주마 사육장에서 죽어라 달리는 말인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저 말이 죽지 않도록 돕는 게 내 일이야? 내가 (게임 관리자, ‘마법소녀’ 또는 ‘마녀’라고 해서) 그 말의 죽음에 더 큰 책임이 있나? 내가 다른 말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선의’를 베푸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육장 자체는 그대로일 텐데? 경마를 시키지 않으면 다리가 부러지는 말도 없을 텐데. 결국 학교, 더 큰 의미에서는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지, 개인이 거기에서 어떤 노력을 해서 다른 이들까지 돕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이게 현실적인 입장일 듯. 서아처럼 ‘그래도 우리가 고민을 내려놓아도 되나?’ 하는 이상적인 태도를 가진 인물도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청소년 시기일지니… 작가는 책 끝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란 가장 강력한 진실이면서도 가장 덧없는 거짓말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라지만 세상은 참 복잡하고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모든 사람을 아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슬퍼집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비겁해집니다. 『마녀가 되는 주문』은 그 슬픔과 비겁해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비겁해져도 된다고, 비겁한 것이 부끄러울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비겁함을 이기는 용기를 통해 여기까지 굴러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볼품없는 실패에서도 배울 것은 있기 마련이니까, 비겁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용기를 낼 수는 없으니까 이 글의 모든 문장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고 믿어 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이 읽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성인이 읽어도 현실의 한계와 이상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이입하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좋은 소설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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