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선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여태까지 예술사에서 잘 소개되지 않았던 여성 예술가들을 무려 21인이나 소개하는 책. 아예 여성 예술가들만 이렇게 많이 모아서 책을 낼 수 있다니 참 놀랍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미술사의 명저로 칭송받는 H. W. 잰슨의 <서양미술사>도 초판에는 여성 화가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지적을 받고 개정판에는 몇몇 여성 화가가 추가되었다. 여성 인물이 이룬 업적이 무시되는 게 미술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꼬라지는 볼 때마다 화딱지가 난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는데, 일단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성 예술가들을 한번에 21인이나 알게 되어서 참으로 기쁘지만, 아무래도 한 명 한 명의 삶이나 작품을 구체적으로 깊이 파고들기에는 현실적인 문제(지면이 무한정 늘어날 수도 없고, 이 여성 예술가들이 하도 무시받아서 애초에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기도 하다는 점)가 있어서 어렵다. 그래서 이 인물들을 수박 겉 핥기 수준으로 가볍게, 정말 소개만 받았다는 느낌. 그리고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지는 않다. 완전히 못 읽을 정도로 못 쓴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고?’ 싶은 부분이 종종 있을 정도로 저자의 글쓰기 내공이 조금 아쉽다. 이런 비문학에는 글솜씨가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미술뿐 아니라 직물 디자인, 패션, 인테리어 등 예술 내 여러 분야의 여성을 소개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소개된 여성 모두 서양인이라는 점은 아쉽다. 아예 책 내에서 ‘서양 예술사’라고 딱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했으면 이런 태클이 걸릴 일은 없었겠지만, 그 어디에서도 서양에 한정한다는 말은 없었다(”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 현대 미술의 태동까지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살펴보려고 한다”라는 말은 있다. 이 말은 결국 시간적 배경을 한정하는 것이지, 지리적 배경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거장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독자는 현대에도 통하는 세 가지 진실을 깨닫게 된다. 첫 번째, 여성 혐오적인 사회에서 한 개인 여성에 대한 비난은 100% 성(性)적인 것으로 귀결되게 되어 있다는 점. 예를 들자면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는 예술가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의 경우가 그렇다. 데 로시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예술가로, 당시 여성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진 조각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는 체리씨, 살구씨 같은 조그만 씨앗을 가지고도 대단히 정교한 조각 작품을 만들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최초로 대리석으로 작업한 여성 조각가였는데, 르네상스 미술에서 매우 중요했던 누드 데생에도 숙달했다. 이 점을 동료 화가 아미코 아스페리티니가 이용해 비난했다. 즉 남성의 육체를 잘 안다는 게(화가로서 당연한 일이다, 남자를 그림에 그리려면 인체 해부학을 잘 알아야 하니까) 성적으로 난잡하고 행실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비방한 것이다. 이런 유치한 비난을 받은 것은(당연하지만), 데 로시뿐만이 아니다. 앙겔리카 카우프만도 마찬가지다. 앙겔리카 카우프만은 18세기에 가장 유명한 화가이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화가다. 그는 영국 미술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조슈아 레이놀즈 경의 눈에 띄어, 그의 도움으로 1768년 불과 스물일곱의 나이에 로열 아카데미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이렇게 명성을 떨치니 못난 인간들이 질투하고 시기하고 비난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친구이자 멘토였던 레이놀즈 경과 불륜 사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몸 로비만으로 그런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거짓 비방을 하는 인간들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대단한 카우프만도 여자라는 이유로 누드 데생 수업에 참여할 수 없어서, 옷을 입고 있는 모델을 관찰하며 독학으로 해부학을 익혀야 했다. 이 리뷰를 쓰면서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다. 그럼 화가가 인체를 잘 알아야지, 그럼 여자니까 ‘정숙’하기 위해 인체 해부학도 모르고 대충 졸라맨처럼 그려야 하나?
두 번째, 예나 지금이나 재능 있는 딸을 이용해 먹으려는 비정한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점. 마리에타 로부스티는 르네상스 시대 화가 ‘틴토레토’(또는 자코포 로부스티)의 딸이다. 별칭인 틴토레토가 ‘염색공의 아들’이란 뜻이기 때문에, 그도 ‘작은 염색공 소녀’라는 뜻의 ‘라 틴토레타’로 불렸다. 마리에타는 열네 살에 이미 초상화로 명성을 떨친 미술 신동이었고,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2세와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그를 궁정화가로 채용하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틴토레토는 딸과 계속 공동 작업을 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마리에타가 이 제안을 거절하도록 종용했다. 틴토레토는 마리에타에게 결혼도 허락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죽을 때까지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허락했다. 마리에타는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일했는데, 당시 거장 화가의 작업장에서 미술가들은 그림의 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조수로 여겨졌고, 틴토레토는 조수들이 맡은 부분을 자기 스타일로 손질해 출시했다. 따라서 마리에타가 작업한 부분도 이런 식으로 묻혔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결국 마리에타가 아이를 낳다가 서른 살에 요절하자, 그의 창작 능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17세기 볼로냐의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여자 라파엘로’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화가였는데 놀랍게도 화가들이 작품에 서명을 하지 않았던 시대에 자신의 서명을 남겼고 그린 날짜, 모델 이름 등 목록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여자 라파엘로’가 아니라 진짜 라파엘로를 넘어서는 더 큰 거장이 될 수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작품을 창작해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그 스트레스와 과로가 죽음을 재촉한 것은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매우 이기적이어서 돈을 위해 그가 가능한 한 많이 그림을 그리도록 강요했고, 그가 얻은 수입을 모두 가져갔다고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셈이지. 내가 위대한 여성들의 삶과 작품을 다룬 책에서 이런 슬픈 현실을 마주쳐야 한다니 그저 환멸이 날 뿐이다.
세 번째, 후대에 위대한 인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한 학문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여성이 있다 하더라도, 후대에 남성 인물이 있다면 전자는 싹 무시된다. 내가 바로 이 경우인 메리 애닝의 경우, 그러니까 다윈보다 조금 더 먼저 살았고(나이로 치면 10살 연상) 다윈의 진화론에도 영감을 주었으나, 언급되는 횟수는 다윈의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고생물학자의 경우를 목이 터져라 여기저기에서 여러 번 성토한 적 있다(매기 앤드루스와 재니스 로마스의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나 영화 <Ammonite(암모나이트)>(2020), 이동근의 <화석 캐는 아가씨>). 비슷한 경우가 여기에도 있다. 17세기 화가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꽃과 곤충을 관찰해 그림을 그렸고, 1679년에는 곤충의 탈피를 소재로 한 삽화집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을 출간했다. 이 화집은 “최초의 곤충 도감이자 곤충이 유기물에서 자연 발생한다는 기존의 자연 발생설을 일거에 뒤집은 혁명적인 과학책이었다.” 또한 메리안은 남아메리카 북동부에 있는 수리남에서 곤충, 양서류, 뱀, 열대 식물 등 수많은 토착 동식물을 채집해 표본을 만들고 스케치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라는 화집을 출판했다. 이 작품은 당시 괴테의 찬사를 받았으며, 조지 3세와 러시아 표트르 대제까지 왕실 소장품으로 동판화를 사 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메리안이 1717년, 6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잊혔다. 1980년대 독일에서 여권 신장 움직임이 불어 그의 업적이 재조명되기 전까지는. 그의 얼굴은 유로화가 정착되기 이전 독일 500마르크와 우표에도 실렸다. 많은 독일 학교의 이름들이 그의 이름을 기념해 지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다시 메리안을 기억하고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게 된 것은 무척 기쁘고 멋진 일이지만, 내가 살면서 여태껏 들어 본 곤충학자의 이름이 (심지어 많지도 않은데) 전부 남성인 게 (파브르, 석주명) 아주 원통하고 아쉽다. 이제라도 메리안의 이름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 외에 사료가 없어서 각 예술가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없어 아쉬운 경우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건 굳이 더 말해 무엇하리. 내 손가락만 아프지. 어쨌거나 이 책 덕분에 여성 예술가들을, 화가뿐 아니라 직물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등 다양한 방면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이 책 리뷰를 쓰다가 여성 예술가에 대한 다른 책(브리짓 퀸의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내가 본 기사는 이거)도 알게 됐는데 이것도 한번 읽어 봐야겠다. 더 이상 한 학문의 시대적 흐름을 다룬 책들에서 남자들만 주루룩 나열해 놓고 마치 뒤늦게 기억났다는 듯, 구색 맞추기용으로 여성 인물들 몇 명을 (대체로 현대 섹션에 몰아서) 언급하는 망할 버릇이 끝장나고, 모든 시대의 여성 인물들이 그 업적을 인정받기를 바란다. 앞에서도 말했듯, 21명을 소개하느라 한 명당 분량이 길지 않고, 저자의 필력이 대단치는 않으며, 서양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아쉬운 점이긴 하다. 저자는 기회가 된다면 동양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책도 한 권 써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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