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고은, <어쩌다 유교걸>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동양 고전을 공부하는 20대 페미니스트 여성의 이야기. 여성이 ‘유교’ 공부를 한다고 하면 요즘 사람답지 않다는 시선을 받을 게 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교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여성 혐오 문화에 기여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그는 스스로를 “유교걸”이라고, “노브라로 앞가슴이 훤히 트인 티셔츠를 입고 <논어>를 들고 다니는 여자, 또래 친구들이 스토킹 범죄로 스러져가는 걸 보고 분노하면서 음양을 공부하는 여자, 고리타분한 건 딱 질색이라면서 고전 텍스트를 읽는 여자,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예(禮)에 대해 말하는 여자”라고 말한다. 사실 내가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건, 저자가 그렇게 여성 혐오적이라고 여겨지는 동양 고전 텍스트를 읽는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이라는 점 때문이었고, 따라서 이 에세이에서 저자가 그런 대중적 이해와 실질적인 텍스트의 내용의 차이를 이해하고 화해시킬까 하는 것이 제일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인은 그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두어 번 정도 ‘이러이러한 (여성 혐오적으로 읽히는) 텍스트의 의미는 사실 이런 것이다’라고 해설해 주는 부분이 있긴 한데, 나는 그게 좀 더 이 책의 주안점이 되기를 바랐다. 근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고. 그래서 딱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서당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아동과 청소년이 배우던) <사자소학>에는 그 유명한 ‘부부유별 [夫婦有別] 장유유서 [長幼有序]’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보통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라고 해석된다. 저자는 이를 “당시 페미니스트 자아가 보기엔 좀 꺼림직한 문장”이라고 소개했고, <사자소학>의 한글 낭송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문에 입문하고 싶어 하는 40-50대 여성들을 모시고 세미나를 열었는데 “그분들 모두가 분통을 터뜨렸다”고 했다. “<사자소학>의 문장들이 자기가 차별받았던 손녀, 딸, 며느리의 경험을 그대로 설명해준다”고 말했으며, “그들이 만난 어떤 어르신들은 실제로 이 문장을 차별의 근거로 삼았다고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그 당시에는 일단 후퇴했으나, 나중에 이렇게 이해했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구별’과 ‘차례’는 누군가가 인격적인 우위를 정한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각자가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이것을 꼭 사람간에 위계를 나누고 권력을 생산하는 장치라고 볼 수 없다. 마치 내가 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일종의 강제를 행사해 친구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교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을 많이 믿는 학파다. 유교의 ‘구별’과 ‘차례’는 서로가 서로의 가능성을 믿고 의지하면서,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만일 어떤 구별도 차례도 없었다면 나는 끝까지 학생들에게 선생이 될 수 없었을 테고, 학생들은 나를 믿지 않았을 테고, 수업에서 무언가를 배워갈 수도 없었을 테다. 거꾸로 말하면 구별과 차례는 반드시 서로에 대한 믿음, 그것도 인간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을 때라야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구별과 차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사회는 서로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자소학>을 비롯해 동양 고전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압축성이다. <사자소학>은 각 문장이 8자로 되어 있으며, <논어>에 나오는 문장들도 그다지 길지 않다(예를 들어, ”배운 것을 제대로 익혔는가?”라고 해석되는 문장은 4자, ‘전불습호 [傳不習乎]’이다).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한문을 모르면 뜻을 제대로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일차적인 해석이 끝나고 나서도 ‘구별’과 ‘차례’처럼 각 표현이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는 건지 제대로 배우고 이해하는 데 또 시간을 들여야 한다. 애초에 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거지? 예컨대 ‘부부유별 장유유서’라고 첫 문장을 썼다고 치면, 그다음 문장에서 ‘여기에서 구별과 차례는 각각 이러이러한 뜻이다’ 하고 설명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밑도 끝도 없이 ‘부부유별 장유유서’라고만 써놓으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또 후세들이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게 아닌가. 이 문장을 처음으로 쓴 이의 의도야 여성 혐오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정말로 부부와 어른, 아이들이 잘 어울려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조언을 해 주려고 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걸 고작 8자에 꾹꾹 눌러 담으니 표현이 제대로 될 수가 있나. 그 ‘구별’하고 ‘차례’로 정말 뭘 말하려고 했던 건데요? 어느 쪽이 우월하고 더 낫다는 건가요, 아니면 서로서로 도와야 한다는 건가요? 제대로 말을 해 주셔야죠!
서양 학자들, 예컨대 영어로 학문을 하는 학자들의 글이 반드시 동양 학자들의 글보다 나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어 같은 언어는 우리 한국인의 마음속에 ‘외국어’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하고 있고, 따라서 오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 하지만 한자와 우리 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서 ‘해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좀 덜하다. 대충 한자를 읽을 수 있으면 동양 고전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러니 혼란이 더 가중된다. 한문만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잠시 잊힐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 한자가 지금의 한자와 똑같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표현도 더욱 옛스럽고, 의미가 변했을 수도 있는데. 셰익스피어 영어와 현대 영어가 다르다는 것은 알면서, 옛날 동양 고전에 쓰인 한문은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 당시에만 쓰였던 표현이라든가, 역사적인 맥락 등은 고려하지 않고 대충 우리가 아는 한문 지식으로 동양 고전을 이해하려 하면 틀릴 수밖에 없지 않나? 게다가 대충 어떻게 일차적인 해석은 했다 쳐도, 내가 아까 말한 것처럼 그 문장이 진짜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위의 예를 계속 이용한다면, 그 ‘구별’과 ‘차례’가 이 문장의 맥락 속에서 무슨 뜻인지 (설명이 따로 없으니까), 기존에 자기가 알고 있는 이 단어들에 대한 지식을 (실제 문장 속에서는 그 의미가 아닐지라도) 그냥 거기에 욱여넣는 것이다. 이러면 제대로 이해가 될 리가 만무하다. 어쩌면 유교의 여성 혐오적 이해는 이렇게 태어난 게 아닐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애초에 유교 자체가 여성 혐오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나는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길게 말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애초에 동양 고전 텍스트가 친절하게, 자세하게 그 뜻을 하나하나 풀어 설명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제대로 설명을 안 하니 유교 텍스트가 진짜로 여성 혐오적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오해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동양 고전 텍스트를 공부하는 저자는 스스로 화해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다지 설득되지 않았다. 사실 동양 고전이라 해서 서양 고전보다 (여성주의적인 면에서) 더 나을 거라는 기대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나는 그냥 저자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거였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동양 고전에 관심이 없다면 이 책을 굳이 읽을 이유가 없지 않나 싶다. 저자가 어찌어지 멋지게 ‘곡해’를 해서라도 동양 고전을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했다면 더욱 흥미로운 책이 되었을 텐데, 그게 아니니까 결과적으로 그냥 그렇다. 종이책 기준 214쪽으로 다소 짧은 편이라는 게 위안이 되는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감상/책 추천] 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 (4) | 2025.08.11 |
---|---|
[책 감상/책 추천]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7) | 2025.08.08 |
[책 감상/책 추천] 강지영, 민지형, 배예람, 양은애, 최세은, <너무 길지 않게 사랑해줘> (6) | 2025.08.06 |
[책 감상/책 추천] 정세랑, <아라의 소설> (4) | 2025.08.01 |
[월말 결산] 2025년 7월에 읽은 책들 (5) | 2025.07.30 |
[책 감상/책 추천] 사치 코울,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없겠지만> (4) | 2025.07.25 |
[책 감상/책 추천] 마이클 이스터, <가짜 결핍> (7) | 2025.07.21 |
[책 감상/책 추천]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4) | 2025.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