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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크리스타 K. 토마슨, <악마와 함께 춤을>

by Jaime Chung 202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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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크리스타 K. 토마슨, <악마와 함께 춤을>

 

 

분노, 시기, 질투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통제하고 없애려 하기보다는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논픽션 책. 이미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으로 유명한 이 책을 굳이 내가 더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보겠다.

저자는 부정적인 감정을 불교, 스토익 학파, 몽테뉴, 루소, 울스턴크래프트 등의 학자들의 철학과 함께 살펴보며, 이것을 없애거나 생산적인 방법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뒤집는다. 부정적인 감정이 징그럽고 끈적끈적한 지렁이라고 한다면,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 즉 충만한 삶을 위해서는 이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당연하다거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삶에서 실천하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은 느껴서는 안 되고, 그런 감정들은 곧 없애거나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경우, 또는 이상적인 경우가 간디와 같은 성인(聖人)이다. 저자는 오웰의 말을 빌려 우리는 성인이 되기를 열망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성인은 완벽을 추구하는데, 그러다 보면 인간성을 덜어내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조지 오웰의 말이다.

인간성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때로는 충성을 위해 기꺼이 죄를 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고행을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사랑을 다른 개인에게 종속시키는 행위의 필연적인 대가로, 결국 삶에 의해 패배하고 깨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 감정을 삶에서 몰아내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당신이 볼 때 나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 따위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좋은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는 생각, 즉 부정적인 감정은 뿌리를 뽑아야 하는 잡초라는 생각이 오웰이 반대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논리를 따른다. 이 논리에 따르면, 가장 좋은 종류의 감정적 삶은 나쁜 감정이 없는 삶이다. 분노, 질투, 악의를 덜 느끼면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감정 성인이 되기는 어렵고 이를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걸 열망해야 한다. 나쁜 감정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감정 성인이 되는 게 아예 안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 우리는 감정 성인이 되길 원하면 안 된다. 아주 조금도 안 된다. 감정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건 인간성을 덜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감정 성인은 여러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감정 통제형 성인’이다. 이런 성인들은 나쁜 감정은 정원의 잡초와 같아서 뿌리를 뽑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다시 자라지 못하도록 땅에 소금을 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초월해서 그걸 되도록 적게 느끼거나 (최선의 시나리오라면) 전혀 느끼지 않아야 한다. 급진적인 해결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철학의 역사에는 감정 통제형 성인이 많다.

그리고 그 감정 통제형 성인의 한 예로 스토아 학파를 들 수 있다. 스토아 학파는 ‘아파테이아’, 즉 부동심(不動心)을 추구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알면, 무엇이 괴로운 일이고 무엇이 괴롭지 않은 일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 스토아 학파 현자 중 한 명인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자식이나 아내에게 입을 맞출 때, 한 인간에게 입을 맞춘다고 생각하라. 그러면 그들 중 하나가 죽어도 심란하지 않을 것이다.”(저자가 지적하듯,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에픽테토스는 평생 결혼한 적이 없다.”)

 

하지만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말 과연 인간인가? 이 질문에 아니라고 말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첫 번째 감정 통제형 성인과 달리 감정 수양형 성인은 나쁜 감정을 뿌리 뽑거나 억누르기보다는, 이것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수양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철학 분야에서는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에 속한다. 공자는 인자(仁者)가 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느끼되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진정성 있게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성품의 탁월성은 감정을 조절하고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남이 나를 모욕하거나 무례하게 대할 때 분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고’, ‘무감각하며’, ‘비굴하다.’

저자는 이 두가지 유형의 감정 성인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두 가지 유형의 감정 성인은 모두 감정에 관한 실천적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다시 말해 우리 내면에는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 부분과 함께 잘 살아갈지를 고민한다. 다만 감정 통제형 성인은 감정을 약하게 만들어서 감정을 통제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감정 수양형 성인은 감정에 맞서기보다는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감정을 단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정을 직접 통제할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를 위해 고안된 것이 감정 수양 전략이다. 감사함을 느끼기로 결심한다고 뜻대로 될 수는 없지만, 살면서 경험하는 좋은 일이나 감사한 일을 전부 떠올려 적기 시작하면 감사함을 느끼는 쪽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감정 수양형 성인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긍정적인 감정이 자연스레 뒤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내가 어떤 상황에서 분노가 올바른 반응이라고 판단하면 적절한 양의 분노가 표출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이런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생각과 선택을 올바르게 하더라도 감정이 그 뒤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스스로 어떤 감정을 느끼려고 또는 느끼지 않으려고 했다가 실패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올바른 생각과 선택을 해도 감정은 결국 당신을 배신한다. 감정은 그 자체의 삶을 가지며 애초에 감정이 실천적 문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감정이 당신을 배신하는 순간, 누구나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것들을 통제하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 때로는 아예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감정 수양형 성인은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감정 훈련을 충분히 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정을 완벽하게 단련할 수 없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그걸 원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나쁜 감정이 생기면 이를 없애거나 대체하려 들지 말고, 그냥 느끼는 것이다. 왜? 저자는 밀튼의 <실낙원>에 등장하는 사탄의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나쁜 감정은 자기애의 표현이다. 이웃의 아름다운 집을 부러워하는 건 나도 그런 집을 갖고 싶기 때문이며, 내가 싫어하는 동료의 비아냥에 화를 내는 건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사람이다. 내가 나를 아끼기 때문에 부러움, 앙심, 또는 경멸 같은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애는 사탄에게 “가장 큰 죄악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에게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저자는 몽테뉴와 니체의 철학을 빌려오는데 여기까지 설명하면 리뷰가 더욱 길어질 테니 이쯤 해 두겠다. 내가 여기에서 모든 걸 다 설명하면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어질 테니.

 

어쨌거나 결론은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책으로 확인받으니 안도감이 들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는다면, ‘그래서 그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라는 궁금증이 올라올 수 있다는 것. 아니, 그래요, 잘 알겠는데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요?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면 여기서부터는 이제 다시 마음챙김, 명상, 뭐 그런 영역으로 다시 나아가는 것 같다. 그냥 말 그대로 그 부정적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느끼면서 허용하라는 것인데 이건 본인이 계속해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 노력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자면 노아 엘크리프의 <생각을 걸러내면 행복만 남는다>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결국 감정도 그 뒤에 숨은 생각에서 기인하는데, 그 생각이 진실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 수 없으므로 결국 그 생각에서 나온 감정을 붙잡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내 책 리뷰 링크에서 보시고, 이게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책도 한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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