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관욱, <사람입니다, 고객님>
콜센터 상담원들을 현장 연구한 저자의 민족지(ethnography). 저자는 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덕에, 그토록 연구하고 싶던 콜센터 직원들을 금연 상담 의사 신분으로 만나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좋은 학력이 어디에서 뭘 하든 도움이 될 거라며, “네가 나가서 노래를 부른들 박사학위가 쓸모없을 것 같냐”라는 닥터 베르의 지도 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 그 덕분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
1970, 1980년대에 소위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의 삶이 2010, 2020년대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콜순이’라 불리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반복된다. 이 여성들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하지만 인정받지 못한다는 큰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둘 다 일하면서 ‘드러그 푸드(drug foods)’를 가까이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드러그 푸드’가 무엇인지, 옛날 여공들이 어떤 드러그 푸드를 먹었는지는 아래 인용문을 참고하시라.
체험관 전시물을 살펴보던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오래된 신문기사가 있었다. 기사 중간에 조금 큰 글씨로 “잠 안 오는 약藥 먹여 일 시키는 업주業主도”라고 쓰여 있었다([사진 1-7] 참조). 여기서 지적하는 약이란 바로 고농도의 카페인이 함유된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다. 타이밍은 여공들 사이에서 일종의 ‘드러그 푸드’drug foods처럼 이용되었다. 미국의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Sidney Mintz는 노동력과 관련된 식품이나 약물을 드러그 푸드라고 불렀다. 민츠는 19세기 산업자본주의와 식민지 정책이 태동할 당시 노동자 계층이 담배를 커피, 홍차, 초콜릿, 설탕과 함께 일종의 ‘드러그 푸드’로 즐겨 사용하게 되었고, 그 이유로 ‘대용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꼽았다. 그는 “알코올이나 담배처럼 그것들은 현실을 잠시 잊도록 만들어주고 배고픔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준다. 커피나 초콜릿이나 홍차처럼 그것들은 영양분 공급 없이 더 큰 노동력을 불러일으킨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타이밍은 여공의 삶을 다룬 기사와 영상물 등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타이밍’은 정희재의 <아무튼, 잠>에서 언급되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잠을 포기’당하고’ 살인적인 양의 노동을 해야 했던 여공들. 반면에 요즘 콜센터 직원들은 담배를 드러그 푸드로 이용한다. 아무래도 과도한 감정 노동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가장 빠르게 풀 수 있는 방법으로 통하는 듯하다. 한 콜센터 직원의 말대로 술을 마시면 다음 날 머리도 아프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업무에 지장이 가지만, 담배는 ‘큰 부작용 없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콜센터 상담원들의 흡연은 단순히 직원들의 취미나 스트레스 해소 정도로 여겨지는 게 아니라, 일종의 복지로도 여겨진다. 콜센터 건물에는 이들을 위한 흡연 장소가 꼭 존재하고, 관리자들도 직원들의 흡연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와 인터뷰한 한 실장의 말대로, 직원들이 흡연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업무의 능률을 올리는 일이라고 여긴다.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보통 2분에서 길게는 4분의 짧은 시간 내에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니 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담배가 어떻게 ‘드러그 푸드’로 작용하는지를 보여 준다.
캐나다의 여성 흡연 역사를 연구한 사회학자 로렌 그리브스Lorraine Greaves는 여성이 흡연을 다섯가지 측면에서 이용한다고 보았는데, 각각 사회적 관계의 형성, 마른 몸매나 스타일 등 이미지 창조, 감정의 통제, 의존성, 정체성이다. 그런데 그녀가 주목한 부분은 이러한 담배의 사회적·심리적 이득이 최종적으로는 캐나다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불평등한 상황을 더욱 강화한다는 점이다. 그리브스는 흡연이 캐나다 여성들을 통제하는 사회적 수단처럼 활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은유적으로 ‘연막’smoke screen이라고 표현했다. 즉 담배 연기가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레슬리 도열Lesley Doyal 역시 영국 사회에서 담배가 모든 흡연 여성의 삶의 모순을 상징함은 물론, 흡연이 신경안정제처럼 “여성들에게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라고 비판했다. 한국 사회에서 콜센터의 담배 연기는 이런 지적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한국콜센터 흡연실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는 얼마나 많은 한숨들을 가리고 있을까? 그 연기마저 대나무로 가리고 있으니 상담사의 현실을 가리는 ‘막’은 두텁기만 하다.
저자는 콜센터 평사원들과 매니저들뿐 아니라, 노조 집행부에 속한 직원들까지 인터뷰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1년여간의 긴 준비 과정을 통해 노동조합을 설립한 직원들이 노조의 요구 사항을 적은 빨간 조끼(이걸 ‘몸자보’라 한다)를 입고 일함으로써 조합원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고, 노조 가입률 증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거 진짜 기가 막히게 좋은 아이디어네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노조원분들이 계신다면 이 방법도 고려해 보시길…
다만 한 가지 놀랍고 실망스러웠던 건, 이 노동조합에서 하는 운동에 대한 저자의 태도이다. 노조원들은 ‘몸펴기’라 부르는 스트레칭 운동을 다 같이 했는데,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상담원들의 건강 개선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된다. 아무래도 사무직처럼 맨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면 당연히 신체 건강, 정신 건강에 좋겠지. 근데 저자는 이걸 무작정 칭찬하고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말한다는 게 문제다. 바른 자세를 하는 ‘몸펴기’ 동작에서 상징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이게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말하는 건강에 대한 조언을 모두 대체할 정도로 완벽한 건강법인가? 아래 저자가 뭐라고 썼는지 보시라.
그렇다면 몸펴기에 실제로 참여한 상담사들은 이 운동을 어떻게 평가할까? 앞서 ‘몸도 펴고 마음도 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도 있었고, “일주일에 한번이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자신의 몸에 집중하고 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라고 구체적 장점을 나에게 소개한 상담사도 있었다. 나는 몸펴기에 함께 참여하면서 많은 상담사가 몸펴기의 장점으로 공통적으로 세가지를 꼽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핏 들으면 흔하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학문과 연구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바로 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첫째,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된다. 둘째, 내 몸을 내 스스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생긴다. 셋째, 돈을 들이지 않고 일상에서 건강을 쉽게 유지할 수 있다. 간단하고 쉬운 이야기 같지만, 정말로 쉽지 않다는 것을 수많은 상담사가 몸소 경험하며 지내왔다.
곰곰이 살펴보면 이러한 장점들은 콜센터에서의 노동 경험은 물론이고 일반 병원에서의 치료 경험과 완벽히 대비되는 모습들이다. 노동 및 의료 현장에서 상담사들은 지금껏 자신이 몸의 주인이라 느끼지 못했고, 자신의 힘만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으며, 또한 그런 것을 금전적 투자 없이 일상에서 쉽게 시도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몸펴기’ 운동을 가르치는 ‘김사범’이라는 사람의 글을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건 너무… 광신도 같달까.
한편 그의 글에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두 가지 요인인 ‘열악한 환경’과 ‘영리 목적의 의료 독점자본’이 언급된다. 그는 영리만 추구하는 기업 때문에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건강을 잃고, 그렇게 잃게 된 건강이 또다시 의료 자본의 영리 추구 수단이 된다는 모순된 현실을 비판한다. 바로 이런 악순환 고리에 몸펴기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그 해법으로 ‘몸 펴는 자세를 일상생활에서 찾아야 건강해진다’라는 건강 담론을 강조한다. 언제 어디서든 항상 펴는 몸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건강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는 건강이란 의사들의 표준 의학 지식과 각종 의료 장비가 보여주는 이미지와 정상 수치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세에 대한 개인의 실시간 감각에 근거한다고 이해한 데 따른 것이다.
‘몸펴기 생활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게 기존 의학만큼의 어떤 체계나 경험적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의료 자본의 영리 추구’ 또는 (그 위 인용문에서처럼) ‘일반 병원에서의 치료 경험과 완벽히 대비되는 모습’ 어쩌고 할 정도로, 기존 의료 시스템의 ‘대체물’이나 ‘대안’이 될 수 있나? 본인이 이 운동을 하면서 효과를 보고 또 스스로도 사범이 된 것은 알겠는데, 이게 ‘무안단물’인 것처럼 표현하면 안 되죠. 학자, 연구자로서의 객관적 태도는 어디에다 버린 겁니까?
이 외에 한국과 영국, 인도의 콜센터 문화와 노동 환경을 비교한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으나, 역시나 ‘몸펴기 운동’에 대한 예찬이 너무나 과도해서 저자에 대한 신뢰가 조금 떨어질 뻔했다. 그 부분은 독자들이 적당히 걸러서 받아들여야 할 듯. 그것만 유의하고 읽으면 괜찮다. 우리 독자 여러분들은 객관적인 눈을 견지하고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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