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누누 칼러, <쇼퍼 홀릭 누누 칼러, 오늘부터 쇼핑 금지>
일전에 누누 칼러의 <물욕>을 읽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좀 딱딱하게 느껴져서 읽다가 그만뒀다. 그런데 서울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013년, 국내에는 2014년 출간되어서 전자책도 없던 책인데 어쩌다 이게 전자도서관에? 반가운 마음으로 대출해서 읽었다. 누누 칼러가 1년간 옷 쇼핑을 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일기를 쓰며 이 1년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기록한다. 많은 이들이 누누의 ‘쇼핑 다이어트’가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 주의: 하지만 그는 해낸다! 1년간 그는 옷을 사지 않고, 대신 친구들과 옷을 교환하거나 뜨개질과 바느질로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다. 그러면서 패션업계의 불편한 진실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 트렌드를 맞추기 위해 값싼 옷이 만들어지고, 그 와중에 노동자들은 생존도 어려울 만큼 적은 돈을 받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옷이 환경을 위협한다는 진실 말이다. 이 점은 카트린 하르트만의 <위장환경주의>나 이소연의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같은 책, 그리고 <Buy Now! The Shopping Conspiracy(지금 구매하세요: 쇼핑의 음모)>(2024) 같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스스로를 물욕이 대단히 많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민음사TV 콘텐츠도 장바구니 영상(예컨대 이런 것)을 보면 ‘도대체 왜 저런 게 가지고 싶지?’ 싶다. 예를 들어서 캠프 용품 중에서 땔감을 옮기기 위해 만들어진 가방 같은 거(이런 걸 ‘firewood sling’이라 하는 듯). 이렇게 구체적이고 한정된 용도의 물건이 도대체 왜 필요한 거야? 애초에 왜 이런 걸 만들지? 그냥 손이나 가방을 쓰면 안 되나? 어쨌거나, 미니멀리스트라고는 할 수 없어도 맥시멀리스트는 되지 않으려 하는 나는 저자의 쇼핑 다이어트를 하면서 배워 나가는 사실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값싼 옷’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와 환경이 얼마나 고통받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놀라지 않았지만, 이제 내가 언급할 점은 좀 놀라웠다. 저자는 “가혹한 쇼핑 금지의 시기를 견뎌내려” 도움말을 얻기로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아메리칸 어패럴 다이어트(American Apparel Diet)’라는 블로그를 알게 된다. 이 블로그의 주인공은 저자처럼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그 계획을 독자들과 나누었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저자는 ‘여섯 벌로 한 달을 버티는’ 프로젝트를 성공한 하이디라는 여성의 사연도 발견한다(나도 구글링으로 이 동영상을 발견했다. 바로 이것).
쇼핑하지 않는 방법에는 정말로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그중 내 발목을 잡은 것은 <뉴욕타임스> 온라인 판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금발 머리 여인의 동영상이었다. 나는 그녀가 얼마 전에 끝낸 프로젝트를 보고 깊이 감동했다. 정확하게 여섯 벌로 한 달을 버티는 프로젝트였다. 사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구체적으로 읽는 순간 그 생각은 곧 뒤집혔다. 한 달 동안 옷장에서 꺼내 입을 수 있는 옷은 단 여섯 벌. 이 규칙은 위생적인 측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속옷을 제외한 겉옷에만 적용한다. 즉, 원피스나 스커트, 바지, 티셔츠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예외 규정이 있다. 검은색 무지 티셔츠가 같은 걸로 두 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로 친다.
그렇다면 하이디는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일까? 하이디는 지난 몇 년간 매일 새로운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것이 일종의 무언의 법칙으로 통하는, 외적인 모습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일해왔다. 그녀의 호기심은 단순했다. 그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을 경우, 이를 눈치 채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하이디는 목걸이나 스카프 등의 액세서리로 코디를 하고 신발만은 마음껏 골라 신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녀가 고른 기본 아이템을 최소 마흔 번은 클릭하며 살펴보았다. 정확하게 여섯 벌 즉, 원피스, 스커트, 탑, 검은색 바지, 블라우스, 청 반바지로만 이루어진 코디였다. 모르긴 몰라도 한 마흔 번 정도는 그녀의 창의성에 혀를 내두른 것 같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 놀라웠다. 외적인 것은 그토록 중시하는 그 맨해튼에서 그녀가 계속 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그리고 그녀에게도) 분명한 교훈을 주었다. 바로 그녀와 나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패션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을 입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가 하는 것이었다.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문장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저자는 또한 ‘더 유니폼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시나라는 여성은 1년 동안 같은 옷을 입되, 코디는 선물 받은 액세서리나 플리마켓에서 산 물건 등을 이용해 바꾸었고, 그렇게 코디한 사진을 매일 자기 웹사이트에 올렸다. 이는 동시에 인도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 활동이기도 했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오이 칵테일을 석 잔 마셨고 나는 난방이 되지 않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더 유니폼 프로젝트(The Uniform Project)’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보았다. 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사이트 속 주인공은 똑같은 옷으로 때로는 스포티하게, 때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소녀같이 코디를 완성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룩과 레저 룩까지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다만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플리마켓의 절반은 싹쓸이했을 것 같았다. 사진 속 그녀는 매번 다른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프로젝트를 보고 나니 1년 동안 쇼핑을 안 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매번 새로운 액세서리에 의존해서 코디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위 하이디 프로젝트의 인용문에서 “패션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했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문장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내가 늘 생각하던 게 바로 그거니까. 우리가 정말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할까? 내가 사무실에 맨날 비슷한 옷 몇 벌을 돌려입고 출근해도 알아차리는 사람도 없으면, 만에 하나 있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깨끗하고 TPO에 맞기만 하면 무슨 상관이람. 하이디처럼 한 달 동안 여섯 벌만 입고 살지는 않더라도, 대충 상의 다섯 벌과 하의 한 벌만 있으면 일주일 출근룩은 완성이다. 그리고 그걸 주말 동안 빨아서 그다음 주에 또 입어도 된다! 이런데 옷을 왜 또 사나요? 개인 위생을 위해 속옷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겉옷은 그렇게까지 자주 교체할 필요가 없지 않나. 갑자기 살이 찌거나 빠지지 않는 이상, 옷이 몸에 맞으면 계속 입을 수 있다. 옷을 자주 안 사면 돈도 절약되고 환경도 보호되고 얼마나 좋게요!
물론 내가 이렇게 물욕, 그중에서도 옷 욕심이 없는 것은 미친듯이 쇼핑하던 시기를 거쳐 온 덕분이다. 지금은 옷이 충분다 못해 넘치게 있다는 걸 아는 데다가, 또 무엇보다 ‘탈코르셋’ 해서 나를 꾸며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예전만큼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란 사람의 가치가 외모에 있지 않다는 걸 아니까 화장과 옷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뽐뿌’가 오면 이 사실을 상기하며 물욕을 가라앉힐 수 있다. 캐럴라인 냅이 자신의 에세이 <욕구들>에서 정확하고 솔직하게 지적했듯, 특히 여성에게 식욕이나 물욕 같은 ‘욕구’는 실제로 음식이나 물건 등에서 기원하지 않았다. 그 아래에 좀 더 근원이 되는 욕구가 있는데 그것을 이해하는 게 이런 표면적 욕구를 흘려 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라고 말한다면 갑자기 너무 진지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하려나?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어떤 옷을 보고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이 옷이 나에게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상적인 몸매, 인기, 분위기 등등)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닌지, 이걸 산다고 정말 그게 충족될지를 생각해 본다. 그 근원적인 욕구를 이룰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보고. 대개는 내가 진짜로 가지고 싶은 것, 또는 느끼고 싶은 감정은 이 옷 또는 물건이 줄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되고 거기에서 장바구니로 향하던 손을 놓을 수가 있다.
책을 읽으며 역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방법은 적게 소비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저자가 딱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내가 평소에 하고 있던 생각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달까. 값싼 옷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으며 노동하고, 자원이 낭비되며 지구가 파괴된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다시 ‘뽐뿌’를 누르기에 적절한 책이니 한번 읽어 보고 저자처럼 ‘쇼핑 다이어트’에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아예 쇼핑 ‘단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쇼핑 빈도와 규모를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타도하자,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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