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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by Jaime Chung 2025.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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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암 경험자인 저자의 ‘질병 서사’ 에세이 모음. 반(反)성폭력 운동을 하던 저자는 어느 날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저항 정신이 투철한 그는 ‘지 쪼대로’ 아플 자유를 주장한다. 암 환자든 다른 중병 환자든, ‘환자는 다 이래야 한다’라는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눈초리를 받게 마련이다. 그는 이것을 타파하고자 한다.

 

그 일례가 ‘맥주 한 잔의 자유’이다. 저자가 쉬던 중에 암 경험자인 친구가 놀러와서 ‘무알코올 맥주가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겠냐’ 하는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그 친구는 분통을 터뜨렸다. 맥주 한모금이 뭐 대수라고, 통제가 너무 심하지 않냐고.

암 경험자에게도 그런 순간은 필요하다. 맥주 한 모금이 목구멍을 찌르르 넘어가는 순간, 퇴근 후 카우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회복을 뭉클하게 실감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큰 병에 걸린 적이 있다는 이유로 유해하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일절 못 하도록 막는 것이 온당할까. 그렇다면 병원 급식에 나오는 쇠고기 장조림도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캠핑에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무관하게 밤낮 장작을 때고 바비큐를 해 먹는 행위는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괜찮은가. 어째서 HPV 백신은 전 국민 필수 예방접종 항목에서 제외되어 있는가. 죽을 수 있는 위험을 피해서 오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라면 전국의 관광용 출렁다리들과 온갖 익스트림 스포츠도 금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은 환자가 있는 집안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일화 하나. 저자의 어머니는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건강 정보’를 맹신하신다고.

나는 이러한 조리법을 따르는 식단을 유명 생활 정보 프로그램 〈알토란〉의 제목을 따서 ‘알토란적 항암식단’, 건강 식단을 만들어 먹느라 하루를 다 보내는 병자의 일과를 ‘알토란적 생활양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암에 걸리고 나면 알토란적 항암식단의 자장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신선초에는 암의 증식을 억제하는 칼콘과 쿠마린이 풍부하고, 마늘에 있는 알리신이라는 성분에는 항암효과가 있고…. 어머니와 통화할 때마다 항암효과가 있다는 식재료들이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꿰어져 나왔다.

“TV에서 거짓말을 하디? 의사가 사기를 치겠어?”

평소 방송에서 하는 말이라고 곧이곧대로 믿지만은 않았던 어머니조차 딸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고전적인 권위에 귀를 기울였다. 도서는 물론이고 유튜브와 블로그에도 온갖 항암식단 전문가가 넘쳐났다. 병원의 임상영양사 출신이라는 사람, 한의사, 암을 완치했다는 사람이 중요한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서 ‘암을 이기는 식단’, ‘먹고 병을 고친 식재료’를 소개했다.

어머니는, 나는, 우리는, 알토란적 항암식단에 포위되었다.

웃기지만 웃기지 않은 건, 저자가 2년간 채식을 하다가 잡식으로 돌아왔는데 이제 다시 어머니가 ‘암환자에게 고기가 해롭대. 아는 사람도 그래서 채식한대’라며 채식을 은근히 권하셨다는 사실. 아니 이분 과거에 채식하셨다니까요? 그때는 고기 먹으라고 하셨잖아요…

 

어쨌든 그래서 내가 공유하고 싶은 건 저자의 이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나를 함부로 대했어’라고 속죄하지 않는다. 여태 원 없이 잘 마시고 잘 놀아서 다행이다. TV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검색 결과가 아닌 무작위의 환자들이 있는 입원실로 들어서면, 모든 암환자가 알토란적 항암식단에 혈안이 되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모든 암환자에게 그럴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무엇이 환자에게 좋은지 아닌지, 뭘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는지는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 다소 몸에 안 좋더라도 환자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취할 수 있다. 그건 그의 자유니까. 게다가 ‘건강’한 사람도 매일 건강에 좋은 것만 먹고 살지 않는데, 환자라고 해서 매번 ‘알토란적 항암식단’을 정확하게 챙겨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습지 않나. 애초에 이게 가능한 사람이 있긴 할까.

 

다른 꼭지에서 저자는 다시 한 번 암 환자인 딸을 챙기는 어머니와의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과 환자를 돌보아 주려는 마음, 그리고 자신이 아는 (좁은) 지식 안에서 상대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뒤섞인 결과이겠지만, 어머니는 수제비를 끓여 먹었다는 그에게 ‘암 환자는 밀가루를 먹으면 안 된다’라고 미안한 듯이 말한다. 저자는 맛있게 먹고 난 후인데 초를 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지만 “병원에서도 국수 줘”라는 말로 대화를 끝내 버린다. 이 일화를 공유하며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현실 사회에 대한 비평까지 잊지 않는 저자… 딱 내가 쓰고 싶은 글 스타일이다.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은 최신의, 더 최신의 정보를 받아들여 돌봄을 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았다. 1920년대 미국의 여성 주부들은 아이에게 비타민이 결핍되면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비타민 예찬론자가 되었다. 사회사학자 하비 리벤스테인(Harvey Levenstein)에 따르면, 이 대규모의 신규 구매층은 당대의 ‘우애결혼(companionate marriage)’이라는 개념에 따라 “남편에게 좋은 친구이자 아내”가 되어야 했고 ,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며, “완벽한 엄마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압력에 놓였다. 가정이 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주부에게 온통 쏠려 있었던 시대에 주부는 “더 새로운 영양”이라는 신개념을 받아들여 가족들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암환자와 보호자는 ‘암을 키우는 음식’과 ‘암을 없애는 음식’ 정보에 둘러싸여서 산다. 돌봄을 담당한 여성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사랑과 우정, 정성과 헌신은 ‘가치 있는 덕목’이기 때문에 아무리 과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돌보는 사람으로서는 좋은 음식을 해 먹이는 일이 정성을 행하는 가장 쉽고 가시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병자에게 닭발곰탕을 끓여 먹인다.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이던 풍습은 사라졌지만, 오늘날 병자의 식이에 기울이는 마음과 시간이 고대의 그것보다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냉장고와 세탁기가 생겼다고 해서 가사노동의 총량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은 것처럼.

 

저자는 낮은 면역력 때문에 쓰레기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한다.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의 환자들은 물을 팔팔 끓여서 마시거나 생수병을 사서 종이컵에 따라 마셔야 하는데, 생수 뚜껑은 한번 열면 4시간 안에 마셔야 한다. 저자가 생수 묶음 하나를 들고 입원했더니 3일째에 동이 났다고. 병원의 위생 관리 교육은 “청소를 사용하면 바람이 일어나 병균이 도리어 퍼지는 꼴이 될 수 있으니 손걸레나 막대걸레로 가만가만 쓸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청소를 위해 일회용 부직포를 사서 썼다. ‘이게 다 플라스틱인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일회용 부직포를 사용하지 않으면 먼지를 훔치고 마무리로 락스 청소까지 한 뒤에 일일이 걸레를 빨아야 했다. 이건 엄청난 노동이 필요한 일이다. 병동에서 새벽마다 몇 개씩 사용되는 혈액 검체통이나 주사기, 링거줄, 링거팩 같은 의료용품들도 마찬가지로 재활용이 불가한 쓰레기이다. 저자는 가끔 집에 찾아온 친구들에게 농반진반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며 머쓱해했다. “동년배들은 다 ‘플라스틱 어택' 하는데, 나만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고 있어.” 음식 사정은 조금 더 복잡했다. 매 끼니를 팔팔 끓인 채로 새로 차려야 한다고. 그래서 저자는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하게 된다.

200년도 더 전에 발명되어 양차 대전에서 빛을 발한 멸균팩과 깡통이 그런 나를 가사노동의 수렁에서 건져주었다. 집밥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하루에 한두 끼는 간편식을 먹거나 간편식에 재료를 보태는 식으로 나름의 방침을 정했다. ‘항암식품’의 자리는 공장제 멸균 음식이 차지했다. 깡통에 들어 있는 복숭아나 파인애플은 물론, 간편식 시장이 확대된 덕분에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식과 양식, 중식을 가리지 않고 이미 다양해져 있었다. 과거의 백혈병 환자와 보호자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편의를 누렸다.

식사를 공산품에 외주했더니 하루에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양념을 만들거나 재료를 손질하면서 생기는 설거지 양도 확연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비닐 포장된 통밀 비스킷과 포션 버터를 뜯으면서, 전쟁에서 비롯한 과학기술이 나 같은 사람을 살려주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은 소름이 돋았다.

이제 코비드-19의 유행은 지났을지언정 여전히 사람들은 조금 몸이 좋지 않거나 병균 및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도 있는 곳(병원이나 대중교통 등)에서는 마스크 쓰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언젠가는 일회용 마스크가 수북이 쌓인 병원 쓰레기통을 보고 우리의 안전이란 정말 이렇게 얇고 작고 사소한 것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건강, 면역, 안전이라고 하는 것들의 상당 부분을 기술과 자원에 빚지고 있구나… 다른 일반 쓰레기들과 다르게 우리가 감히 줄이자거나 피하자고 말할 수 없는 것들. 이게 없던 시절에는 정말 어떻게 개인의 위생과 안전을 지키며 살았을까… 다른 부문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절약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인간의 목숨은 생각보다 의외로 나약하구나 싶기도 하고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꼭지였다.

 

주변에 환자가 있든 없든(어쩌면 독자 본인이 환자이거나 환자였을 수도 있지만) 건강과 질병이란 그렇게 무 자르듯 쉽게 나눌 수 없기에, 모든 이들이 한 번쯤 읽고 생각해 보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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