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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by Jaime Chung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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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 아래 후기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2021년작 소설. 민음사TV 세문전 독서클럽 6편의 주제인 이 책은, 내가 사랑하는 이웃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기도 하다. 지난 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이 책을 읽었다고 가정하고, 줄거리 소개나 작품 관련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내 감상 위주로 써 볼까 한다. 스포일러 주의!

 

정확히 언제라고 언급되지는 않지만 아마도 가까운 미래, 일부 아이들은 유전적으로 ‘향상’되고, AF(Aritificial Friend)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세상. AF 클라라는 태양의 ‘무늬’를 보기 좋아하고, 그것에서 힘을 얻는다. 조시의 엄마까지 ‘조시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조시가 허약해지자 클라라는 태양과 ‘거래’를 한다. 당당한 거래가 아니라 ‘제가 이것을 할 테니 제발 조시를 낫게 해 주세요’라고 하는 일종의 부탁이다. 처음에는 공해를 내뿜는 쿠팅스 머신을 파괴하겠으니 조시를 낫게 해 달라는 것, 두 번째는 조시와 릭이 서로를 너무너무 사랑하니 그 사랑을 봐서라도 조시를 낫게 해 달라는 것. 이걸 보고 나는 ‘세상에 종교 또는 신화가 이렇게 해서 태어났구나’라고 생각했다. 쿠팅스 머신과 조시의 건강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 조시가 아픈 건 쿠팅스 머신으로 인한 공해 때문도 아니고,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기계가 사라진다 해서 조시가 낫는 것도 아니다(비유하자면, 수은을 내뿜는 공장을 없앤다고 해서 거기에서 일하느라 수은 중독에 걸린 환자가 낫는 것은 아니다). 클라라의 사고는 왜 벼락이 치는지, 왜 태풍이 부는지 몰랐던 원시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이런 사고방식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아마 아직도 이걸 믿는 아이들이 있을 것 같은데, ‘step on a crack, break your mother’s back(금 간 곳을 밟으면 엄마의 등이 무너진다)’이라는 (영어권) 아이들의 미신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나 어렸을 적에도 이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뭔지 기억이 안 난다. 터널을 지나갈 때 숨을 참아야 한다는 거였던가?). 과학까지 갖다 대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누구나 A(쿠팅스 머신, 금 간 곳 밟기, 터널을 지날 때 숨 참기)와 B(조시의 건강, 엄마의 등, 부모님 건강?)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안다. 그냥, 이 행동을 하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이건 그냥 종교이고 신화지… AF인 클라라가 이런 믿음을 갖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사고 중 하나이구나, 생각했다. 클라라가 태양광으로 움직이니까 태양을 거의 숭배하듯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인간은 태양광으로 움직이지 않는단다, 클라라야…

 

그래서 말이지, 나는 클라라가 그 강렬한 햇빛을 받고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다가 죽을 줄 알았다. ‘어, 이 태양에게 한 ‘부탁’이 효과가 있었나?’ 잠깐 생각하게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시가 숨을 거두었다는 얘기를 하거나 그냥 5부를 그렇게 상징적으로, 어떤 쪽으로도 읽을 수 있게 써 놓고 거기에서 이야기를 끝낼 줄 알았다. 그런데 6부가 있네? 조시가 놀랍게도 건강이 좋아져서 대학에 갈 수 있을 정도가 됐다네? 띠용! 나는 이게 안타깝고 쓸쓸하고 먹먹하고 짠한, <나를 보내지 마> 같은 느낌으로 끝날 줄 알았거늘… 6부가 있어서 이야기가 별로가 됐다는 게 아니라, 그냥 놀랐다는 거다. 하긴, 애가 건강해지고 나아지니까 엄청 특별하고 소중해 보이던 릭과의 관계도 그냥 ‘어릴 때 예뻤던 첫사랑’ 정도로 평범해지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안타까움’이 생기긴 하지. 이루어지지 않아야 애틋하고 특별해지는데, 조시가 나아져서 시간을 오래 보내게 되니까 릭도 결국 그냥 ‘한때의 추억’으로 변하는 거다. 그 점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보기에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클라라와 로사를 돌보던 매니저에게 클라라가 하는 말에 있지 않나 싶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 말을, 특정한 개인은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게 없다만 그가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 특별함을 찾게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가장 극명한 예로, 내가 길거리에서 ‘만난다’라고도 할 수 없는, 그냥 내가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한 명 한 명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 한마디 나눈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들에게도 가족, 애인, 친구 등이 있을 거고, 그들 가족, 애인, 친구 등에게 그 사람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혹은, 병원 또는 출산 후 조리원에 있는 아기 엄마에게 다른 아기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내가 보기에 아기들은 다 똑같이 생겼는데도). 자신의 아기만이 그 아기 엄마에게 의미가 있겠지.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그래서 클라라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조시 안이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이번 소설도 그렇지만, 이야기 속에 조금씩 드러나는 SF적 설정이 무척 흥미로운데 정말 너무 조금씩 자잘하게 나와서 감질났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도 느꼈지만, 솔직히 <클라라와 태양>에서 이런 점이 더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 ‘향상’된다는 게 정확히 뭔데? 뭔가 이 아이들의 유전적인 어떤 면을 수술 등을 통해서 바꾸는 것 같은데, 이러할 것이다 하고 추측만 하게 만들 뿐이다. 심지어 원문에는 ‘lift’라고 되어 있어서 더더욱 묘하다. 이걸 ‘향상’된다고 좀 더 명확한 언어로 번역해 주신 번역가님께 무한 감사. 그냥 문맥만 보고 이게 아이들의 유전자를 우수하게, 우월하게 바꾸는 절차가 이 세계관에는 있나 보다, 추측해야 한다니… 번역가뿐 아니라 독자들도 난도 너무 높은 거 아니냐고요. 냄새만 피우지 말고 좀 더 분명하게 말해 주면 안 되나요? 릭의 엄마와 아빠가 나누는 이야기에 과거는 어쨌고 현재는 어떻고 하는 점을 살짝, 정말 살짝 추측하게 할 만한 거리가 있는데 확신이 들 만큼은 아니다. 아니, 왜 이렇게 감질나게 설정을 보여 주다 말아요? 조금 더 보여 주시면 어디 덧납니까, 작가님? 😫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두 권 읽었으니 이제 다음엔 뭘 읽을까, 고민하던 차에 부커상 웹사이트에서 이런 페이지를 발견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여러 작품을 소개하면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이 작품, 믿을 수 없는 화자를 찾는다면 이 작품’ 하는 식으로 총 다섯 권을 권하고 있다. 이야, 아주 유용하네. 기억해 두었다가 한번 찬찬히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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