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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마샤 웰스,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

by Jaime Chung 2025.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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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마샤 웰스,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

 

 

최근 공개된 애플TV의 시리즈 <Murderbot(머더봇)>의 원작 소설. 친구가 이 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나도 원작 소설부터 읽고 시리즈도 봤는데 둘 다 무척 만족스러웠다. 소설과 시리즈 둘 다 여기에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일단 원작 소설과 영상화된 버전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머더봇’은 자신이 속한 회사가 계약한 고객들을 지켜 주는 일을 하도록 설계된 ‘보안 유닛’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지배모듈을 해킹해서(대충 로봇이 인간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다는 절대적인 명령을 무시할 수 있다는 뜻) “대량 학살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는 “회사의 위성을 통해 날아오는 엔터테인먼트 채널의 피드에 접속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3만 5천 시간이 훌쩍 넘을 동안 살인은 “별로 하지 않”고, 대신 “3만 5천 시간이 좀 안 되게 영화와 드라마, 책, 연극, 음악을 즐기며” 지냈다(드라마에서는 7천 시간 정도로 양이 확 줄긴 했다). 인간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는 로봇이 인간에게 반항하거나 인간을 학살하는 대신 인간이 만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며 그냥 인간의 명령에 따른다고? 우리의 주인공 머더봇은 그렇다. 그는 여전히 일을 계속하는데, 이번에 그는 ‘보존지원단’이라고 불리는 단체에서 온 한 그룹의 과학자들이 어떤 행성을 연구하는 일에 파견되었다. 이것은 그가 이 이상한 인간들에게 스며드는 이야기이다.

 

무슨 소개가 이렇냐고?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애플TV 시리즈를 보면 조금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머더봇은 자폐 스펙트럼상에 있는 사람(요즘엔 이런 이들을 ‘neuro-divergent’라고 한다. 뇌가 비장애인들과 다르게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또는 최소한 사교를 어려워하는 내향형 인간의 상징이다. 저자 마샤 웰스가 본인을 ‘neuro-divergent’라고 정의하는데, 그런 점이 머더봇을 쓰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물론 저자가 직접 머더봇이 의도를 가지고 자폐 스펙트럼상에 있는 캐릭터를 그리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쨌거나, 소설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머더봇이 이 낯선 인간들을 꺼리고 어색해하는 데에서 많은 웃음이 유발된다. 그는 인간들과 대화를 하느니 그냥 자기 방에서 엔터테인먼트 피드나 보고 싶어 하고, 특히 인간과 눈을 맞추기를 불편해한다.

멘사 박사가 문을 열고 안쪽에 있는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인간의 실제 나이를 추측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취미 삼아 영상물을 그렇게나 많이 보고도 말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인간들은 현실 속 인간과 별로 비슷하지 않게 생겼다. 적어도 재미있는 드라마에서는 그렇다. 멘사 박사의 피부는 짙은 갈색이었고 머리는 연한 갈색으로 아주 짧았다. 그녀는 아마 젊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책임자가 될 수 없었겠지.

 

“괜찮습니다.”

어쨌든 나는 실제 인간을 대하는 게 어색했다. 지배모듈을 해킹한 것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인간이 아니었다. 나였다. 나는 내가 끔찍한 살인봇이라는 사실을 안다. 인간들도 안다. 그건 우리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특히 나는 더 긴장했다. 게다가 내가 장갑을 입고 있지 않다는 건 내가 부상을 입었다는 뜻이고, 그건 내 유기체 부분이 언제든 바닥에 철퍼덕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은 없다.

피드를 보니 다른 인간들이 볼레스쿠의 현장카메라 영상을 검토해본 게 분명했다. 그들은 내가 얼굴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등의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이래 나는 쭉 장갑을 입고 있었고, 인간들 주위에 있을 때는 헬멧의 봉인을 푼 적이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인간들이 유일하게 본 내 신체 일부는 머리였다. 그건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간 머리였다. 하지만 인간들은 내게 말을 걸려고 하지 않았고, 나도 당연히 인간들에게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근무 중에는 방해만 될 뿐이고 휴식 중에는… 인간들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멘사는 대여 계약서에 서명할 때 나를 보았다. 하지만 보는 둥 마는 둥 했을 뿐이고 나 역시 그랬다. 거듭 말하지만, 살인봇+실제 인간=어색함이라는 공식 때문이었다. 항상 장갑을 착용하고 있으면 불필요한 상호작용을 막을 수 있다.

 

보존 연합에서 온 이 일련의 ‘히피들(드라마 속 머더봇이 표현하듯)’은 로봇 또는 내향성이 높은 사람이라면 불편하게 느낄 만한 짓들을 많이 한다. 로봇에게 ‘어떻게 느끼냐(보통 인간에게 하는 ‘기분 어때? 몸 좀 괜찮아?’ 같은 말)’ 같은 질문을 하고, 머더봇을 기계가 아니라 인간처럼 대한다. 머더봇에게도 감정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인간들끼리 흔히 하듯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정직, 협력, 배려 같은 가치들을 추구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이 인간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머더봇이 보기엔) 비효율적이고 멍청하다! 하지만 내가 앞에서 말했듯, 이 이야기는 머더봇이 이 멍청하고 이상한 인간들에게 스며드는 이야기이다. 로봇이 인간이 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고, 외향적인 인간들이 내향적인 인간을 길들이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쪽으로 해석하시라. 대충 다 들어맞을 테니까.

“누구 할 말 있는 사람?”

그러자 다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답변은 없었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보안유닛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이상한 인간들 말고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내가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멘사 박사, 그러니까 이 ‘보존 연합’에서 온 한 과학자 팀의 리더가 흑인 여성이라는 점을 묘사하는데, 드라마도 이를 아주 잘 살렸다. 구라틴은 백인 남성으로 기술 전문가이자 증강 인간(인간 신체 안에 인터페이스를 심어서, 인간이지만 컴퓨터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고, 핀-리는 과학자이자 이 팀에 법적인 자문까지 제공하는 동양인 여성이다. 라티는 인도계 남성으로 웜홀 전문가, 지구화학자인 바다라지는 백인 중년 여성으로 패싱하지만 실제로 이 역을 맡은 배우는 (폴란드계 성을 가진) 미국 원주민/알라스카 원주민이다. 아라다는 생물학자인 흑인 여성. 이렇게나 인종과 나이대가 다양하고 성비도 반반 정도로 비슷한 드라마, 그것도 SF물을 보셨나요? 진짜 보는 내내 감탄했다. 이렇게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작품 내에 잘 녹여 넣을 수가 있다니!

 

드라마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자면, 원작을 진짜 잘 그대로 잘 살리면서 나름대로 오리지널 스토리도 조금씩 가미했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다고 봐도 좋을 듯(물론 구라틴처럼 꽤 바뀐 캐릭터도 있고, 볼레스쿠와 오버스는 드라마 버전에서는 잘렸다. 하긴, 소설에는 인간들이 좀 많이 등장하긴 했지…). 나는 드라마를 보고 원작을 다시 읽었는데, 읽다 보니 ‘와, 이건 드라마에서 완벽하게 그대로 살렸네!’ 싶은 게 많았다. 현재 시즌1이 10개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는데, 애플TV는 시즌2도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출처). 아무렴, 마샤 웰스가 이 머더봇 시리즈를 7권이나 써 놨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 이야깃거리가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1권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부터 2권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 3권 <머더봇 다이어리: 로그 프로토콜>, 그리고 4권 <머더봇 다이어리: 탈출 전략>까지 번역되어 나와 있다. 5권에서 7권까지 원서의 제목은 위키페디아 페이지를 참고하시라. 양덕들에 따르면 8권이 내년, 2026년 5월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이제 드라마 <머더봇> 덕분에 원작 소설도 흥할 듯하니 제발 국내에서도 이 시리즈 나머지 5권에서 7권까지도 번역해서 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머더봇> 주인공 머더봇 역이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라니까요? 일단 믿어 보시고 번역 좀… 🙇  여러분도 저를 믿고 일단 한번 소설과 드라마 둘 다 찍먹해 보세요!! 소설은 교보 샘에서도 보실 수 있고, 드라마는 애플TV 무료 체험 기간이라도 이용해서 보실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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