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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by Jaime Chung 2025.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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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 아래 후기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읽었다! 민음사TV 채널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고 가장 최근에는 세문전 독서클럽 5화의 주제가 되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정말로 큰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데, 뭐, 남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뭐라 하지는 않겠으나 나는 별로 끌리지 않아요… 그런 상태였달까. 그래서 세문전 독서클럽도 이걸 다 끝내지 못하고 (정말 억지로 한 20% 읽고 미루다 미루다가) 그냥 영상을 봤다. 나는 책의 주인공 싯다르타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처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것이다! (’싯다르타’, ‘석가모니’, ‘부처’ 등을 잘 설명해 주는 이 좋은 기사를 참고하시라.) 와, 나 이 책에 정말 관심 없었구나… 어쨌든 그래서 이 책 리뷰는 정보성 포스트가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냥 내가 어떻게 느꼈고 뭘 생각했는지를 늘어놓는 자리가 될 예정.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책의 전개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줄줄 나올 예정이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싯다르타가 말하는 전체성, 단일성, 개별성 같은 개념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고타마,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부처님이 설법하는 걸 싯다르타가 듣고서도 ‘그래도 나는 내가 직접 이 진리를 경험하여 알아내야겠다’ 했고, 결국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진리를 터득한 건 이해하겠다만. 내가 헤세의 철학을 알고 싶어서, 어떤 삶의 진리를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은 게 아니라서 그런가, 그렇게까지 이 ‘진리’에 대해 매료되지는 않은 것 같다. 헤세 본인도 자신이 이 소설에서 쓴 철학을 가지고 삶을 살지는 않았겠죠…

 

내가 읽으면서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고, 제일 격렬한 반응을 보였던 부분은 2부의 ‘아들’이라는 장(章)이었다. 내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들에 대한 집착이 정말 이해가 안 갔다. 애초에 나는 (위에 링크한) 세문전 독서클럽 5화에서 제기했던 질문(’가장 극복하기 힘든 난관은? 1. 사랑 2. 돈 3. 가족’)에 대해, 이 부분을 읽기 전에 이미 고민도 안 하고 3번이라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사랑이야 뭐 내가 지금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굳이 파리스가 트로이의 헬레네를 만나 도망친 것만큼 강렬한 사랑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뭐, 서로라는 천국 안에서 행복해하는 아담과 이브를 보고 질투하는 사탄도 아니고. 세계 최고로 잘생긴 남자를 만나서 일생일대, 아니 이 세기의 로맨스를 해야 할 필요가?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요… 그래서 1번은 기각. 돈? 내가 지금 먹고살 만큼 벌고, 부자는 아니어도 욕심 크게 안 부리고 살면 소소하게 내가 갖고 싶은 것들(그래 봤자 별로 비싼 것들도 아니다)을 사고 또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데. 풍요, 만족, 행복이란 내 마음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빌 게이츠만큼의 돈은 없지만 내가 과한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면 돈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 물론 ‘아, 로또나 당첨되어서 일 안 하고 게으른 백수로 살고 싶다’ 같은 생각이야 하겠지만, 그건 역시 누구나 하는 생각이고, 이것 역시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막 아득바득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어!’ 같은 마음은 안 든달까.

그래서 내 답은 당연히 3번. 가족, 그러니까 부모, 형제자매, 자식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나랑 기질적으로 안 맞는 사람이 있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서 외향적인 성격이나 내향적인 성격, 둘 다 좋은 거고 뭐가 더 낫거나 우월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하면 같이 공존하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일 수 있다. 거기에다가 당사자들이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충돌하면? 예를 들어 한쪽은 깔끔하고, 다른 한쪽은 더럽다면? 한쪽은 종교인이고 다른 한쪽은 아니라면? 둘이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나는 예민한 편인 데다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이를 원해 본 적도 없다. 뭐하러 고민거리를 일부러 만드나요? 나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선택을 함으로써 내 정신 건강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 생각이 이렇다 보니 싯다르타가 아들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게 나에게는 을의 연애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왜 아들에게 따끔하게 훈계도 못하고, 훈육도 못하고 아이에게 휘둘리지? 부모로서 이건 안 된다, 저건 괜찮다 하는 경계를 정해 주고 아이가 잘못하면 혼을 내야 부모의 권위라는 게 생기지. 아이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데, 이건 뭐 아이에게 휘둘리는 요즘 부모의 모습이 겹쳐 보았다. 아이가 소중하고 귀하면 그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잘 훈육해 줘야지! 왜 아이가 아버지인 자신에게 막말하게 놔두지? 이게 나에겐 너무너무 을의 자세처럼 보였다. 나는 애인이든 부모든 자식이든, 내가 나를 최고 1순위, 아니 0순위에 놔야 결국 나에게 가장 이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나 자신에게 0순위가 아니면 애인이 나를 학대하더라도, 아니 학대까지는 아니어도 나쁜 남친/여친처럼 굴 때 단호하게 끊어낼 수가 없잖아. 결국 ‘헤어져’ 이 말을 할 수 있어야지 끝이 나는 건데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면 이 말도 못한다. 따라서 상대에게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깟 사랑이 뭐라고. 아니면 일이 정말 너무 힘들어서, 나쁜 회사가 나를 착취하느라 내가 죽을 것 같은데 내가 나를 0순위에 두지 않으면 ‘저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을 못 하게 된다. 남들이 나를 나약한 사람으로 볼 거 같고,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것 같고… 하지만 그 말을 해야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니까? 나 아닌 다른 사람 또는 다른 것들을 내 머리 위에 놓으면 누가 나를 지켜 줘? 그런 의미에서, 싯다르타가 자기 자식을 마치 나쁜 애인처럼, 자신을 쥐락펴락하게 내버려 두는 게 부모의 사랑인가? 어른이 할 일인가? 내가 아이가 없고,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그런지 싯다르타의 이런 면이 이해가 안 갔다. 진짜 그간 몇십 년간 도 닦은 게 아무 소용 없구나… 자식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 싯다르타는 자기 아들이 옴으로써 자기에게 행복과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고통과 근심 걱정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소년을 사랑하였으며, 그 소년이 없이 평화와 행복을 누리느니 차라리 그 소년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겪고 사랑에서 비롯된 근심 걱정을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내가 이해 못한 부분. 나 같으면 1초 만에, 생각도 안 하고 ‘걔 없이 평화와 행복을 누릴래’ 할 텐데. 이 단락을 읽으면서 불행한 사랑을 하면서 ‘그래도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좋은 추억을 많이 얻었고 행복했어…’ 같은 소리를 하는 을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쁜 것에서 굳이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 태도가 비슷한 게. 아니, 그 나쁜 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먼저 찾으시라니까요? 자식이라는 게 아마 인간관계에서 제일 끊기 힘든 관계라서 헤세가 그렇게 설정한 것 같은데, 그래서 나도 이 아들이 꼭 ‘자식’뿐 아니라 우리가 인간관계에 갖는 집착을 상징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이게 자식, 누군가에게는 부모, 누군가에게는 애인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그리고 애초에 싯다르타가 남자였으니까 어느 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아버지, 저 출가하겠습니다’ 이게 되는 거지, 여자였다면 진리를 찾기 위해 집을 나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을 거다. 아, 이건 카말라가 성(性)적 유혹이라는, 남자 수도사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하는 얘기가 맞는다. 만약에 싯다르타, 또는 이름이 뭐가 되었든, 구도자 주인공이 여자였다면 아마 카말라 역은 그냥 평범한 남자, 평범한 남편이었을 것이다. 여자에게 이런저런 일(출산, 육아, 어쩌면 맞벌이까지?)을 시키는 남편. 남편은 그를 학대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남자일 수도 있다. 여기서 평범하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아내를 괴롭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제도에 딱히 저항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에 수록된 <웨딩드레스 44>라는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한 여자가 하는 말이 떠오른다. “[결혼 생활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기본적으로 잔잔하게 굴욕적이야.”). 어떤 쪽이든 주인공이 이 과업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사랑은 희생이 아니고, 이성 간의 사랑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사랑이다’라는 진리일 것이다. 싯다르타의 성(性)만 반전한다고 여성에게도 해당이 되는, 여성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저절로 되지는 않을 테니까. 싯다르타를 도와주는 친절하고 지혜로운 바주데바나 싯다르타의 친구 고빈다도 여성 캐릭터가 되어야겠지.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도와주신 오이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자 한다. 이 책을 같이 교환 독서 해 주신 나의 사랑스러운 이웃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절대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오이님 보고 계시죠? 이 상은 같이 받는 거예요! (상은 아니지만 이런 말 한 번쯤 꼭 해 보고 싶었어요, 헤헷.) 여러분도 혼자 읽기 힘든, 지루하거나 크게 끌리지 않는 책이 있다면 친구와 같이 읽으면서 생각을 나누어 보세요! 그러면 읽기가 수월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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